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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롱패딩, 라이언 방석, 엑소 음료수… '굿즈' 열풍 왜

구입 과정 즐기고 공유한다 ‘굿즈 팬덤 현상'
22일 오전 7시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앞에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해 1000여 명이 줄지어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7시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앞에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해 1000여 명이 줄지어 있다. [연합뉴스]

완판 행렬 중인 평창올림픽 롱패딩.

완판 행렬 중인 평창올림픽 롱패딩.

지난 22일 오전 7시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지하 1층에는 1000여 명이 운집했다. 이날 판매하는 평창 겨울올림픽 공식 구스다운롱점퍼(이하 평창 롱패딩)를 사기 위해 전날 밤부터 줄을 선 소비자들이었다. 24일에는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에서도 전날부터 밤을 새운 소비자 수백 명이 대기하는 풍경이 재연됐다. 최근 3일간 국내 최대 인터넷 중고거래사이트 중고나라에 올라온 평창 롱패딩 매매 관련 게시글은 556건에 달한다. 정가(14만9000원)보다 5만~10만원가량 웃돈을 얹어 매매되고 있다. 직장인 이모(34)씨는 “최근 화제의 중심인 평창 롱패딩을 사려고 했지만 도저히 구할 수 없어 중고거래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3만 장 한정으로 제작한 평창 롱패딩은 지난달 30일 판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처럼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판매 개시 보름 동안은 매장에 가면 손쉽게 살 수 있는 흔한 겨울 옷이었다. 하지만 이달 중순부터 기온이 급강하하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평창 롱패딩이 인기 ‘굿즈(Goods)’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면서 사람들이 몰리는 팬덤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굿즈는 일본 아이돌 팬 사이에서 유래한 단어다. 팬들에게 인기 많은 아이돌 사진으로 만든 티셔츠·머그잔·열쇠고리 등을 말한다. 평창 롱패딩 역시 실제로도 평창 겨울올림픽을 홍보하는 850여 개 굿즈 중 하나다.
 
백화점엔 화장품·의류 대신 굿즈 매장
서울 중구 롯데영플라자 내 SM 가수들의 굿즈를 판매하는 매장은 국내외 소녀팬들로 붐빈다. 김경록 기자

서울 중구 롯데영플라자 내 SM 가수들의 굿즈를 판매하는 매장은 국내외 소녀팬들로 붐빈다. 김경록 기자

최근 한국에선 아이돌 굿즈는 기본이고 문재인 대통령, 모바일 메신저의 이모티콘 ‘라이언’ 등 다양한 장르 속 인물·캐릭터를 상품으로 만든 다양한 굿즈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이나 구입 후의 기쁨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경험 소비를 중시한다”고 굿즈 열풍을 설명한다. 기존 고가 명품이 소유했다는 만족감이나 다른 사람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기는 역할을 했다면 굿즈는 캐릭터 성격과 디자인 등 남들과 소통할 다채로운 스토리로 관심을 끌고 있다는 얘기다. 순하리·CU편의점 등 브랜드 네이밍으로 유명한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는 “상품과 판매 플랫폼이 넘쳐나는 시대엔 쇼핑도 놀이처럼 재미있어야 돈이 몰린다”고 말했다. 평창 롱패딩을 사려고 밤 새워 줄을 서고, 다른 사람들과 불평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인 셈이다.
 
원조격인 아이돌 굿즈 시장도 전문화되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롯데영플라자 1층 입구로 들어서자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백현과 시우민의 전신 입간판이 시선을 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외부 업체와 협업해 만든 에코백·인형·디퓨저·식음료 등 굿즈를 판매하는 매장이다. 2000년대 초반 아이돌 콘서트 현장에서나 판매했던 응원봉·브로마이드·열쇠고리 등과 비교하면 굿즈 종류가 다양해졌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로 엑소 요거트 아몬트, 슈퍼주니어 스노우 콜라, 레드벨벳이 좋아하는 리얼넛츠 등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붙은 상품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3월 이마트가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선보인 자체 브랜드(PB) 상품이다. 기존 PB 상품에 아이돌 그룹 이름을 달고 포장을 바꾸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엑소 손짜장은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이마트 라면 매출 10위권에 올랐다. 일본인 관광객 미호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의 얼굴이나 사인이 들어간 각종 굿즈를 모으는 즐거움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엔 샤이니 가사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향이 담긴 섬유탈취제와 열쇠고리를 샀다고 자랑했다.
 
올해 어린이 대통령 뽀로로를 제치고 인기 캐릭터 1위를 차지한 카카오프렌즈의 라이언 인형. [중앙포토]

올해 어린이 대통령 뽀로로를 제치고 인기 캐릭터 1위를 차지한 카카오프렌즈의 라이언 인형. [중앙포토]

9분 만에 1만5000대가 완판된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미니’. [사진 카카오프렌즈]

9분 만에 1만5000대가 완판된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미니’. [사진 카카오프렌즈]

최근 YG엔터테인먼트도 롯데영플라자 1층에 굿즈를 판매하는 YG플레이스를 열었다. 회사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크렁크 인형을 비롯해 옷·모자·목걸이 등 YG 가수 스타일을 담은 패션 제품이 많았다. 김윤 롯데백화점 바이어는 “업계 처음으로 화장품·의류 매장 대신 아이돌 굿즈 숍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해외 팬들의 관광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SM타운과 YG플레이스를 방문하는 전체 고객은 한 달 평균 1만2000여 명에 이른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담은 카카오뱅크 체크카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담은 카카오뱅크 체크카드.

