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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실질심사는 어쩌다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돼 버렸나

‘불구속=무죄’ 아닌데…
서울중앙지법은 2일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최 전차장이 경기도 의왕에 있는 서울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은 2일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최 전차장이 경기도 의왕에 있는 서울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영장판사 교체해라. 우병우 라인은 전부 기각이냐? 국민은 먹고살기도 바쁜데 오죽하면 판사 이름을 외우겠느냐?’ ‘정치검사들 난리 났겠네. ㅋㅋ 이쯤 되면 정치보복·직권남용 오히려 역조사해야 되는 거 아니냐?’….
 
2일 오전 2시30분, 국가정보원 불법사찰 개입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최윤수(50) 전 국정원 2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기각했다는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올라오자 달린 댓글들이다. 심야시간이었지만 “수사 진행 경과, 피의자 주거와 가족관계, 소명되는 피의자의 범행 가담 경위와 정도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기각 사유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수천 건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며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오 부장판사 이름은 이날 오전 대형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영장실질심사’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재판상 구금이 필요한지 여부만 본안 재판에 앞서 미리 판단하는 절차인데도 불구하고 유무죄를 가리는 것 처럼 여겨지면서 과도한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관람하듯 실질심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각자 정치 성향에 따라 찬사와 비난을 쏟아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말 최순실씨부터 시작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에 이르기까지 국정 농단 사태 관련 주요 피의자들의 영장실질심사가 있는 날이면 발부·기각 여부를 두고 네티즌의 날 선 비판, 법관에 대한 신상털기, 정치권의 비판성명이 공식처럼 이어지고 있다. 정권 교체 이후 본격화된 검찰의 ‘적폐수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조계 안팎에선 영장실질심사가 승패를 가르는 축구경기처럼 받아들여지면서 공정해야 할 절차가 여론재판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년 전 도입된 영장실질심사
‘신체 자유가 제한되는 경우는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추구권이 상실되고, 고용관계와 사업관계 등 경제생활은 물론 사회·정신적 모든 생활이 파괴되며, 세인으로부터 유죄 추정을 받아 개인의 명예와 장래 취업에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히게 되고, 형사소추 관련해서는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 수집 등 방어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없게 되고, 유무죄 판단에 있어 법원이 편견을 가지게 할 우려가 있으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도 빨리 신체의 자유를 얻기 위해 본의 아닌 자백을 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저해하는 수도 있고, 가족의 생활도 곤궁에 빠지게 되는 등 그 손실이 크다’.(헌법재판소 93헌가2 결정문 15쪽)
 
1993년 말 구속 피의자에 대한 법원의 보석 허가 결정을 검사가 즉시 항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던 형사소송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적시한 이유 중 한 대목이다. 구속은 어쩌면 죄를 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강력하게 침해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헌법상 무죄 추정, 불구속수사·재판 원칙의 중요성을 천명한 것이다.
 
이 같은 헌법 해석을 근간으로 97년 도입된 게 영장실질심사 제도다. 이전까지 법원은 검찰이 서류만 형식적으로 제대로 갖췄다면 구속영장을 대부분 발부했다. 하지만 구속수사를 둘러싼 인권 침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법원이 전면에 나섰다.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법관이 피의자를 직접 만난 다음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제도 도입 후 20년간 피의자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한국 형사소송 구조는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95년 14만4314건이었던 구속건수는 지난해 3만2369건으로 줄었다. 검찰의 청구건수도 같은 기간 17만1226건에서 4만83건으로 급감했다.
 
