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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만난 사람] “대기업 역할 인정해야 더 좋은 벤처 생태계 만들 수 있어”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크루셜텍 본사에서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과 벤처기업 CEO가 맥주잔을 들고 기업가 대 기업가로 만날 수 있는 인텔 페스티벌과 같은 만남의 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크루셜텍 본사에서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과 벤처기업 CEO가 맥주잔을 들고 기업가 대 기업가로 만날 수 있는 인텔 페스티벌과 같은 만남의 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벤처 기업이 513개이고, 이들의 매출이 110조원에 달했어요. 벤처기업의 가능성은 이미 증명된 것인데 이들 기업을 한 단계 레벌업 시키는 스케일업(Scale Up)에 대한 정부 정책은 너무 후진적입니다.”
 
지난 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크루셜텍 10층에서 만난 안건준(52) 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기업의 성장 정책을 얘기하면서 목소리가 커졌다. 원형 회의 테이블에 인터뷰 사전 답변서가 놓여 있었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속 깊이 담아둔 얘기라는 뜻이다. 스케일업은 스타트업(창업벤처) → 스케일업(성장성숙) → 레벨업(중견·글로벌)으로 이어지는 벤처기업 성장 사다리의 중간에 위치한다.
 
스케일업이 왜 필요한가.
“1997년 벤처 특별법 제정 이후 20년 동안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던 회사가 9만 개 정도인데 6만3000개가 살아남았다. 이것만 해도 굉장한 숫자다. 이들 벤처에 대한 스케일업을 통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기업 1000개가 나온다면 매출 100조원짜리 기업이 만들어지는 거다. 그러면 좋은 일자리는 저절로 생긴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나.
“벤처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기업 생태계는 대기업 맞춤형이다. 소위 말하는 재벌 생태계다. 이를 부정하면 벤처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 숫자도 증명한다. 벤처기업 72%가 B2B 영역에 걸쳐있다. 대기업 없이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골프장에 비유해 보겠다. 기술 벤처를 페어웨이 잔디, 대기업은 페어웨이 잔디를 둘러싼 멋진 나무라고 합시다. 잔디가 잘 자라 있고, 멋진 나무들이 가장자리를 지키는 명문 골프장, 그게 바로 일본이다. 하지만 한국은 페어웨이에 소나무가 듬성듬성 솟아 있고, 잔디도 성긴 이류 골프장이다. 그래서 잔디를 더 심어야 하고, 이들이 햇볕을 쬘 수 있도록 소나무도 자리를 옮겨야 한다.”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소나무를 옮겨 심겠다고 정부가 나서 삽질을 시작하면 가지가 상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강제하면 안 되고 민간이 주도해 소나무를 옮겨 심어야 한다. 이를 통해 대기업과 혁신 벤처가 함께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연도별 벤처 기업 증가 추이

연도별 벤처 기업 증가 추이

벤처기업협회는 이달 말 ‘혁신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법체계 혁신과 민간중심 정부정책 혁신, 공공데이터 전면 개방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안 회장은 “5대 대기업과 생태계 조성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제 부처 합동으로 이달 초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을 내놨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7년 벤처기업특별법을 만들었다. 다소 급진적이기도 했지만, 결과물이 나왔다. 당시 이스라엘 기업인들이 벤치마킹한다며 이를 공부하고 한국을 찾아왔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남한 면적의 7분의 1에 불과한 이스라엘에서 벤처 혁신을 배우겠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벤처 기업 제도가 발전하지 못하고 낙후된 거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스톡옵션 특례가 연 5000만원이었는데 20년 전보다 돈의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이번 대책에선 2000만원으로 줄어 크게 의미 없는 정책이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낙후한 건가.
“경제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맞춰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중국은 혁신을, 일본은 환골탈태를 이뤄냈다. 일본 인구가 한국에 비하면 2.4배지만 중소 및 벤처기업은 10배가 많다. 중국은 인구도 땅도 한국의 30배지만 올해 상반기 신설 법인 수는 우리의 100배다. 중국은 대기업과 벤처 생태계가 지난 20년 전부터 함께 만들어졌기 때문에 잘 섞여 있다. 한국은 이와 다르다. 굉장한 벽이 있다. 이걸 깨야 한다.”
 
안 회장은 2년 전 중국 시골 마을의 경험을 꺼냈다. 그는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몇 시간 걸리는 시골 식당이었는데 모바일폰으로 예약이 가능했다. 노점상이 단말기를 들고 다니면서 핀테크를 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중국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규모나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타이밍을 놓친 거다. 한국은 60~70년대 미국 박사들이 귀국하면 국책 연구소에서 연구하게 했다. 20년 전부터 중국 출신 해외 박사들이 귀국하는데 중국 정부는 돈 빌려주면서 기업하라고 한다. 그때 앞질러 간 거다. 우리는 규제부터 체크하지만 중국 기업인들은 저질러 놓고 본다. 사실상 사후 규제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중국 정부가 미국 규제를 수입하는 식이다.”
 
일자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자리위에는 사회단체·소외계층·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런 목소리들이 잘 혼합이 안 된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제가 일자리를 나누는 주제에 묻히는데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방점을 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청하는 자세가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인 건 그나마 다행이다.”
 
◆안건준
1990~97년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97~2001년 럭스텍 최고기술경영자(CTO)를 거쳐 2001년 크루셜텍을 창업해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올 2월 제9대 벤처기업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8월부턴 정부 일자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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