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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사연 품은 서늘하게 아름다운 시편들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 표지.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 표지.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  
박신규 지음, 창비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이 시편들을 읽는 한나절 내 내 겨드랑이 몇 번이나 떨렸다 (…) 단언한다. 소리 없는 절창의 하나이다.' 
 시집 뒤표지 '추천사'라는 형식의 글이 대개 그렇듯, 덕담 같은 과장인가. 아니면 냉정한 계량인가. 추천사를 쓴 이는 고은 시인, 그가 극구 칭찬한 시집의 지은이는 박신규(45) 시인이다. 30대 후반부터 시 발표를 시작한 '무명 시인' 박씨의 첫 번째 시집이다.  
 절창(絶唱)은 빼어나게 잘 지은 시나 노래라는 뜻, 뭔가 가슴을 쿡쿡 찔러 쑤시게 한다는 것. 시집 안에 가지런히 실려 있는 60편은 추천사가 과장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만 같다. 무심히 흘려보낼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실어 읽다 보면 겨드랑이든 어디든 건드린다. 시집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서늘한 아름다움, 얼핏 얌전해 보이지만 처절하고 기막힌 사연을 내장한 시편들이다. 
 '들별꽃'은 노골적으로 읽는 이의 눈물을 요구할지 모른다. 울고 울고 또 우는 얘기, 커다란 슬픔 앞에서도 살아남으려면 먹어야 해서, 먹으면 토가 나오는데도 어쩔 수 없이 먹고 그러다 토하고 다시 우는 얘기다.
 '들별꽃'에 감정이 소진돼 덤덤해졌다면 '김사인과 싸우다'로 넘어가면 어떨까 싶다. 여기서 김사인은 우리가 아는 김사인 시인 맞다. 김사인 시인을 아는 이라면 빙그레 미소 짓게 되는 작품이다. 2쪽에 걸쳐 빼곡히 실린 시를 읽고 나면 김사인 시인이 의문의 1패를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김사인에 대한 천연덕스러우면서도 푸근한 오마주다. 아니면 김사인으로 대표되는, 농촌정서라고 해야 할, 어떤 옛 감정과 기억의 덩어리에 보내는 시인의 연서인지도 모르겠다.
 절창이라면 응당 그래야겠지만 박씨의 시에는 허세나 기교가 없다. 자폐적인 내면의 소통 불능과도 거리가 멀다. 마음을 다한 비유와 생략, 배치를 통해 있었던 일들, 안 잊히는 일들을 소환하고 기록할 뿐이다. 그렇게 시집에 불려 나온 것들은 제주 4·3 사건이기도 하고('불카분 낭'), 편집자로 일하는 출판사 사무실 풍경이거나('유리비행'), 서정주 『질마재 신화』에 나올 법한 어리숙하지만 진실된 사람들의 얘기다('지독한 사랑'). 
 '사라진 유산' 같은 작품에서는 은어 수박 향이 살아나는 것 같다. '청혼'의 수사(修辭)는 절묘하다. '검은 마루 붉은 빛'의 이미지는 생생하다. 시집을 읽는 동안 눈이 환했다.
 
박신규 시인. 1972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문학동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Yunseul

박신규 시인. 1972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문학동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Yunseul

 
사라진 유산
 
여름에 이르는 길목은 향기로웠다
밤물결 근육이 진초록으로 단단해지면
은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여뀌꽃들 한층 더 붉어진 얼굴로
바짝 물가에 붙어 마중하고
은하수는 한껏 부풀어 터지는 젖을
요천수(蓼川水)에 흘려보냈다 
지칠 새 없이 세찰수록 은어떼 냄새는
강둑을 타넘어 마당 지나 
방문을 밀고 덮쳤다
 
수박 향이 난다고들 했지만
어린 내게는 그 아이 냄새였다
웃고 울어 살구꽃 피고 지게 하던
잿말 가시내는 내 꿈속까지 훔쳤다
뜨겁게 파닥거리다 서늘하게 젖어 깨면
강물 속 반딧불은 더 맑게 흐르고
은어들은 더 진하게 익어 오르고 있었다
절로 부끄러워 뒤안으로 들면
장독대에 살구떼가 쏟아져내렸다
노랗게 으깨져 서운했다가
시고 서러워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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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