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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팟명소! 1억9000만원 터진 집' 정선의 슬픈 현수막

[2017 도숙자 리포트:그곳에서 삶이 끝난다] ③한탕 도시에서 관광 명소로
“안마 안 받으세요? 아가씨 있어요.” 호객꾼이 차를 향해 소리질렀다. 조금 뒤 신호등 앞에 멈춰서자 누군가 차창을 두드렸다. 창문을 내리자 중년 남성이 모텔 이름이 적힌 명함을 건넸다. “콤프 2만원으로 해줄게요.” 콤프는 게임 실적에 따라 카지노 이용자에게 강원랜드가 지급하는 포인트다. 인근 지역에서 숙박·식사 등에 현금처럼 쓸 수 있다. 
가족 동반 여행이 엄두가 나지 않는 곳
지난 6일 오전 7시 강원도 정선군 사북오거리 주변에서 겪은 일이다. 고개를 들자 ‘잭팟명소! 1억9000만원 터진 집’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사우나 홍보용이었다. 모텔 영업을 하는 한 중년 남성은 마주치는 사람에게 명함을 내밀며 “행운의 모텔!”이라고 외쳤다.
정선군 사북읍의 '번화가'인 사북오거리 주변. 숙박 업소와 전당포가 뒤섞여 있다. 한영익 기자

정선군 사북읍의 '번화가'인 사북오거리 주변. 숙박 업소와 전당포가 뒤섞여 있다. 한영익 기자

정선군 사북읍의 경제는 강원랜드 시간표를 따라 움직였다. 가장 활기를 띠는 시간은 카지노가 폐장하는 오전 6시부터 개장하는 오전 10시까지다. 카지노에서 밤을 샌 이들의 휴식 시간이다. 다른 일반 지역과 달리 이곳에서는 아침에 모텔과 안마방으로 손님이 몰린다. 
 
안마방·모텔만큼이나 자주 눈에 띄는 건 전당포다. ‘귀금속’ ‘차량 대출’ ‘카드 대출’ ‘콤프·소액’ 등의 문구를 내걸고 있다. 2박3일간 돌아본 사북읍 일대는 전당포·모텔·성매매 업소가 뒤섞여 있는, 가족 동반 여행에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인생 바치는 카지노 도시 "정선이 유일"
강원랜드를 만들 때만 해도 폐광 지역의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청사진이 있었다. 강원랜드 설립근거는 1995년에 제정된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다. 2004년에는 강원랜드가 ‘가족 중심형 사계절 종합 리조트’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눈길 끄는 변화는 없었다.
 
김진용 고한·사북·남면·신동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공추위) 정책실장은 “이 지역 경제는 강원랜드에 절대적으로 종속된 기형적 구조다. 카지노가 없어지면 이곳 경제도 바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도박 중독자들이 장기 투숙하면서 인생을 바치는 정선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사례다”고 진단했다.
1940년대 암흑기를 거쳐 복합 관광지로 거듭난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앙포토]

1940년대 암흑기를 거쳐 복합 관광지로 거듭난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카지노의 도시’ 미국 라스베이거스 사례가 참고할 만 하다고 말한다. 한 때 ‘씬 시티(Sin City·죄악의 도시)’로 악명을 떨쳤지만 지금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다. 19세기 사막의 작은 철도역 마을이었던 이곳은 1940년대에 카지노가 생기면서 도박과 윤락의 도시가 됐다. 범죄가 창궐했고 자살률도 치솟았다. 그런 이미지를 바꾼 이는 미국의 재벌 하워드 휴즈(1905∼1976)였다. 1960년대 라스베이거스에 정착한 휴즈는 부동산들을 사들인 뒤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그 결과 라스베이거스는 쇼핑·유흥·볼거리가 넘치는 복합 관광도시가 됐다.
카지노 마을을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지역으로 승화시켜 2013년에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프랑스 파리 북부 소도시 앙기엥레뱅. [사진 유네스코]

카지노 마을을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지역으로 승화시켜 2013년에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프랑스 파리 북부 소도시 앙기엥레뱅. [사진 유네스코]

인구 1만2000여 명의 프랑스 파리 북부 소도시 앙기엥레뱅도 카지노를 경제 기반으로 삼고 있는 도시다. 이 도시는 카지노 수입의 약 15%를 문화·예술 분야에 투입한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 미디어아트 기획과 전시가 가장 활발한 곳이 됐다. 공연과 축제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유네스코는 2013년에 이곳을 창의도시로 선정했다.
 
“지자체-공기업 말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강원랜드 관계자는 30일 “카지노의 비중을 낮추고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연·쇼핑 시설에 투자한 라스베이거스의 성공 사례를 참고해 산악형 복합 리조트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매력적인 문화 콘텐트 개발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산악힐링형 숲체험 공원이나 운탄고도 트레킹 코스 등 다양한 레저 공간을 조성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선군 등을 지역구로 삼아 국회의원을 지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여시재 상근부원장)은 “민간의 ‘프로’들을 투입해 제대로 된 투자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태백·영월·삼척 지역과 연계한 관광코스 개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원랜드는 수익의 일부(지난해엔 약 1600억원)를 폐광 지역 개발기금으로 내놓는다. 이 돈은 정선·태백·삼척·영월·보령·화순·문경 등 7개 지역으로 분산된다. 이태희 공추위 위원장은 “개발기금은 장기적 개발 계획 없이 각 지역의 시설 사업에 선심성 예산처럼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독자 대책도 흡연처럼 구체적 목표 있어야" 
급한 불을 끄려면 우선 '도숙자'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당장은 도박 중독 예방 대책을 제대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흡연의 경우 정부가 목표 흡연율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대안도 내놓지만 도박은 그런 게 전혀 없다. 목표도 없이 보여주기식 대응만 내놓는다”고 지적했다. 
 
강원랜드는 자체적으로 중독관리센터(KLACC)를 운영한다. 지난달에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강원랜드로부터 제출받은 ‘중독예방 상담 및 교육 건수’ 등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강원랜드가 도박 중독 예방·치유를 위해 쓰는 돈은 전체 매출액의 0.5%(85억3300만원) 수준이다. 호주·캐나다 등은 사행업체에 매출액의 2%를 중독 예방·치유에 쓰도록 강제한다. 이충기 경희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 주력이 게임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해 공공부분 평가에서 강원랜드에는 다른 공기업들과 달리 ‘건전화 평가’ 항목을 넣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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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익·김준영·하준호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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