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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악마의 요염한 세 딸, 싯다르타를 유혹하다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vangogh@joongang.co.kr
 
 
싯다르타는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나무를 하나 골랐다. 인도에서는 그 나무를 ‘피팔라(Peepala)’라고 불렀다. 산스크리트어다. 우리말로는 ‘보리수(菩提樹)’다. ‘보리’는 깨달음의 지혜를 뜻한다. 훗날 싯다르타는 이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이룬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깨달음을 준 나무라 해서 ‘보디 브리크샤(Bodhivriksa)’라고도 불렀다. 중국으로 건너가서 ‘보리수’로 한역(漢譯)됐다. 뽕나무과의 상록수인 보리수는 고대 힌두교에서도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  

 
인도 중부의 산치 대탑에 있는 불상. 붓다 당시에는 "형상을 붙들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라 무려 600년 동안 불상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백성호 기자

인도 중부의 산치 대탑에 있는 불상. 붓다 당시에는 "형상을 붙들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라 무려 600년 동안 불상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백성호 기자

 
  싯다르타는 기운을 차렸다. 마음에 드는 보리수 아래로 가서 앉았다. 깨달음을 향한 열정. 그건 종종 두 얼굴을 가진다. 앞뒤가 다른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 앞쪽은 열정이고, 뒤쪽은 집착이다. 서로 이율배반적이다. 한쪽은 끝없이 내려놓고자 하고, 반대쪽은 끝없이 거머쥐고자 한다. 예를 들어 수행자는 한없이 자신을 비우고자 하고, 동시에 한없이 해탈을 거머쥐고자 한다. 둘은 서로 충돌한다.
 
  그래서 리라의 현이 팽팽해진다. 놓으려는 열정과 잡으려는 집착. 둘은 리라의 현을 양끝에서 잡아당긴다. 그게 심해지면 ‘툭!’ 끊어지고 만다. 6년 동안 고행을 하던 싯다르타의 현이 끊어졌듯이 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묻는다. “아니, 집착 없는 열정이 어떻게 가능한가. 집착이 강해야 열정도 강한 것 아닌가. 그래야 어떤 목표든 성취할 것 아닌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열정=집착’이라는 등식을 너무도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인다.
 
리라의 현이 너무 팽팽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수행의 철로 위에 바퀴를 올려도 깨달음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양쪽에서 서로를 당기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리라의 현이 너무 팽팽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수행의 철로 위에 바퀴를 올려도 깨달음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양쪽에서 서로를 당기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열정=집착’일 때는 바퀴가 구르지 않는다. 한쪽은 앞에서 당기고, 한쪽은 뒤에서 당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의 열차가 나아갈 수가 없다. 제아무리 수행의 철로 위에 자신의 바퀴를 올려놓아도 열차는 ‘칙칙폭폭’ 앞으로 달려가지 못한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붓다의 이치를 담은 『금강경』에는 ‘제대로 된 열정 사용법’이 명쾌하게 기록돼 있다. 다름 아닌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다. 우리말로 풀면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밤이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했다. 나는 싯다르타가 앉았다는 강기슭의 보리수로 갔다. 30m가 넘는 거대한 보리수가 한 그루 있었다. 아름드리 가지와 잎들이 하늘을 덮을 정도였다. 그런데 궁금했다. 2600년 전에 자라던 보리수가 아직도 살아있을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서도 수령이 500~600년 된 나무는 더러 있어도, 1000년 넘는 나무는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2600년이나 된 보리수라니.
 
인도 북부의 보드가야에 있는 붓다의 보리수. 싯다르타는 이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명상에 들었다. 주위 난간 위에 순례객들이 두고간 꽃목걸이가 줄지어 걸려 있다. 백성호 기자

인도 북부의 보드가야에 있는 붓다의 보리수. 싯다르타는 이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명상에 들었다. 주위 난간 위에 순례객들이 두고간 꽃목걸이가 줄지어 걸려 있다. 백성호 기자

 
  알고 보니 사연이 있었다. 싯다르타가 앉았던 보리수의 종자가 2300년 전에 스리랑카로 건너갔다. 역사적 기록도 남아 있다.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 왕은 불교를 믿었다. 아소카 왕의 아들 마힌다와 딸 상가미타는 출가한 승려였다. 둘은 직접 스리랑카로 가서 불교와 함께 그 보리수의 종자를 전했다. 지금도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는 30m 높이의 보리수가 자라고 있다. 싯다르타가 앉았던 보리수의 손자뻘이다. 나는 스리랑카에서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 불교 국가인 스리랑카에서는 ‘국보 중의 국보’로 여기고 있었다.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붓다의 보리수'. 스리랑카 정부는 '국보 중의 국보'로 취급한다.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붓다의 보리수'. 스리랑카 정부는 '국보 중의 국보'로 취급한다.

