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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명 있던 포항 흥해체육관 내진설계 안돼…지진행정 구멍숭숭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한 지 닷새째인 지난 19일 한파가 몰아친 가운데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생활하던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대피소를 옮기기 위해 짐을 꾸려 나서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한 지 닷새째인 지난 19일 한파가 몰아친 가운데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생활하던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대피소를 옮기기 위해 짐을 꾸려 나서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포항시에 규모 5.4 강진이 일어난 직후 이재민들은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몸을 피했다. 지진이 일어난 15일부터 19일까지 닷새간 머무른 이재민 수만 하루 평균 800여 명. 지금은 이재민들의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해 재단장을 마치고 이재민들을 다시 불러들일 참이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체육관을 설계한 건축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흥해실내체육관은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800여 명이 생활했던 집단 대피소가 내진설계조차 이뤄지지 않은 다중이용시설이었던 셈이다. 나머지 학교 대피소들도 건축 당시 법률에 따라 의무 내진설계 대상이 아니었던 탓에 현재 다른 대피소들 역시 내진설계 여부가 불투명하다.
지난 16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대피한 이재민들. 송봉근 기자

지난 16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대피한 이재민들. 송봉근 기자

 
포항시 북구 흥해초등학교는 지진으로 파손된 정도가 심해 20일 폐쇄 결정이 났다. 흥해초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날 등교를 하지 못했다. 지진 피해로 폐쇄까지 된 흥해초는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지진대피소(옥외·실내)로 모두 등록돼 있다. 지진대응 매뉴얼인 '현장조치 행동 매뉴얼'에 따르면 구조상 안전한 건물을 대피소로 지정하라고 적시돼 있다. 
 
포항시의 재난 상황 대응 과정 곳곳에 구멍이 발견되고 있다. '현장조치 행동 매뉴얼'이 규정하고 있는 행동지침들도 다수 무시되고 있다. 
 
'현장조치 행동 매뉴얼'은 지난해 초 정부가 각 광역·기초지자체에 제공한 총 212페이지짜리 매뉴얼이다. 지난해 9월 경주 지진 이후 몇 차례 개정됐다. 지진이 발생하면 각 지자체는 공통된 이 매뉴얼에 따라 조치를 시행한다. 1단계 징후감지, 2단계 초기 대응, 3단계 비상대응, 4단계 수습·복구 순서다. 
20일 경북 포항시청 브리핑룸에서 이강덕 포항시장이 이재민 이주 대책과 피해 지원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포항시]

20일 경북 포항시청 브리핑룸에서 이강덕 포항시장이 이재민 이주 대책과 피해 지원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포항시]

 
중앙일보가 매뉴얼과 실제 상황을 비교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결과 지난해 있었던 경주 지진으로 상황을 전파하는 초기대응은 비교적 잘 지켜진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2~3단계 경우 미비점이 상당수 드러났다.  
 
지진 후 엿가락처럼 기둥이 휜 필로티 건물. 4개월 전 이 건물을 산 최모(45)씨는 한숨만 토해냈다. 최씨에 따르면 1층 주차장 기둥 8개 중 3개가 부서지다시피 해 추가 붕괴가 우려되는 지역이지만 건축자가 임시로 쇠기둥을 10여 개 대는 것으로 초기 조치를 했다. 이곳은 추가 붕괴 위험이 있는 곳이어서 매뉴얼대로라면 안전진단과 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에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16일 포항 북구 장성동의 지진에 취약한 필로티형 건물 주차장 기둥이 훼손돼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에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16일 포항 북구 장성동의 지진에 취약한 필로티형 건물 주차장 기둥이 훼손돼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지진 다음 날인 16일 국토교통부 관계자가 이곳을 다녀가고 포항시, 시설관리공단 측에서도 다녀갔지만 최씨가 들은 말은 "우선 조처하지 말고 기다려라" "개인 소유의 집이기 때문에 알아서 해야 한다"라는 말들이었다. 정밀 안전진단의 경우 건물주가 돈을 내고 해야 한다고도 했다. 최씨는 "심보균 행안부 차관이 다녀가자 6개 임시 기둥이 설치됐다"며 "우리 건물 때문에 다른 건물이 피해가 갈 수도 있어 빠른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 대피소의 안전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800여 명의 이재민들이 생활하는 곳에 출입구가 1곳뿐이란 점이 대표적이다. 화재 등 급히 대피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면 대형 참사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16일 오후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입국가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이재민과 대피소를 드나드는 이재민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오후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입국가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이재민과 대피소를 드나드는 이재민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흥해실내체육관의 경우 4개 출입문이 있지만, 닷새간 출입이 가능했던 문은 한 곳뿐이었다. 건물 입구 출입문 2개 중 1문은 아예 구호 물품 박스 수백 개가 쌓인 채 가로막혀 있었고, 나머지 문 2개는 문 바로 앞까지 이재민들이 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이재민 김지수(35)씨는 "강진이 일어나 대피해야 할 상황에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시 재난상황실의 담당 부서 관계자는 "지진대응 매뉴얼엔 대피소 관련 규정이 있지만 해당 사항에 대한 세부기준은 없다"며 "담당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매뉴얼에 규정 자체가 없는 아쉬운 사례도 나타난다. 포항 지진으로 이재민들이 모였던 대피소 곳곳에선 반려동물로 인한 논쟁이 일어났다. "반려동물도 가족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재민들이 있는 반면, "애가 무서워한다" "짖어서 잠을 자기 어려우니 입마개를 해라" 등 항의하는 이재민들이 갈등을 겪었다. 
 
결국 대피소 관리 사무소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일일이 반려동물을 최대한 데려오지 않거나 입마개 등을 꼭 착용하는 방향으로 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항의가 쏟아지는 상태다.  
지난 17일 포항항도초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있다.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7일 포항항도초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있다.프리랜서 공정식

 
포항시 지진 상황실에 따르면 앞서 15일 오후 2시29분 지진이 발생한 뒤 16일까지 하루 만에 3단계까지 가동됐다. 19일 오후 기준 복구 계획을 수립하고 재난피해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4단계에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미비한 매뉴얼과 체계적인 업무 시스템 부족으로 공무원들도 혼란 상태이긴 마찬가지다. 지진 등 재난상황 매뉴얼은 행정안전부가 표준 매뉴얼을 제공하면 시·도에서 각 상황에 맞게 '행동매뉴얼'을 만드는 방식이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부처에는 '실무매뉴얼'이 따로 나간다. 중대본은 지자체와 부처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이다. 매뉴얼만 보면 협업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 흥해체육관 대피소 내진설계 관련해 중대본에 문의하자 "대피소 문제는 지자체의 이행사항"이라고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포항시 한 공무원은 "중대본이나 경북도에도 본부가 다 있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일을 도와주고 길을 잡아주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우리한테 전화와 모든 걸 다물어 본다"며 하소연했다. 실제 포항시 재난 관련 담당 부서에선 이날 5~6명이 종일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정부부처·민원인들의 전화에 제대로 된 업무처리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포항=백경서·김정석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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