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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따위 오지마" 샐러리맨 상징 '야근ㆍ서류' 없애는 日

일본 도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丸の内). 도쿄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37층짜리 빌딩에 과자회사 ‘가루비(calbee)’가 자리하고 있다. 22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2000㎡(약 606평) 남짓한 탁 트인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28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사무실 좌석은 3분의 2정도 밖에 차지 않았다. 기자를 안내한 공보과의 마세 사토에(間瀬里恵)는 “금요일에는 출근하는 사람이 훨씬 더 적다”고 말했다.
 
가루비는 올해부터 근무장소나 시간의 제한을 없앤 ‘모바일 워크’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출퇴근 시간을 원하는대로 조정할 수 있고, 재택근무에도 제한을 없앴다. 주 5일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도 있다고 한다.
 
또 하나 독특한 제도는 자리가 정해져있지 않은 ‘프리 어드레스’ 제도다. 회사에 출근하면 매일 자신이 앉고 싶은 자리를 골라 앉는 방식이다. 책상은 4인석이 기본으로 칸막이가 없다. 매번 다른 자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고정 전화기나 서랍도 없다. 서류를 쌓아놓을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작성할 서류의 양도 줄었다.  
 
"12시 출근, 5시 퇴근" 자리도 마음대로
이날 오후 12시반쯤 출근한 마케팅본부 직원 오야마 미카(大山美香)는 5시쯤 퇴근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다른 사람 옆에서 일을 하니까 평소에는 전혀 접할 일 없는 사람들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마케팅본부의 츠지가와 후미아키(土川章明) 과장은 한참 떨어진 곳에 앉아있었다. 상사가 맨 안쪽에 앉고 그 아래로 부하직원들이 앉는 사무실 배치의 고정관념이 이 곳엔 없다. 그는 “빨리 퇴근하는 날은 달리기를 한다. 몸을 움직여서 리프레시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매일 다른 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 책상위에는 고정전화기나 서류가 없이 깨끗하다.

직원들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매일 다른 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 책상위에는 고정전화기나 서류가 없이 깨끗하다.

책상은 보통 4인석이 기본이고, 독립된 공간을 원할 땐 칸막이가 있는 솔로석(사진 왼쪽)을 이용한다.

책상은 보통 4인석이 기본이고, 독립된 공간을 원할 땐 칸막이가 있는 솔로석(사진 왼쪽)을 이용한다.

집중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집중석'.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다.

집중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집중석'.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다.

 
이런 근무제도에 대해 처음엔 조직 내 반발이 거셌다. ‘부하 직원 관리가 안된다’, ‘상사가 어딨는지 몰라 불편하다’는 등의 우려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를 밀어붙인 건 마츠모토 아키라(松本晃) 회장이었다. 아예 “회사 따위 나오지 말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성과만 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이나 장소는 상관없다는 얘기다. 그는 “성과가 시간에 비례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실제 가루비의 1인당 영업이익은 2012년 401만엔(약 3863만원)에서 2017년 747만엔(약7197만원)으로 크게 뛰어올랐다.
 
'일하는 방식 개혁' 유행어대상 후보에...총리 주도 개혁 
‘일하는 방식 개혁’이라는 단어는 2017년도 올해의 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만큼 일본사회의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2015년 12월 유명 광고회사 덴츠 여사원의 자살사건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일본식 근무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일본 샐러리맨의 상징인 야근과 산더미 같은 서류, 지옥같은 통근전철 등을 바꿔보자는 논의가 진행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여기에는 1.46명(2015년)의 낮은 출산율과 일손 부족이라는 사회적 배경도 작용했다. 일할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낮은 노동생산성의 비효율적 구조를 그냥 둬선 안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2015년 일본생산성본부 조사에서 28개국 가운데 21번째로 낮은 생산성을 기록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일하는 방식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이유다.
 
올해 일본 후생노동성의 ‘일하기 좋고, 생산성 높은 기업’으로 뽑힌 이토추(伊藤忠)상사는 아예 아침 출근시간은 오전 5시부터 가능하도록 했다. 대신 아침을 무료로 제공하고, 야근 때와 똑 같은 수당을 지급했다. 단순히 출근시간을 앞당겼을 뿐인데 효과는 상당했다. 3년 만에 오후 8시 이후 근무자가 30%에서 5%로 줄었고, 시간외 근무시간도 같은 기간 15%나 줄었다.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데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오피스가구제조업체인 오카무라 제작소는 매주 수요일이 ‘노 야근 데이’다. 오후 6시반이 되면 컴퓨터가 강제 종료된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상사의 허가를 받아 야근을 할 수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퇴근시간에 맞춰 일을 끝내야 한다는 사원들의 의식 변화다. 오후 6시반까지 일을 끝내려면 거꾸로 언제까지 뭘 해야하는지 계산해 효율적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올 3월 일본 정부는 ‘일하는 방식 개혁’의 실행계획을 발표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기준법’을 개정해 장시간 노동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방침이다. 법안에는 시간외 근로의 상한을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으로 제한하고, 특별한 업종에 한해서만 월 100시간 미만, 연간 720시간 이하로 규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카무라 제작소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반엔 컴퓨터가 강제종료된다. [사진=마이니치 신문]

오카무라 제작소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반엔 컴퓨터가 강제종료된다. [사진=마이니치 신문]

"월급 줄어" 불만... 퇴근만 강요 '지타하라' 신조어도
다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단 근무시간이 줄어드니 월급이 주는데 대한 반감이 크다. 또 일은 줄지 않았는데 근무시간 단축만 강요받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공안조사청에 근무하는 K씨는 “정부기관이다 보니 ‘일하는 방식 개혁’을 가장 먼저 추진하고 있는데 일은 줄지 않고 퇴근만 강요하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간단축(時短)을 강요(harrassment)하는 ‘지단 하라(じたハラ)라는 말도 생겨났다.
 
민간분야에선 기존의 인사평가 방식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IT기업인 사이보스는 노동시간과 경력이 연동된 기존의 ‘임금 테이블’을 과감히 버렸다. 근무시간이나 재택 여부 등 근로 조건을 다양화 하는 대신에 임금제도에 ‘시장성’이라는 개념을 적극 도입한 것이다. 예를 들어 주 3회 재택근무를 하는 30세 프로그래머 A씨의 경우 연봉 기준은 그를 데려오려면 얼마를 제안해야하는지 그의 시장성에만 달려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방식이 결코 직원들에게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사이보스 아오노 요시히사(青野慶久) 사장은 “어떤 의미에선 격차를 조장한다.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해 함께 맞춰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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