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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지 않다지만 공포는 남아있다

[르포] 지진 휩쓴 지 열흘 지난 포항
지난 23일 경북 포항시 장성동의 다세대 주택가. 필로티 양식의 건물이 많아 15일 지진(규모 5.4)의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이곳은 인근 대학의 수요를 고려해 ‘OO빌라’ 등 소형 원룸이 많은 곳이다. 한 빌라 벽면에 붙은 분양 광고 현수막에 ‘즉시입주, 내진설계’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인적이 뚝 끊긴 거리엔 ‘쾅쾅’ 쇠망치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인부들이 부서져 너덜거리는 외장재 타일을 제거하는 소리였다. 익명을 요구한 A빌라 건물주(67)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세입자 19가구 중에 10가구는 나가겠다고 한다. 시에서는 경미한 피해라고 겨우 100만원을 지원받는데, 복구하는 데 몇 억원은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지진 발생 9일째인 23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와 현장 점검을 한 결과 여전히 허물어진 담장과 필로티 기둥이 보수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포항=이유정 기자

지진 발생 9일째인 23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와 현장 점검을 한 결과 여전히 허물어진 담장과 필로티 기둥이 보수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포항=이유정 기자

11·15 지진이 훑고 지나간 지 열흘이 지났다. 복구가 진행되면서 주민들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지진이 남긴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위험하지 않다”고 진단한 집에 사는 사람들조차 이런 말을 믿지 못해 대피소 생활을 한다. 흥해읍 한미장관맨션에서 만난 주민 윤석순(69·여)씨는 “시청에서는 ‘계속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데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다. 남편과 큰집에서 생활하며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만 집에 온다”고 말했다.
 
포항시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4일 기준 흥해체육관과 흥해공고·마을회관 등 10여 곳의 대피시설에 1349명의 이재민이 입소했다. 지난 22일 1000명을 웃돌았으나 더 늘었다. “대피소에 있는 사람만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하루 새 300명의 이재민이 유입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24일 지진 수습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흥해체육관을 찾았다.
 
24일까지 포항시에 전문가의 안전 점검을 문의하는 민원전화만 1000건이 넘었다. 포항=이유정 기자

24일까지 포항시에 전문가의 안전 점검을 문의하는 민원전화만 1000건이 넘었다. 포항=이유정 기자

“우리 집도 봐달라”며 전문가의 안전 점검을 문의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24일까지 포항시에 접수된 민원 전화만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재난본부가 파악한 시설 피해는 2만3123건으로 이 중 2만2719건이 민간 주택 등 사유시설이다. 재난본부는 “이 중 2만1383개 소(92.5%)에 대해 응급 복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약 6%의 주택에서 ‘위험’ 내지 ‘사용 제한’ 판정이 내려졌다. 이런 가운데 주민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 관계도 조성되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건물이 기울어져 ‘피사의 아파트’로 알려진 대성아파트는 E동만 철거가 확정되면서 양옆의 D·F동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D동 주민 이모(45)씨는 “철거가 미뤄지면 혹시 이주 대책에서 제외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다시 들어가서 살라고 하면 절대 못 살 것 같다. 주민들 간 이간질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재난본부는 이주 대상 가구를 대성아파트 170가구를 포함해 252가구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LH에서 제공하는 국민임대아파트와 다세대주택 등에 순차적으로 입주하게 된다.
 
포항시 관계자는 “주민들의 불안감을 고려해 언제까지 대피소를 운영하겠다는 기간은 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주 대책을 세우고 안전이 확인된 집은 귀가하도록 차차 안내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흥해읍 우정주택 주민 최호연(38)씨는 “1차 점검에서 간단한 장비 몇 개로 측정하곤 ‘사용 가능’ 판정을 하고 갔는데 어떤 기준으로 안전하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피소에 입소하지 않은 주민들도 친척집·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집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대성아파트 바로 옆 한미장관맨션에는 외벽에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가루를 막기 위해 그물망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전문가들이 대성아파트에 비해 안전하다고 판단한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주부 이모씨는 “겉모습이 멀쩡하다는데 보일러실과 화장실 천장 부분에 세로로 큰 금이 나 있다. 이런 집에서 아이들하고 어떻게 계속 살라는 것이냐”고 울먹였다.
 
도미노처럼 번지는 심리적 불안감은 사후 수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재난피해 심리 전문가인 배정이 인제대 간호학과 교수는 “지진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비슷한 장소나 상황에서 플래시백(flashback·재경험)을 경험한다. 집에 금이 조금만 가 있어도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는 주민들의 반응도 이 때문이다. 초기에 전문가의 응급처치가 필요한 이유다. 대피소에 마련된 심리상담소나 행안부 산하 재난심리센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항=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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