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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기생충이 드러낸 김정은 왕조의 본질

브라이언 후크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브라이언 후크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지난달 자유를 찾아 한국에 귀순한 북한 병사의 몸에서 다량의 기생충이 발견됐다. 김정은의 폭정 속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북한 주민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중국 등) 북한을 비호하는 국가들이 김정은의 폭정을 묵인하고 도와줘 온 사실도 생생히 보여준다.
 
지난달 초 한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남북의 명암을 부각했다. 한쪽은 자유와 정의, 평화를 보장하는 국가로 발전했지만 다른 한쪽은 폭정과 억압에 시달리는 위험천만한 나라로 전락했다. 이 극명한 차이는 김정은의 노예국가에서 탈출한 영양실조 상태의 북한 귀순병과 그를 살리기 위해 전력투구한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귀순병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탈주를 감행했다. 지프를 타고 군사분계선에 돌진한 그는 차가 배수로에 빠지자 맨몸으로 뛰쳐나와 공동경비구역을 질주했다.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달렸다. 귀순병이 군사분계선 남측 500m 지점에서 한국군에 구조됐을 때 그의 몸엔 6발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귀순병을 치료한 한국 의료진은 B형 간염과 폐렴에 감염된 그의 배 속에서 최장 30㎝나 되는 기생충이 ‘엄청나게 많이’ 발견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국종 교수가 “의사로 일한 20년 동안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귀순병의 고난은 북한 주민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준다. 평양 당국이 핵무기에 거액을 쏟아부으며 민생을 내팽개친 결과 출신 성분 좋은 최전방 병사조차 영양실조와 기생충 감염에 시달리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조한 북한의 우방국(중국) 책임도 엄중하다.
 
북한 주민 2300만 명은 ‘출신 성분’이라 불리는 야만적인 카스트 제도에 갇혀 살아간다. ‘성분’이란 말 자체부터 악랄하다. 태어날 때부터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체제의 브라만에 해당하는 ‘핵심’ 계층과 바이샤에 해당하는 ‘동요’ 계층, 그리고 수드라나 파리아(천민) 취급을 당하는 ‘적대’ 계층으로 구분된다. 이는 식량과 교육, 일자리 등에서 각각 다른 처우를 받는 근거가 된다. 북한 주민 200만 명이 굶어 숨진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누가 먹고 누가 굶을지 여부는 오로지 성분에 따라 결정됐다.
 
nyt 칼럼 12/5

nyt 칼럼 12/5

자원이 풍부한 북한은 한때 경제력에서 남한을 앞섰지만 70년대 이후 남한이 고속성장을 이어가는 동안 궁핍화의 길을 걸었다.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아이들의 키는 또래 한국 아이들보다 훨씬 작다. 빈곤과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의 수는 3만 명에 달한다. 대부분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한 뒤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 과정에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군 수비대에 총살당하거나 인신매매 범죄단에 넘겨져 강제노역자나 성노예로 전락하기 일쑤다. 중국 공안에 잡히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북한에 강제송환된 뒤 지옥이나 다름없는 수용소에 구금되거나 사형을 당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탈북자를 북한에 강제로 돌려보내는 중국의 조치는 난민의 생존권 보장 의무를 명시한 국제난민협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지난달 말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이유도 북한의 야만적인 탈북자 숙청과 해외에서 활동해 온 반체제 인사 암살과 관련성이 크다. 중국과 동남아 일대를 떠돌아 온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올 초 북한 공작원들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독극물로 살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을 해외의 광산이나 벌목장에 파견해 노예 노동을 시키며 외화벌이를 한다. 이들 강제노동자가 가장 많이 파견되는 국가가 중국이다. 유엔은 김정은이 강제노동자 파견으로 매년 2억3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추산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등에 북한 노동자 수입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북한의 이런 참혹한 실상을 상세히 파악해 국제사회에 전파해야 한다. (중국 등) 북한을 돕는 나라들의 후안무치한 행태와 김정은의 핵 위협 본질을 세계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문명국으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싶은 나라라면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위해 힘을 합해야 한다.
 
귀순병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수술 뒤 의식을 되찾은 그는 “한국 가요를 듣고 미국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꿈 많은 20대 젊은이가 북한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게 돼 기쁘다.
 
브라이언 후크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29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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