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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생활이다]⑥ '공돌이' 희생 요구하는 '공밀레' 슬픈 전설은 계속된다

공대 대학원 실험실 부조리에 대한 고찰: '텀블러 폭탄' 그 이후
◇서론
본 연구는 공대 대학원 랩(lab·실험실)의 '비민주성'을 살펴 보고 공학 석·박사 연구생(이른바 '공돌이')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연구 방법은 대면 조사법을 사용했다. 석ㆍ박사 과정 대학원생 7명과 ‘텀블러 폭탄’ 피의자의 지인 등이 대상이다. 연구는 특히 지난 6월 13일에 발생한 연세대 대학원생 '텀블러 폭탄 사건' 이후의 변화를 살펴봤다. 이 학교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김모(25)씨는 지도교수를 사제폭발물로 공격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김씨는 당시 “논문 지도 과정에서 교수로부터 모멸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선행연구: 서울대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조사'
“타인의 연구 및 논문작성 경험 있다” =13.4%
“적정 수준의 보수를 받지 못했다” =40.6%
“폭언 및 욕설을 들었다” =33.8%
“성에 대한 비하 발언을 경험했다”= 21.2%
※서울대 인권센터와 대학원 총학생회는 지난해에 서울대 대학원생 1222명을 대상으로 한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대학원생 상당수가 연구와 근로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론
1.성과물 인력(引力)의 법칙: 연구 성과는 교수에게 수렴된다
서울의 한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있는 P씨(27)는 최근 자신이 낸 특허에서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지도교수가 지난해에 학생들이 낸 특허에 고교 3학년인 자신의 아들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박씨는 “당시 교수님이 빨리 특허를 신청하라고 채근했는데 아들 '스펙' 용도였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푸념했다. 해당 교수 아들은 올해 3월에 명문대에 진학했다.
 
다른 대학원의 한 교수는 연구원들의 논문에 지방대 교수인 부인을 공동 책임 저자로 올리도록 했다. 연구에 기여한 바는 전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키는대로 했다. 학생들은 “교수님 부인이 연구실적을 쌓은 뒤 다른 대학으로 옮기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돌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공밀레'가 있다.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만든, 연구생들의 피와 땀이 토대가 된 결과물을 일컫는다. 어린 아이를 공양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에서 유래한 은어다. 대학원생들은 "또 교수님만 좋은 공밀레가 됐네" 라고 자기들끼리 푸념한다.   
 
2. 가성비 보존의 법칙: 대학원생 인건비는 최저 값을 유지한다
공돌이들이 ‘가성비(가격 대비 효용 비율)’ 좋은 인력이라는 점은 선행연구들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이는 이번 조사에서도 다시 확인됐다. “지도교수가 차린 회사에서 일했는데, 4대 보험은 언감생심이고 돈도 못 받았다”, “학부생 기말고사 때가 되면 시험 문제를 내고 채점까지 하느라 연구는 주말이나 심야에 한다”, “연구실 물품 구입 증빙서류를 만들고 교수님의 출장 보고서를 쓰다 보면 일주일에 2~3시간밖에 짬이 안 난다”는 등의 하소연이 쏟아져 나왔다.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에 있는 N씨(26) 사연은 그중 특이한 경우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3월에 등록금을 충당하려고 교내에 근로장학생을 신청했어요. 일주일에 6시간, 하루 1시간 정도 학교 업무를 돕고 한 달에 80만원 받는 일이었죠. 뒤늦게 지도교수님이 이 사실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냈어요. '연구도 제대로 안 하면서 시간을 거기다 쓰다니 정신이 있는 녀석이냐. 받은만큼 토해내라'고 소리치며 반성문을 쓰라고 했습니다. 내년 3월까지 연구실에서 주기로 한 장학금도 깎였고요.”
 
3. 교수 관성의 법칙: 관행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난 6월 연세대에서 텀블러 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진 뒤 대학들이 앞다퉈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선포했다. 그러나 공돌이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거의 없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K씨(29)는 텀블러 사건 발생 다음날 지도교수가 불러 면담을 했다. 사건 전날에도 실험실에서 고함치며 윽박지르던 교수였다. 그에 따르면 교수는 “불만 있으면 말로 해라. 폭탄 같은거 터뜨리지 말고”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며칠 뒤 "너 8학군 출신 아니지? 그래서 그런지 좀 모자란 것 같다" 등의 인격 비하 발언이 다시 시작됐다. 달라진 것은 단체 등산이 사라졌다는 것뿐이었다.
 
지난 학기에 대학원에 복학한 K씨(30)는 예전 지도교수를 피해 다니느라 애먹고 있다. 그는 예전 지도교수에게 복학 신청 e메일을 보내면서 끝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빠뜨렸다. 이게 괘씸죄에 걸려 교수는 복학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지도교수를 바꿔 복학했다. 이후 예전 지도교수로부터 '그 따위로 사회생활을 해서 되겠니? 이름 오래 기억해 둘게'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e메일을 받았다. 
 
소수설이지만 관성의 법칙은 이미 깨졌으며 현재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전자공학과 박모 교수는 “요즘은 연구에 뜻이 있는 대학원생 한 명을 양성하기도 쉽지 않다. 연구가 아닌 취업용 학위 취득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 '갑질'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4. 연구실 유전의 법칙: 교수 특성은 연구생에게 대물림된다
실험실에는 교수의 '아바타' 격인 '랩장'(최고학번 선배)들이 있다. 그들은 수년간 생존법을 체득한 존재들이다. 지도교수의 거친 언행을 그대로 따라하고, 후배들의 군기를 잡는다. 공돌이들은 석사·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랩장을 닮아 간다. 그렇게 비민주성은 재생산된다. 
 
지난달 대학원 세미나에 참석한 J씨(30)는 랩장에게 크게 혼이 난 기억이 있다. 내복을 입은 후배에게 농담을 건넨 게 화근이었다. “미친 XX야. 내복을 입은 게 어쨌다고 네가 상관하냐." 알고 보니 랩장도 내복을 입고 있었다. J씨는 “지금도 연구원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고 랩장을 피해 다니는 처지다”고 했다.  
 
◇결론
대면 조사에 응한 대학원생들에 따르면 바뀐 것이 별로 없었다. '텀블러 폭탄 사건’을 일으킨 김씨는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인권 TF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게 달라져는 모르겠다" , “사건 이후 상담이나 인권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등의 말을 했다. 대학원 연구생들은 성과물 인력의 법칙, 가성비 보존의 법칙, 교수님 관성의 법칙, 연구실 유전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관련기사
※이 기사는 국내 대학 공학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7명과 '텀블러 폭탄' 피의자를 면회한 지인 1명, 현직 대학 교수와의 인터뷰를 논문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현·최규진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일러스트=심정보 디자이너
[400자 상담소] ‘가내수공업'식 연구실은 시대착오
구본경 오스트리아 IMBA 그룹리더

구본경 오스트리아 IMBA 그룹리더

한국의 대학원 랩은 '가내수공업' 공장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연구생들을 가성비 좋은 일꾼으로 여기는 교수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대학원생과 정부가 '대학원생 표준 임금표'를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매년 임금협상을 합니다. 대학원을 소수 정예화하고 연구생이나 조교에게는 지위와 역할에 맞는 처우를 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는 대학이 학교 내에서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학내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도 필요한 조치로 보입니다. 그리고 교수들이 '제왕적 권위'를 누리는 대학 풍토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구본경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 그룹리더(줄기세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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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