영장실질심사가 중요한 이유는 피의자에게 다소 불리하게 설계된 우리 형사소송 구조 때문이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수사 기록은 변호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서다. 즉 검찰은 수개월 이상 내사·수사한 증거를 갖고 법관에게 구속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피의자 측은 수사 기록도 못 본 상태의 변호인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피의자 대부분이 심사 하루 이틀 전 변호인을 선임하는 한국적 현실을 감안하면 실질심사에서 조차 피의자가 제대로 항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장전담을 지낸 재경지법 한 부장판사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법관은 단순 판단자가 아니라 후견적 지위에서 증거 능력 없는 증거까지 다 보고 구속이 필요한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구속된 피의자가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오는 일이 종종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총 3만1447건의 구속사건 판결 중 1심에서 실형 선고된 사건은 2만2408건으로 71.2%였다. 집행유예 8203건(26.1%), 벌금형 621건(1.9%), 무죄 182건(0.6%) 순이었다. 구속사건 중 30%가량이 본안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얘기다. 이는 검찰의 역량이 총결집된 권력형 비리사건 수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앙SUNDAY가 2000년 이후 지난 4월까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수사해 구속기소한 권력형 비리사건 피의자 중 형이 확정된 119명의 판결을 추적한 결과 이 가운데 12명(10.1%)이 무죄였다. 집행유예 판결은 31명(26.1%)이었다. 구속기소됐지만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들에게 지급하는 형사보상금(재심사건 제외) 지급건수는 2015년 기준 479건(86억1800만원)에 달했다. 조성용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가 소명되는지를 보기는 하지만 이는 검찰이 일방적으로 정보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법관이 내린 설익은 상태의 결론이다. 구속됐다고 유죄가 아니고 불구속됐다고 무죄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구속 여부를 두고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할 일이 아니다. 본안 단계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민이 ‘구속=유죄=처벌’로 보는 이유는 뭘까. 검찰과 정치권의 과도한 반발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검찰은 올 들어 주요 사건 피의자에 대한 영장 기각에 잇따라 반발해 왔다. 지난 9월엔 입장문을 통해 “새로운 영장전담 판사들이 배치된 이후 국민 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영장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기각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달 27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나자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란 중대범죄가 인정돼 무거운 처벌이 예상되면 일응 간주되는 것”이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 혐의자들은 도망갈 우려도 상대적으로 크므로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취지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구속 사유에 있어 범죄 중대성은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검찰이 중대범죄라 주장한다고 무조건 도망 염려가 크다고 봐야 한다면 전근대 왕정국가와 뭐가 다른가. 그건 검찰이 100% 신뢰를 받을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불구속 수사의 불편함은 감수할 정도”
영장 발부 여부를 두고 각자 속한 정당의 이익에 따라 비판을 쏟아내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치권도 문제다. 김관진 전 장관이 석방되자 “적폐 판사들을 향해 국민과 떼창으로 욕하고 싶다”(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판사가 우병우 전 수석과 동향이며 연수원 동기”(송영길 민주당 의원), “문재인 정권의 가혹함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란 논평이 이어졌다. 반복되는 정치권의 편향적 주장을 보다 못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일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 이는 여론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가장해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것”이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선 검찰이 구속수사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사상 편의를 위해선 구속하는 게 더 편하겠지만 불구속수사한다고 해서 마치 수사가 제대로 안 될 것처럼, 무죄를 선고한 것처럼 여론 공세를 펼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검사장을 지낸 석동현 법무법인 대호 고문변호사는 “현행범도 아닌데 구속을 남용해선 안 된다. 당사자가 구속되면 겪게 되는 불이익과 비교해 수사상 불편함은 감수할 정도다. 구속이 수사의 최종 목적, 나아가 처벌 수단으로 인식돼선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조성용 교수는 “영장전담 판사들이 여론 눈치를 보도록 압력을 가하는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 특히 정치지형에 따라 공수를 바꾸는 정치인들이 문제다. 외국 같으면 사법방해죄라도 적용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법원도 구속과 불구속의 기준을 일반인 입장에서 지금보다 잘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관으로 재직할 당시 영장실질심사 도입 실무를 담당했던 황정근 변호사는 “구속영장 발부·기각 사유가 모호하니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오해가 생긴다. 판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영장항고제를 도입하거나 사유를 보다 명확하게 밝혀 오해의 소지를 줄이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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