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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복서 이흑산, 주먹이 운다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이흑산이 25일 서울에서 국제대회 데뷔전을 치른다. [김경록 기자]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이흑산이 25일 서울에서 국제대회 데뷔전을 치른다. [김경록 기자]

“흑산, 내 이름 좋아요.”
 
카메룬 출신 복서 압둘라예 아싼(34). 그에겐 이름이 또 하나 있다. 이흑산. 검은색 피부에서 따온 ‘흑’, 산처럼 큰 선수가 되라는 뜻의 ‘산’을 합쳤다. 코리아의 ‘코’ 자도 몰랐던 그가, 이제 자신을 품에 안은 한국에서 ‘챔피언’을 꿈꾼다.
 
이흑산의 고향은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도 다른 나라로 떠난는 바람에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를 위한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16살 때 킥복싱을 접한 그는 군 팀에서 복싱하던 선배를 만나 입대했다. 군에 있으면 먹고 살 걱정이 없고,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면 돈도 벌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카메룬에 있던 시절 동료들과 포즈를 취한 이흑산(왼쪽). 오른쪽은 함께 탈영한 에뚜빌. [사진 이흑산 제공]

카메룬에 있던 시절 동료들과 포즈를 취한 이흑산(왼쪽). 오른쪽은 함께 탈영한 에뚜빌. [사진 이흑산 제공]

카메룬은 폴 비야(84)가 35년 넘게 집권 중인 독재국가다. 군대는 이흑산의 예상과 달랐다. 월급은 없었다. 소속부대에서 지정한 경기에만 출전해야 했다. 13년을 복무해 상병이 됐지만 총 한 번 쏴보지 못했다. 나이지리아로 탈영했다가 붙잡힌 친구는 수용소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군인 신분이지만 평소엔 옷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다 대회가 다가올 때만 훈련했다. 허락 없이 대회에 나갔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구타와 가혹 행위가 잇따랐다. 전역을 하고 싶어도 58세까지 복무해야만 했다.
 
그러던 차에 2015년 10월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한국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4살 어린 동료 에뚜빌과 함께 무작정 선수단을 이탈했다. 이흑산은 “붙잡히면 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 무조건 남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할머니와 6살짜리 딸을 다시 볼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이흑산이 24일 오후 서울 번동 복싱매니지먼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흑산은 '머리가 조금 오래 됐다'고 긁적였다. 김경록 기자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이흑산이 24일 오후 서울 번동 복싱매니지먼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흑산은 '머리가 조금 오래 됐다'고 긁적였다. 김경록 기자

