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기고] 서예부흥으로 한국 발 르네상스시대를 열자

2017 전북서예비엔날레 개막공연 '눈길도 함부로 걷지마라'의 한 장면.

2017 전북서예비엔날레 개막공연 '눈길도 함부로 걷지마라'의 한 장면.

 
모든 예술은 메시지를 전한다. 알타미라 동굴이나 고구려 고분의 벽화,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림, 추사 김정희의 글씨… 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담기 위해 제작된 것들이다. 디지털영상이 이야기를 가장 잘 담는 도구가 되면서 그림이나 서예가 뒷전으로 밀렸다. 그렇잖아도 문자가 영상에 밀리는 판국에 컴퓨터 자판이 대부분의 서사를 대신하면서 서예는 한때 도태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런 서예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컴퓨터 폰트의 획일성에 물린 사람들이 손글씨에 대한 향수를 느끼면서 가장 아름다운 손글씨인 서예가 흥미로운 ‘놀이’이자 ‘예술’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서예부흥을 선도한다고 자부해온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5개 부분 25개 행사로 준비한 제11회 행사가 오늘 폐막한다.  

 
전북서예비엔날레

전북서예비엔날레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붓끝을 발끝으로 삼고 붓의 중동을 허리로 삼아 붓이 춤을 추게 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거스른다. 살아있는 물고기라야 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살아있는 붓은 종이를 거스르며 앞으로 뻗어나가려고 하고, 종이는 쉬 미끄러지지도 날리지도 말라면서 붓을 붙잡는다. 이렇게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필력이 생성되고 그 필력은 살아있는 필획을 구사한다. 살아 꿈틀대는 필획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영상으로 펼쳐져 무대를 가득 매우면 무용수는 그 영상과 짝을 이뤄 춤사위를 펼친다.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개막공연의 한 장면이다. 
서예는 덧칠이 가능한 수채화나 유화 등 여느 미술과는 달리 결코 덧칠을 할 수 없는 1회성 필획으로 한 순간에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음악이나 무용에 더 근접한 순간예술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곧잘 서예를 음악이나 무용에 비유하여 설명하곤 하였다. 이런 서예가 마침내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 의해 새로운 무대공연예술로 재탄생하였다. 디지털시대에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예술로 거듭난 것이다. 관개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국제무대에 나서기에 충분한 콘텐트라는 평도 나왔다.  
 
한국은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문화를 중국문화의 아류로 보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일본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외국인들은 일본문화를 결코 중국문화의 아류로 보지 않는다. 왜일까? 일본에는 시작은 중국으로부터 배웠지만 이제는 당당히 ‘일본문화’라고 말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젠(Zen)’이라고 부르는 ‘선(禪)’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선불교의 禪을 일본식으로 정제하여 검도, 유도, 다도, 화도 등 그 많은 ‘도(道)’와 접합하고, 심지어는 정원을 가꾸는 일까지도 禪과 접목하여 서방세계에 알렸다.  
 
조상들이 이룬 찬란한 우리문화도 중국의 그것과는 판이했었는데 근대이래로 우리 스스로 우리문화를 홀시하며 우리만의 독특한 면모를 갖추지 못하다보니 외국인들은 우리문화를 중국문화의 아류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아예 대놓고 우리문화를 중국문화의 일부로 간주하려 들고 있다. 우리도 일본이 재창조한 禪과 같은 문화를 창조해 내야 한다. 그 길이 바로 서예에 있음을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통하여 재삼 확인했다.  
 
중국은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한 후로 서예를 가장 자본주의적인 예술로 치부하여 사실상 폐기하다시피 했고 문화혁명 때에는 말살의 위기에 처했었는데 아직도 그 상처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 많다. 메이지 유신 때부터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를 지향한 일본은 서예마저도 서구미술로 탈바꿈시켜 이미 서예가 아닌 서예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이 본모습을 회복하기 전에, 일본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가장 정통한 서예를 하고 있는 우리가 먼저 한국서예를 세계화한다면 21세기에는 우리가 서예의 새로운 종주국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야망과 포부를 안고 전라북도는 1997년에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탄생시켰다.
평생을 고개 숙인 채 사는 궁녀의 한스런 삶을 형상화한 궁체의 세로획.

평생을 고개 숙인 채 사는 궁녀의 한스런 삶을 형상화한 궁체의 세로획.

 
 그 후로 20년,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특별히 한글서예에 주목했다.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실 당시의 질박한 글자꼴도 아름답지만 조선 궁녀들의 손에서 태어난 궁체는 더욱 아름답다. 청정성과 승화성과 해탈성이 배어있어 눈물이 나게 하는 성스러운 아름다움이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이 성스러운 아름다움의 궁체를 이루는 뼈대인 세로획 ‘ㅣ’를 궁에 갇혀 사는 궁녀의 한이 서린 몸짓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무용으로 표현하여 공연예술로 드러내 보였다. 많은 박수를 받았다. 우리가 지켜온 한문 정통서예와 한글 궁체서예를 결합하여 우리만의 서예를 창조한다면 그것이 갖는 가치는 일본이 재창조한 Zen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창작한 우리서예를 중심으로 중국문화와 한국문화를 차별화한다면 외국인들은 더 이상 우리문화를 중국문화의 아류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할 생각을 접게 될 것이다. 이미 부흥의 바람을 탄 서예를 더 적극적으로 부흥시켜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여 년 전, 피아노, 바이올린, 축구, 야구 등 서양문화가 우리 사회에 들어올 때 우리는 몹시 낯설어 했다. 그러나 지금은 피아노가 없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이고 축구와 야구는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다. 이제는 역으로 우리의 문화를 서양에 내보내야 할 때이다. 그동안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기울여온 노력에 의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국에 서예의 싹이 트고 있다. 
서예는 단순히 글씨만을 쓰는 기능연마활동이 아니라, 음악이자 무용이고, 디자인이자 웰빙이다. 서예는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단전호흡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몰입과 집중으로 이끌며, 붓을 들어 좋은 말을 쓰는 내내 명상에 잠기게 한다. 서예는 어느 예술보다도 강한 수신적(修身的)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인성교육과 심리치료에도 매우 유효하다.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서예가 가진 이런 장점들을 가능한 한 많이 드러내 보이고자 노력했다. 분주하고 산만하고 불안한 이 시대에 서예는 세계인이 가장 갈망하는 예술일 수 있다. 지금은 우리만의 독특한 서예를 창조하여 세계인의 갈망에 부응함으로써 세계문화를 선도하려는 용기와 신념과 포부를 가져야 할 때이다. 이미 부흥의 바람을 탄 우리 서예를 더욱 부흥시켜야할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예부흥으로 한류를 넘어 이제는 한국 발 르네상스시대를 열자. 
김병기

김병기

김병기(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 전북대 중문과 교수)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