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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하고 싶은 말 모두 쏟아부어"

10권 짜리 대하소설 『반야』를 출간한 송은일씨. 오랜 만에 보는 여성작가의 대하소설이다.

10권 짜리 대하소설 『반야』를 출간한 송은일씨. 오랜 만에 보는 여성작가의 대하소설이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사람들 같다. 소설가 송은일(53)씨와 출판사 문이당 임성규(66) 대표 얘기다. 얄팍하고(두께가), 가벼워야(내용이) 잘 팔린다는 요즘 소설 출판 1법칙을 무시하고 '어마어마한' 작품을 내놨다. 조선시대 영조 연간을 배경으로 한 200자 원고지 1만5000쪽, 전체 열 권으로 구성된 대하 장편소설 『반야』를 최근 합작해 출간했다. 
 송씨는 같은 이름,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출간한 적이 있다. 같은 문이당 출판사에서. 두 권짜리 『반야』, 2007년의 일이다. 10년 간 작업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덩치를 한껏 키운 대하소설 『반야』 집필 사실을 지난해 가을 문 대표에게 알렸다고 한다. 새 원고인 3권을 읽어본 문 대표, 선뜻 받아들여 출판계 '사건 아닌 사건'이 성사됐다고 한다. 
 반야는 신통함과 아름다움에 관한 한 따라올 사람이 없는 신비한 무당. 사신계와 만단사라는 두 비밀결사가, 누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오를 것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는 과정에 반야 등이 휩쓸리는 40년 간의 소용돌이를 그린 작품이다. 
 5일 송씨를 만났다. 기자간담회에서다. 말이 10년이지 뼈를 깎는 세월이었을 터. 어떤 작품, 왜 썼을까. 송씨의 발언을 고스란히 전한다. 
 
 
-소감은. 
"10년 전인 2007년 두 권짜리 『반야』를 출간했으니까, 그 소설의 구상·집필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2년 만에 열 권짜리 『반야』를 출간했다. 감개무량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단지 그 단어가 떠올랐을 뿐이지 어떤 느낌이 실린 건 아니다.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소감을 말하기가 새삼스럽다.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감개무량하다고 하는 건데 복합적인 심경이다. 긴 세월 걸렸으니 이왕이면 널리 읽히면 좋겠다."
-처음부터 열 권으로 구상한 건가. 나눠 내지 않고 한꺼번에 출간한 이유는. 
"두 권짜리 『반야』를 낼 때 하고 싶은 말을 주인공 반야의 입을 통해 얼추 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좀 지나고 나니 하고 싶은 더 많은 이야기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때가 되면 쓰리라고 생각했다. 2013년 장편『매구할매』를 낸 다음에 이제 『반야』를 다시 써야겠다 생각했다. 처음에는 4500~5000쪽을 써서 다섯 권짜리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몇 년 사이 내 안에서 불어난 이야기의 틀거리를 생각하니 다섯 권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권이든, 일곱 권이든, 열 권이든, 어차피 책으로 내기는 힘들테니 쓰고 싶은 대로 쓰자, 작가로서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소설을 통해 놀 수 있는 대로 놀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자, 마음 먹었다. 그렇게 쓰다보니 10권, 1만5000쪽에서 일단 멈추자, 이렇게 된 거다. 언젠가는 더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싶었나. 
"단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독자가 읽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 하고 느끼는 게 맞지 싶다. 살면서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을 텐데, 그런 내용을 담았다고 보면 된다.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소설이나 문학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대하소설 『반야』. 작가 송은일씨가 2007년 출간했던 두 권짜리를 대폭 늘린 작품이다.

대하소설 『반야』. 작가 송은일씨가 2007년 출간했던 두 권짜리를 대폭 늘린 작품이다.

 
-어려움이 컸겠다. 
"중간에 막히는 순간이 많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일단 소설 쓰기 시작하면 끝을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삶이 진행이 안 된다. 계속해서 책상 앞에 앉아 있지 못하니까 괴로운 시간들을 견디며 소설 쓰는 방법을 찾았다. 외부활동을 줄이고 혼자 노는 방법을 궁리했다. 가령 친구들과 바깥에서 놀기보다 집으로 불러들여 놀았다." 
-어떤 걸 그리고 싶었나.
"각 권마다 뒷부분에 사신계와 만단사 두 조직의 계보도와 강령을 밝혀뒀다. 두 조직의 강령은 비슷한데, 사신계는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만단사는 '모든 인간은 스스로 간절히 원하는 바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하며 그런 삶을 얻을 권리가 있다'는 거다. 두 집단은 가상이지만 조선 시대에 비슷한 집단이 존재했기를 바라며 만든 조직이다. 소설은 그런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상충되는 사람들과 충돌하며 겪는 온갖 어려움과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 안에 소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을까." 
-현대물에 한계를 느껴 역사물을 집필하나. 
"아무래도 내가 요즘 현상이나 시류를 그리는 감각이 좀 뒤지는 것 같다. 예민한 문제들을 현대적 언어로 그리는데 한계를 느낀다. 역사물을 쓸 때는 그런 한계를 좀 덜 느끼는 것 같다. 상상력을 작동하는 게 더 자유롭다고 할까. 과거를 최대한 복원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만 내게는 이런 역사물 성격이 오히려 맞는 것 같다."
 