모바일 메신저에 등장하는 귀여운 이모티콘도 굿즈 시장으로 진출했다. 지난 7일 선보인 카카오의 인공지능(AI) 스피커 ‘카카오미니’는 9분 만에 준비한 물량 1만5000대가 모두 팔렸다. 온라인 음악서비스 멜론과 손잡고 정기결제 이용자에겐 절반 가격보다 낮은 4만9000원에 판매한 영향이 크지만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구매자에겐 스피커에 부착할 수 있는 라이언이나 어피치 인형을 제공했다. 스피커에 대롱대롱 매달린 라이언 인형을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는 후기가 소셜미디어에 잇따라 올라왔다.
 
실제로 지난 7월 카카오뱅크가 출범했을 때도 소비자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은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담은 체크카드였다. 지난달 기준 318만 장이 발급됐다. 인스타그램 이용자 사이에선 카카오뱅크 체크카드를 받으면 인증샷을 올리는 게 유행이었다. 8개 캐릭터 중에서도 갈기가 없는 수사자 라이언의 인기가 가장 높다. 라이언은 지난 4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 어린이들의 대통령 뽀로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실제 지난 22일 오후 3시 무렵 찾은 서울 강남구 카카오프렌즈 매장은 캐릭터가 그려진 보조배터리·방석·수첩 등 관련 상품을 구입하러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반포고 2학년인 김호정(18)양은 “귀여워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라이언 제품을 자꾸만 사게 된다”고 말했다.
 
라이언, 선호도 조사서 뽀로로 제쳐
중국 난징에 문을 연 라인프렌즈 매장. [사진 라인프렌즈]

중국 난징에 문을 연 라인프렌즈 매장. [사진 라인프렌즈]

이달 11일 광군제 당일 1만 개가 팔린 라인프렌즈의 브라운 가방 열쇠고리.

이달 11일 광군제 당일 1만 개가 팔린 라인프렌즈의 브라운 가방 열쇠고리.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인 라인의 이모티콘으로 유명한 라인프렌즈는 해외에서 인기가 많다. 중국 온라인 쇼핑축제인 광군제가 진행된 지난 11일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티몰에서 곰 ‘브라운’, 병아리 ‘샐리’ 등 라인프렌즈 캐릭터로 만들어진 제품이 46억원어치 팔렸다. 특히 가방용 열쇠고리 인형은 1만 개, 보조배터리는 약 6000개 판매됐다. 2015년 독립법인으로 분사한 라인프렌즈는 전 세계 8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엔 세계 10·20대 소녀팬을 겨냥한 새로운 캐릭터를 공개했다. 바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캐릭터 구상과 스케치 등 개발 전 과정에 참여한 BT21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BT21은 이미 대만·일본·홍콩·인도 등지 팬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지난 9월에 공개한 이모티콘은 1000만 건 이상 다운로드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굿즈는 다음달 선보일 예정이다.
 
굿즈가 소비 트렌드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서 업계에선 ‘굿즈를 사니 책이 왔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매번 세련된 디자인과 실용적인 굿즈를 선보여 매출이 는 곳이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다. 지난 7월 창업 18주년 기념 이벤트로 진행한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알라딘 서비스 투표’에서도 알라딘 굿즈가 1위로 올랐다. 특히 프란츠 카프카의 『꿈』,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책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베개 굿즈는 수많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었다. 또 인스타그램 스타로 유명한 고양이 히끄의 얘기를 담은 에세이 『히끄네집』이 한 달새 5쇄를 찍는데도 독특한 굿즈가 한몫했다. 책을 구매한 독자에겐 히끄와 동일한 크기의 사진을 선물로 준 것이다. 송진경 알라딘 차장은 “히끄 팬인 독자들을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인데 일주일 만에 준비한 수량이 동이 날 정도록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이후 인스타그램엔 히끄 등신대와 함께 찍은 독자들의 사진들이 올라오면서 지속적으로 책이 팔리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책 『히끄네 집』 독자에게 굿즈로 주인공인 히끄 등신대를 제공한 알라딘. [사진 알라딘]

책 『히끄네 집』 독자에게 굿즈로 주인공인 히끄 등신대를 제공한 알라딘. [사진 알라딘]

 
유통업계는 적극적으로 굿즈 관련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청소년은 물론 구매력이 있는 20·30대 국내외 팬까지 소비자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아이돌 그룹 워너원은 이미 하이트진로·롯데칠성음료·롯데리아·이니스프리 등 10개 넘는 업체의 광고 모델로 활동한다. 특히 멤버 중 강다니엘이 나오는 광고용 브로마이드는 매번 다 팔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거래될 정도다.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는 글로벌 업체와의 협업으로 고급 캐릭터 브랜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라인프렌즈가 영국 유명 자전거 브랜드 브롬톤과 손잡고 출시한 자전거는 지난해부터 2년 연속으로 완판됐다. 카카오프렌즈는 최근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함께 여행용 캐리어에 부착하는 스티커, 네임택 등을 선보이고 있다. 정지원 대표는 “기업들은 하루빨리 공급자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메신저 입소문 기반으로 바뀐 소비트렌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취향·선호도·동선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물건이 아닌 ‘스토리’와 ‘재미있는 놀이’를 파는 감성 마케팅만이 소비자 지갑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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