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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서훈 국정원장의 결정적 순간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국가정보원은 상처투성이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은 망가진다. 국정원은 경멸과 재구성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그 한복판에 국정원 개혁위원회와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있다. 개혁위원장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다.
 
위엄과 자존의 상징 공간은 조직마다 있다. 정부 부처, 대기업, 가문(家門)이건 비슷하다. 그런 영역은 엄밀하다. 금단의 불가침 분위기가 풍긴다. 국정원의 그 공간은 메인 서버다.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최고 책임자인 원장도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다. 서버는 판도라 상자”라고 했다. 금기는 깨졌다. TF는 국정원 메인 서버의 비밀자료에 접근한다.
 
개혁위와 TF의 주류는 시민단체 출신, 파견 검사, 변호사, 교수들이다. 그들은 국정원의 탈선·비리를 추적한다. 사명감은 넘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보 업무에선 아마추어다. 정보 세계는 진정한 프로의 무대다. 경험하지 않으면 실감하기 힘들다. 프로에게 참담한 장면이 있다. 아마추어로부터 모욕을 당할 때다.
 
남재준· 이병기 전직 국정원장은 구속됐다. 이병호 전 원장도 수모를 당했다. 박근혜 정권의 정보책임자 모두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그 모습은 국정원의 추락을 압축한다. 하지만 메인 서버 문제는 그런 충격과 치욕보다 심각하다. 메인 서버의 기밀은 압도적이다. 서버의 데이터 속에 007식 극적 성취가 있다. 정보 실패의 좌절과 교훈이 있다. 공작은 합법과 탈법 사이를 오간다. 음지의 어둠은 숙명이다. 휴민트(Humint)의 은밀한 활약, 미국과의 정보 교류도 있을 것이다. 서버는 국가 1급 비밀 저장소다. 서버의 생명력은 외부와의 차단과 보안으로 단련된다.
 
서버가 적폐청산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런 발상과 실천은 전례가 드물다. 선진국들은 그런 방식으로 정보기관을 개혁하지 않는다. 지난 10월 케네디 대통령 암살 관련 기밀 문서가 공개됐다. 미국 국립 문서관리청이 내놓은 문건은 평범했다. 음모론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사건이 난 지 54년이다. 하지만 기밀의 미공개 사유는 존중된다. 그것이 일류 국가의 비밀 운영 행태다.
 
박보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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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곤궁한 처지는 대부분 자업자득이다. 그 이미지는 타락으로 시작한다. 댓글을 달고 유치한 합성사진을 만드는 곳이다. 정치 개입 금지는 국정원 다짐이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만성적인 질환이 돼버렸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자기 치유능력의 상실 탓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서버의 접근과 대상 선정, 검색은 엄격한 절차 속에 진행된다. 하지만 야당은 비밀 취급인가 문제, 대상 선택의 이념적 편향 논란을 제기한다.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그 속성은 독특하다. 크게 노출되건, 슬며시 캐건, 내용을 전달받건 마찬가지다. 그로 인한 파장은 불길하다. 후유증은 정보 교류의 축소로 전망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고급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국정원 서버에 미국이 생산한 대외비 정보도 담겨 있다. 그것이 누설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CIA는 지난 5월 ‘코리아 미션(Mission)센터’를 만들었다. 독자적인 대북 정보수집·공작 기관이다. 그 개설에는 한국 정보 당국에 대한 불신이 깔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직원 헌장은 단호하다. “보안을 목숨같이 여기고 직무상 비밀은 끝까지 엄수한다.” 하지만 정보요원들의 의심과 불만은 깊다. 지난해 4월 류경식당 북한 종업원의 집단 탈출이 있었다. 그 드라마는 젊은 요원들의 극비 자부심이다. 그런 기밀도 TF팀이 접근했다.
 
국정원은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뀐다. 대공 수사권은 내놓는다. 29일 내놓은 자체 개혁안이다. 국정원의 뿌리는 중앙정보부다. 1961년 중정의 창설자는 전 국무총리 김종필(JP)이다. JP의 지론은 수사권 포기다. “수사권은 5·16 혁명정부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가질 계획이었다. 나는 민간정부 출범 뒤에 검찰에 환원시키려 했다. 하지만 민정 이양(63년 12월) 이전에 나는 중정을 떠났다. 후임자들은 수사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는 치열하다. 자주국방의 바탕은 정보력이다. 정보가 안보의 승패를 가른다. 위기관리 역량은 정보의 수준에서 갈린다. 북한은 ‘로켓 강국’으로 자처한다. 29일 새벽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미국 본토를 위협한다. 북한 관련 정보는 긴급을 요한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정보기관 재건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 출발점은 정보요원의 자부심 회복이다. 개혁위와 TF의 활동 행태가 달라져야 한다. 메인 서버에 의존하는 방식은 철회돼야 한다. 공직 책임자에게는 전환의 결정적 순간이 있다. 서훈 원장의 결심이 절실하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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