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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살만의 사우디, '예루살렘=이스라엘 수도' 전략적 묵인하나

 
지난 5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순방 때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지인 ‘통곡의 벽’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유대인 전통 모자인 키파를 쓰고 벽에 손을 대는 등 추모 의식을 했다. [예루살렘 AFP=연합뉴스]

지난 5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순방 때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지인 ‘통곡의 벽’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유대인 전통 모자인 키파를 쓰고 벽에 손을 대는 등 추모 의식을 했다. [예루살렘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의 잠재적 화약고에 손을 댔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등 3개 종교의 성지이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의 핵심지역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 관례를 뒤집고 텔아비브에 있는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도 예루살렘으로 옮길 방침이다.
 
6일 오후 1시(현지시간, 한국시간 7일 오전 3시) 관련 회견을 앞두고 트럼프는 전날인 5일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집트 등 주변 4개국 정상에게 전화해서 이를 알렸다. 아랍권은 일제히 반발했다. "예루살렘은 무슬림에게 꼭 지켜야 하는 레드라인(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라는 격한 반응 속에 아랍권은 벌집을 쑤신 듯한 분위기다.
 
걸프 국가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반대 뜻을 밝혔다. 사우디의 살만 국왕은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예루살렘과 관련한 어떠한 미국의 발표도 평화협상을 해치고 지역 긴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사우디 국영TV가 보도했다.  
 
지난 3월17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자를 맞아 대화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 3월17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자를 맞아 대화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하지만 물밑에선 오히려 사우디가 미국의 이·팔 외교에 중재역할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의 유대인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사우디의 외교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의 교감 속에 이 문제를 추진해왔다는 소문도 있다(영국 가디언). 쿠슈너는 지난달 트럼프 취임 이래 세번째로 사우디를 방문해 중동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와 관련 지난 3일 뉴욕타임스(NYT)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지난달 극비리에 사우디를 방문했고, 빈살만 왕세자로부터 관련 계획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계획에 따르면 일단 팔레스타인은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제한적으로나마 통치권을 갖게 되고 차후 이 지역에서 독립 국가를 건립할수 있게 된다. 여기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래 이스라엘이 강제 점령중인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이 사실상 포기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우디의 외교 국방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왕세자.

사우디의 외교 국방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왕세자.

미국과 사우디는 즉각 이 보도내용을 부정했다.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를 주도하는 무장단체 하마스 측은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압바스는 자리를 고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압바스 측은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을 공식화하면서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무르익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긴장완화(데탕트)’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지난달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인 가디 아이젠코트 중장은 사우디 매체와의 이례적인 인터뷰에서 “대이란 전선(Iranian axis)과 관련해 사우디와 정보 공유를 할 준비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서 유발 스테이니츠 이스라엘 에너지장관도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사우디와의 비밀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고 시인했다. 공식 수교 국가가 아닌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접촉 사실을 이스라엘 고위 관리가 공개 시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사진 위키피디아]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사진 위키피디아]

 
이 같은 변화엔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 강화를 견제하려는 양국의 공통 이해관계가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정학전문 매체 스트랫포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이후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둘 다 이란의 안보 위협을 우려하게 됐다”고 양국의 동병상련을 지적했다.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 이라크의 분열,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부상 등이 지역 패권을 노려온 이란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사우디는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의 도전을 받고 있는 예멘과 각각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온건한 아랍 국가들과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급진적 이슬람 국가에 대항해 온건한 아랍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발언도 했다. 이 발언에서 급진 이슬람 국가는 이란을, 온건한 아랍 국가는 사우디를 지칭한 것으로 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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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뒷받침하듯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미래형 신도시 ‘네옴(NEOM)’ 건설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극단주의를 타파하겠다”면서 온건 이슬람주의로의 회귀를 천명한 바 있다.  
 
스트랫포는 빈살만 왕세자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엑소더스나 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기억이 없는 세대”라고 칭하면서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에게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개선은 변화의 전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역시 개방·개혁을 천명한 사우디로 하이테크 산업을 수출하는 무역 실익을 꾀할 수 있다.
 
다만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용인’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이에 반발하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저항이 우려된다. 미국의 중동 정책 등에 불만을 품고 9.11 테러를 감행한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도 사우디에서 태동했다. 그 때문인지 사우디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 외교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도 "이-팔 분쟁이 아랍 평화를 바탕으로 해결되기 전까지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우디가 미국의 예루살렘 정책 변경에 겉으로는 반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묵인'하는 이중전략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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