서울로 올라온 이흑산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난민 신청을 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알게 된 캐나다 여성복서 에이미의 도움으로 천안에서 복싱을 시작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프로선수로 정식 데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흑산의 매니저인 이경훈 춘천아트복싱체육관장은 "한국에서 복싱을 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서류를 작성했다. 하지만 난민 인정을 받기는 그리 쉽지 않다. 프랑스어권 국가라 영어를 거의 못한 것도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1994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지난달 말까지 난민 신청자는 3만82명. 그중 난민 지위를 얻은 건 3% 정도인 767명이다. 몇 달간의 짧은 체류 허가를 받은 경우도 1446명밖에 안된다. 난민이 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원을 받는다. 정부도 무작정 받아들일 수는 없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카메룬으로 송환됐을 때 박해받을 것이라는 공포의 근거가 충분치 않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일단 이의 신청을 한 이흑산은 추방에 대한 공포 속에서 샌드백을 때렸다. 1년 4개월간 링 위에 선 건 한 번뿐. 구직도 여의치 않았다. 한국말도 못 하고, 신분도 불분명한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함께 탈영했던 에뚜빌은 비자 갱신 기간을 놓쳐 강제추방 명령을 받고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이흑산은 좌절감 속에 에뚜빌과 함께 눈물 흘렸다.
이경훈 코치와 이흑산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난민 복서'로 유명한 이흑산(34·본명 압둘레이 아싼)이 지난 22일 강원 춘천 아트복싱짐에서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2017.11.24   yang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경훈 코치와 이흑산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난민 복서'로 유명한 이흑산(34·본명 압둘레이 아싼)이 지난 22일 강원 춘천 아트복싱짐에서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2017.11.24 yang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운명이 바뀐 건 이경훈 관장을 만나면서다. 2016년 12월, 이흑산은 스파링 때 만났던 이 관장에게 SNS 메시지를 보내 “함께 운동을 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 친구 사정을 듣고 보니 고민됐죠. 나이도 많고 언제 추방될지 모르니까요.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결심했습니다." 이 관장은 이흑산을 받아들였다. 큰 키(1m80㎝)와 긴 팔(양팔 길이 1m87㎝), 그리고 체력과 유연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흑산에겐 '복싱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기대에 부응했다. 이흑산은 지난 5월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 수퍼웰터급 한국 챔피언에 올랐다. 챔피언이 되면서 그의 사연도 알려졌다. 이일 변호사의 도움으로 지난 7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10개월이나 수용소에 있었던 에뚜빌도 이달 초 한국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이흑산은 “한국이 내게 새로운 삶을 줬다”며 고마워했다. 지난 8월 1차 방어에 성공한 뒤엔 대전료의 절반인 30만원을 희소병 학생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국말은 여전히 어눌하지만 한국 음식은 잘 먹는다.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못 먹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삼계탕. 24일 계체량을 마친 뒤엔 갈비탕에 밥을 능숙하게 말아 김치와 함께 먹었다. 그는 "김치는 정말 맛있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25일 시합을 앞두고 계체량 측정을 마친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이흑산이 24일 서울 번동 한 식당에서 갈비탕을 먹고 있다. 이흑산은 "한국에서 눈을 처음 봤다. 추위는 아직까지 힘들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25일 시합을 앞두고 계체량 측정을 마친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이흑산이 24일 서울 번동 한 식당에서 갈비탕을 먹고 있다. 이흑산은 "한국에서 눈을 처음 봤다. 추위는 아직까지 힘들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세계적인 복싱 인기는 여전히 높다. 이흑산과 같은 체급인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매니 파키아오의 경기 대전료는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원)나 됐다. 메이웨더는 1초에 1억원 이상을 벌었다. 하지만 국내 프로복싱 사정은 열악하다. 4개 단체가 난립해 챔피언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4라운드 경기 대전료는 10만~20만원, 한국 챔피언전 대전료도 100만원 안팎이다. 오히려 전국체전 등에 출전하는 아마추어 복서들은 연봉 2000만~5000만원을 받는다. 프로복싱으로 전향하는 아마 선수는 거의 없고, 격투기 선수나 뒤늦게 복싱을 시작한 선수가 프로복싱을 한다.
 
난민복서 이흑산, 내가 챔피언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5일 오후 강원 춘천시 샘토명물닭갈비 야외특설링에서 열린 한국 슈퍼웰터급 타이틀매치 1차 방어전에서 카메룬 출신 난민복서 이흑산(춘천아트)이 고성진(원우민체)를 상대로 5라운드 40초 KO승을 거둔 후 기뻐하고 있다. 2017.8.5   yang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난민복서 이흑산, 내가 챔피언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5일 오후 강원 춘천시 샘토명물닭갈비 야외특설링에서 열린 한국 슈퍼웰터급 타이틀매치 1차 방어전에서 카메룬 출신 난민복서 이흑산(춘천아트)이 고성진(원우민체)를 상대로 5라운드 40초 KO승을 거둔 후 기뻐하고 있다. 2017.8.5 yang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프로복서들도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한다. 이흑산도 식당·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관원을 가르치고 용돈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엔 복싱에만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 몸값을 높일 수 있는 국제대회 데뷔전이 잡혔다. 25일 서울 신일고체육관에서 바바 가즈히로(25·일본)와 대결한다. 대전료는 90만원. 여기서 이기면 내년 4월엔 내년 4월엔 정마루(30·어바웃복싱)와 아시아 타이틀을 걸고 싸울 수 있다. 이흑산은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태극무늬가 들어간 트렁크를 입는다. "전 복싱으로 성공해 많은 돈을 벌고 싶어요. 일본과 한국 관계를 압니다. 이번 상대를 꼭 이기고 싶습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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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