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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황병서 총정치국장 처벌…군사 지도력 불안정 신호탄인가?

기자
정영태 사진 정영태
국가정보원(NIS)이 국회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제 1 부국장이 처벌받았고, 인민군 총정치국에 대한 검열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중앙당조직지도부가 당에 대한 군 총정치국의 ‘불손한 태도’ 가 그 명분이란다. 첩보수준이어서 관련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이에 근거해 볼 경우, 북한군 내부의 심각한 불안정성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김일성 시대 최종학 총정치국장 숙청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1960년 9월 8일 김일성은 “종파분자들은 불순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를 거부”한다고 하면서, 총정치국장이었던 “최종학은 의식적으로 당의 로선을 반대”하고, “당의 지시를 집행하지 않았다”고 질타한 후 최종학을 제거하였다. 이어 군대의 정치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군대 내 당 조직 자체의 개편까지 단행하였다.

지난 4월 13일 열린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에서 황병서를 바라보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지난 4월 13일 열린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에서 황병서를 바라보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기존에는 당중앙위원회 결정에 따라 총정치국장이 독단적으로 군대의 정치사업을 운영해 옴에 따라 총정치국장의 전횡이 크게 우려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북한의 각급 단위에 당위원회를 두어 ‘총정치국장이 혼자머리로 생각하고 독판’치던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군관과 정치일군을 포함한 모든 당원들이 함께 참가하는 당위원회를 별도로 두어 당 중앙위 결정을 집단적으로 토론하여 대책을 세우고, 아래 단위의 사업도 감독 통제하고, 총정치국 사업도 비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써 당위원회가 총정치국을 감독하는 기관이 되었다. 총정치국은 인민군당위원회의 집행대책에 대한 토론ㆍ결정에 근거하여 사업하는 데 국한함으로써 인민군 당위원회의 사업부서에 불과한 것으로 되었던 것이다. 1969년 2월 ‘인민군 당 제 4기 4차 전원회의’에서 오진우 주도하에 허봉학 외 약 10여 명의 고위 장성들의 숙청이 있고 나서 북한군의 집단적인 당 정치사업이 한층 더 개선 및 강화됐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5주기를 맞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 그 옆에 황병서과 최용해(왼쪽부터)가 나란히 서 있다. 2016.12.18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5주기를 맞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 그 옆에 황병서과 최용해(왼쪽부터)가 나란히 서 있다. 2016.12.18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반면,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는 달리 당의 집단적 결정기능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중앙당의 집단적 결정을 위한 당대회, 당대표자회의, 전원회의, 정치국회의 등을 거의 유명무실화 하고 단지, 당 사업 실무부서인 비서국 중심으로 당을 획일적으로 이끌어 온 특징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그는 북한군의 집단적인 정치적 결정을 위한 군당위원회 활동을 거의 유명무실화 해 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일반 당 조직의 기능과 역할이 크게 약화하면서 김정일 정권은 군대를 앞세운 대대적인 정치사업을 필요로 하였다. 이것이 선군정치다. 군대를 통한 정치사업으로 정권의 안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군대 내 획일적인 강력한 당지도ㆍ통제체계를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김정일이 총정치국을 직할 통치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김정일은 정권 초기인 1995년부터 10여 년 이상 조명록을 군 총정치국장 자리에 앉혀놓고 직할 통치함으로써 군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군대를 앞세운 ‘선군정권’을 공고화 해왔던 것이다. 이것은 노련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김정일 지도력의 발로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도 아버지 김정일과 같이 총정치국에 대한 직할통치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지도자 경력이 일천한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리 지난 6년간 총정치국장을 두 번이나 갈아 치울 정도로 총정치국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내었다. 이제 그는 할아버지 김일성이 우려했던 것처럼 총정치국의 전횡 위험성을 간파하고 총정치국에 대한 지도 검열과 함께 황병서 총정치국장 처벌까지 단행하기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의 지도력 결핍 징표라 할 수 있다. 향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대북제재가 더욱 심화하면 북한군의 불안정성 또한 높아질 수 있다. 제재로 인해 군대의 외화벌이가 점차 제한되면 정치부 군관들끼리 경쟁도 심화하여 군내 당정치 지휘체계가 붕괴하면서 김정은 정권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향후 김정은 정권이 인적 처벌과 군대 검열만으로 북한군 정치 군관들의 충성과 신뢰를 획득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 볼 일이다.

정영태 동양대학교 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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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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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