 
  붓다는 “상(相)이 상(相)이 아닐 때 여래를 보리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상(相)이 실은 무상(無相)임을 불교는 끝없이 설파한다. 그래서 따로 숭배의 대상을 만들지 않았다. 붓다는 사람들이 형상에 집착할까봐 오히려 크게 경계했다. 붓다 당시에는 불상(佛像)이 없었다.  
 
 불교에서 불상(佛像)이 등장한 건 붓다 입멸 후 무려 600년이 지나서였다. 우리로 따지면 고려나 조선의 역사가 통째로 흘러간 뒤였다. 그것도 알렉산더 대왕의 북인도 침략으로 인해서였다. 온갖 신들을 섬기던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인도 북부에서 간다라 미술이 태동하면서였다. 요즘도 일부 기독교인들은 “불교는 불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비판한다. 불교의 역사를 알면 그런 오해가 풀린다.  
 
초기 불교에서는 불상이 없었다. 간다라 미술이 태동한 후에야 불교에도 불상이 생겨났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인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었다. 인도 산치에 있는 불상. 백성호 기자

초기 불교에서는 불상이 없었다. 간다라 미술이 태동한 후에야 불교에도 불상이 생겨났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인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었다. 인도 산치에 있는 불상. 백성호 기자

 
  불상도 없던 시절, 그나마 보리수는 붓다의 큰 흔적이었다. 네란자라 강가의 보리수는 불교도에게 각별한 순례지였다. 순례객들은 보리수에 향수와 향유를 뿌렸다. 그러나 보드가야의 보리수는 잘리기도 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했다. 때로는 역사적 이유였고, 때로는 종교적 이유였다. 결국 1876년에 보리수는 죽고 말았다. 이를 안 영국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1814~1893)이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에서 묘목을 받아 보드가야에 다시 심었다. 약 2200년 만에 인도로 돌아온 보리수였다. 그 나무가 지금 보드가야의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룬 자리에 웅장하게 서 있다.  
 
밤공기는 시원했다. 유미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는 여덟 다발의 풀을 얻어다 보리수 아래에 놓았다. 그 풀의 이름이 ‘길상초(吉祥草)’다. 인도에서는 ‘쿠사(Kusa)’라고 부른다. 우기에는 푸르렀다가, 겨울철에는 말라서 짚처럼 색이 바랜다. 촉감이 푹신푹신하고 땅에서 올라오는 습한 기운을 차단하기에도 좋았다. 싯다르타는 길상초를 뜯어다 자리에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앉으며 다짐했다. “모든 번뇌를 끊지 못한다면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그렇게 마지막 승부를 걸었다.  
 
보리수 주위에 어둠이 내렸다. 그래도 순례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2600년 전 보리수는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목격했다.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보리수는 지금도 푸르렀다. 백성호 기자

보리수 주위에 어둠이 내렸다. 그래도 순례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2600년 전 보리수는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목격했다.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보리수는 지금도 푸르렀다. 백성호 기자

 
리라의 현은 전보다 느슨해졌다. 그렇다고 깨달음의 순간이 눈앞에 닥친 건 아니었다. 싯다르타에게는 아직 건너야 할 큰 강이 남아 있었다. 불경과 성경을 읽다 보면 참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다름 아닌 싯다르타와 예수가 악마를 만나는 장면이다. 둘은 무척이나 닮았다. 여기서 악마란 '내 안의 욕망'을 상징한다. 
 
 한역 경전에 기록된 내용은 이렇다. 좌선하던 싯다르타 앞에 아리따운 세 여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악마의 딸이었다. 악마는 이렇게 생각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중생을 건질 것이다. 깨달음의 경지는 나의 능력을 넘어선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 그를 방해해야 한다.”
 