 
-작품의 시대 배경이 조선시대인데. 
"영조가 즉위하던 해에 태어난 반야가 다섯 살 무렵 소설이 시작한다. 어머니는 신내린 무당이 아니라 배운 무당이고, 아버지는 영조 시대 최대의 반역자였던 이인좌다. 영조 즉위 말기까지 대략 40년 정도의 시간이 열 권에 들어있는데, 소설 속 신화적 이야기는 단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꼭 조선시대가 배경이라고 하기 어렵다."
-주인공 이름을 반야로 정한 이유는. 
"반야는 무녀인데, 반야에게 맡길 책무가 워낙 컸기 때문에 이왕이면 큰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무당은 신기를 내려주는 몸주가 있기 마련인데, 반야는 죽은 자들의 세상, 다음 세상을 관장하는 불교의 아미타불(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이 몸주다. 그래서 불교의 근본 교리로 지혜를 뜻하는 반야(般若)를 주인공 이름으로 삼았다."
-요즘 현실을 빗댄 내용으로도 읽힐 것 같다. 
"몸은 21세기에, 의식은 300년 전 조선시대에 두고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두 시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대로 공부해서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건데 어투만 옛날일 뿐 지금을 얘기하는 거구나,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한참 열이 올라 쓰는 와중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어떤 식으로든 치열하고 정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잔인한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그렇다고 소설이 권선징악은 아니다) 핵심 인물들이 나쁜 사람들을 만나면 좀 더 잔인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아마 소설 바깥 현실이 내 안에 들어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나쁜 사람을 처단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송은일씨는 "집중적으로 집필한 기간은 5년쯤 된다"고 했다. 하루 10시간씩 집필에 매달렸다.

송은일씨는 "집중적으로 집필한 기간은 5년쯤 된다"고 했다. 하루 10시간씩 집필에 매달렸다.

-2007년 처음 소설을 집필한 계기는. 
"두 권짜리 『반야』를 쓰기 직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의 나이에, 친구들과 무당이나 점집을 찾아다니며 노는 걸 좋아했다. 신기 있는 사람들 앞에서 사주 얘기 함께 들으며 깔깔거리고 놀았다. 어느 순간 그동안 무당에게 갖다 바친 돈이 얼마냐, 무당 이야기를 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당 이야기만 쓰는 건 별 의미가 없고,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사는 무당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요즘 무당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너무 오랜 옛날은 아니면서도 아직도 신화적인 요소가 남아 있어, 문제가 생기면 궁궐에서 무당을 부를 정도가 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게 됐다. 그 시기가 조선시대 영정조 시대다. 영조 시대만 해도 돌림병이 돌면 한꺼번에 40만 명, 60만 명이 죽어나갔다. 전체 조선인구가 1000만 명이 안 되던 시절이다. 연보 등 기록에 남아 있다. 이 시대에 대해 할 얘기가 많겠구나, 그래서 영조의 즉위 무렵으로 소설 시간 배경을 설정했다."
-숱한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몇 명인가. 
"아직 나도 세어보지 못했다. 후배에게 인물 숫자를 세어 계보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직 답을 못 받았다. 주요 인물만 한 100명, 조연까지 합치면 200명, 엑스트라 정도까지 치면 300, 400명 넘지 않을까 짐작만 해본다."
-인물이 그렇게 많으면 쓰면서 헷갈리지 않았나.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헷갈리지 않는데 인물의 나이는 헷갈리더라. 한 인물이 어떤 해에 몇 살인지를 따지는 게 머리 아플 정도였다. 작업 노트에 인물들의 나이를 빨간 글씨로 적어두고 나이에 맞는 행동과 생각을 상상하며 썼다."
-그런 작업 노트는 몇 권이나.
"20권 정도."
 
 
-집중적인 집필 기간은. 
"2013년 장편 『매구할매』가 출간된 다음부터니까 한 5년 가량?"
-이전 대하소설 『토지』나 『혼불』과 비슷한 점, 다른 점을 꼽는다면. 

"『토지』는 대학교 때 박경리 선생님을 하나의 롤 모델로 생각하고 열심히 읽었다. 나도 언젠가 박경리 선생님처럼 크고 좋은 높은 소설 쓸 거야, 하는 생각을 키웠다. 그 분들의 작품과 내 소설이 어떤 점이 비슷하다, 얘기하기는 어렵다. 다른 점은, 선생님들 소설은 내 소설보다 훨씬 현대에 가까운 근현대가 배경인데 비해 내 소설은 300년 전 이야기인데도 읽기는 훨씬 쉽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언어나 문장도 훨씬 현대적이고."
-소설 속 신화적 요소는 어떤 내용인가. 
"소설을 쓰기 위해 『삼국유사』를 다시 읽었다. 그래서 소설 배경에 신화적 요소가 흐른다. 단군 혼자서 고조선을 이룩한 게 아니라고 봤다. 당시에는 모계 사회였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그런 점들을 합쳐서, 각각 웅녀(곰 여인)와 호녀(호랑이 여인)가 조상인 웅족과 호족이 결합해서 단군 조선을 이룩했고, 그런 내용이 기록된 『삼국유사』 원본이 따로 있다고 설정했다."
-요즘 독자는 호흡이 짧아 긴 소설을 읽기 어려워한다. 독자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일단 재미있을 거다. 독자마다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TV 드라마를 무척 좋아한다. 아직 드라마 '도깨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설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쉬는 방법이 드라마를 보는 건데 24시간 본 적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요소, 말초적인 장면들이 소설 속에 강렬하게 그려져 있다고 자부한다. 어떤 소설이든 처음부터 빠져들지는 않는다. 열 쪽, 스무 쪽, 서른 쪽, 새로운 소설이라는 낯선 세계에 들어가서 익숙해져야 그 안에 빠져든다. 마음 놓고 낯선 세상 구경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읽다 보면 다른 어떤 놀이보다 즐거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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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