진흙을 뚫고 연대가 올라와 연꽃이 핀다. 연꽃은 물에 젖지 않는다. 더러움(진흙)과 깨끗함(연꽃)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진흙을 뚫고 연대가 올라와 연꽃이 핀다. 연꽃은 물에 젖지 않는다. 더러움(진흙)과 깨끗함(연꽃)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악마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자신의 목숨이 걸렸기 때문이다. 악마는 이분법적으로 쪼개진 세계의 공기를 마시며 산다. 선이 있어야 악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싯다르타에게 “선업(善業)을 쌓으며 오래오래 살라”고 꼬드겼다. 그래야 악도 생존할 수 있으니까.
 
 싯다르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가 좇는 해탈은 선과 악의 대립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해탈의 세계에는 선과 악의 대립이 없다. 오직 해탈만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다. 복음서는 “하느님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똑같이 해를 비추고 비를 내리신다”고 했다. 여기에 ‘하느님 나라의 속성’이 담겨 있다. 낙원이라는 에덴동산도 그랬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는 선도 없고, 악도 없었다. 그런 대립이 없었다. 그래서 낙원이었다.
 
 악마가 쏜 화살은 그대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싯다르타의 지향이 선악을 넘어선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악마의 화살은 그 자리에 닿을 수 없다.

악마가 쏜 화살은 그대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싯다르타의 지향이 선악을 넘어선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악마의 화살은 그 자리에 닿을 수 없다.

 
 싯다르타가 거절하자 악마의 세 딸이 다가갔다.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를 유혹했다. 세 딸은 각자 집착과 우울과 욕정을 상징했다. 악마는 세 딸과 함께 싯다르타를 향해 활시위를 겨누었다. “당장 돌아가 카필라 왕국의 왕이 되어라. 재가자로서 선업을 쌓아 천상에 태어나라. 그래서 즐거움을 누려라. 그게 최상이다.” 악마의 위협에도 싯다르타는 초연했다. 마침내 악마는 시위를 당겼다. 다섯 개의 화살이 싯다르타를 향해 날아갔다.
 
 싯다르타는 눈을 돌렸다. 화살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날아오던 화살이 ‘후두둑’ 땅에 떨어졌다. 그런 뒤 연꽃으로 변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싯다르타가 선과 악을 나누는 문턱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화살이 녹아 버렸다. 악이 녹아버렸다. 악이 녹은 자리에 대신 해탈의 꽃이 피어났다. 그리스도교식으로 말하면 ‘하느님 나라’가 피어난 것이다.  
 
선악을 가르는 화살이 녹은 자리에 꽃이 핀다. 그 꽃의 이름은 '해탈'이다. 해탈의 꽃은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더 이상 진흙이 없기 때문이다.

선악을 가르는 화살이 녹은 자리에 꽃이 핀다. 그 꽃의 이름은 '해탈'이다. 해탈의 꽃은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더 이상 진흙이 없기 때문이다.

 
 악마의 유혹은 계속됐다. 세 딸은 요염한 자태로 싯다르타를 흔들었다. 싯다르타는 담담하게 말했다. “물러가라. 나는 너희의 시중이 필요치 않다.” 그러자 세 딸은 순식간에 노파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집착과 우울과 욕정이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결국 시들기 마련이니까.  
 
 팔리어로 기록된 경전 『니다나카타』에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싯다르타가 꿈쩍도 하지 않자 악마는 거대한 회오리바람과 폭우, 바윗덩어리와 불덩어리, 칼과 창을 마구 퍼부었다. 그 대목을 읽다가 나는 눈을 감았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바람과 폭우, 바위와 불, 칼과 창. 온갖 번뇌가 쉴 새 없이 날아든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이에 대한 싯다르타의 대처는 남달랐다.  
 
보드가야의 보리수 옆에는 붓다의 깨달음을 기리는 대탑을 세워져 있다. 대탑의 둘레에는 좌선하는 붓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백성호 기자

보드가야의 보리수 옆에는 붓다의 깨달음을 기리는 대탑을 세워져 있다. 대탑의 둘레에는 좌선하는 붓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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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드가야(인도)=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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