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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지출 역전되는 마의 ‘은퇴 후 5년’을 돌파하라

[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 (32) 은퇴 초기 전략
 
노년기는 60~75세 활동기, 75~80세 회고기, 그 이후를 간병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활동기는 왕성한 활동이 가능한 건강과 체력을 지닌 시기, 회고기는 소극적 활동기로 건강이나 경제력은 떨어지고 여유시간이 늘어나는 시기, 간병기는 배우자 간병과 본인 간병이 필요한 때다. 
 
이들 단계를 무사히 주파한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삶이다. 노후자금은 적어도 주인보다 오래 살도록 갈무리해야 하고, 무리없이 활동할 만큼 건강도 따라줘야 한다. 치밀한 노후플랜을 세워 실행에 옮겨야 하는 이유다.
 
수입과 지출 역전되는 ‘은퇴 레드 존’
그런데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은퇴 초기 5년에 대한 설계다. 은퇴생활 전체의 성패를 좌우할 시기로 치명적 변수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먼저 정년퇴직 5년 내 병을 얻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의 무력감과 좌절감이 밀려오는 가운데 앞뒤 안 보고 달려오느라 소홀했던 건강문제가 고개를 든다. 일자리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자영업은 이미 은퇴자의 무덤이 돼버렸고, 재취업도 눈높이를 확 낮추지 않으면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엇보다 들어오는 돈은 왕창 줄었는데, 나가는 돈은 급격히 늘어나 자금 압박이 크게 다가온다. 젊은이들의 만혼 추세로 자녀 혼사를 이 때 치르는 경우가 많고, 고령화로 살아 계신 부모 봉양 부담도 져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다. 많은 사람이 이 시기에 그나마 모았던 은퇴자금을 거의 소진해 버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래서 은퇴 후 ‘마의 5년’을 여하히 돌파하느냐가 인생 후반부의 삶을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
 
미국 생명보험회사 푸르덴셜은 ‘은퇴 레드 존(Retirement Red Zone)’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미식축구에서 상대방에게 득점을 허용할 수 있는 위험한 지역인 ‘레드 존(Red Zone)’에서 파생했다. 푸르덴셜과 경제학자들이 수십 년의 은퇴설계 사례와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를 그렇게 이름 지어 2014년 발표했다. 은퇴 레드 존의 가장 큰 특징은 수입·지출 곡선이 역전되는 것인데, 은퇴 후 5년이 이에 속한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어나니 노후의 자기 앞가림조차도 어렵다. 은퇴 전보다 현실적이고 계획적으로 노후자금을 관리하지 않으면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나라 가구들 상당수가 은퇴 레드 존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의 ‘2015년 가계 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노후 준비가 잘 돼 있는’ 가구는 8.8%에 불과한 반면 노후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가구는 55.4%로 절반을 넘었다.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가구도 17.4%에 달했다. 66세 이상 빈곤율도 48.3%다. 은퇴자의 절반 정도가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는 얘기다.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뭔가 수를 내야 한다. 그러나 자산운용시장이 우호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돈 벌기가 쉽지 않다. 과거 뉴노멀(New Normal) 시대보다 뉴뉴트럴(New Neutral) 시대라 해도 경제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걷히지 않고 있다. 노후준비는 지금까지와 다른 접근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은퇴를 4∼5년 앞두고 있다면 쓰는 돈을 줄여서 더 모아야 하겠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자산의 운영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이다. 부동산이나 보험·예금·펀드 등 보유 자산을 다시 점검해 목적이나 역할이 불분명해진 것은 현금화해야 한다. 이를 가지고 원금은 보장하되 연 7% 내외 기대수익률의 투자상품에 넣어두고 은퇴 전까지 자산을 최대한 불려야 한다. 이미 레드 존에 진입한 은퇴자는 노후자금의 인출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적립으로 아무리 노후자금을 두둑이 쌓아 놓았어도 계획적인 인출작전을 펴지 않으면 내가 죽기 전에 돈이 먼저 죽는 사태가 발생한다. 마치 등산에서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파산하게 될 경우 국민연금이나 공적·사적 부조만으로 생활해야 하므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60세의 기대여명이 24.2년임을 감안하면 60세 은퇴자가 파산을 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5년 이상 노후자산을 유지해야 한다. 파산을 막기 위해서는 자산을 모으는 시기와는 다른 자산관리 전략을 써야 한다. 은퇴 이후에는 현금 유입이 크게 줄어드는 가운데 생활비로 쓰기 위한 노후자산 유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은퇴 시점의 자산에서 은퇴 첫해 인출하는 금액 비율을 ‘인출률’이라 정의하는데, 은퇴 이듬해부터는 물가상승률만큼 인출금액을 늘린다.
 
인출률 4% 이하면 파산 가능성 작아
파산 여부는 은퇴 초기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 초기는 자산 규모가 가장 큰 시기다. 그만큼 은퇴자산 운용 수익률이나 인출률이 은퇴자산의 증감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은퇴자산 관리계획에는 인출률과 목표수익률, 자산 포트폴리오 등을 포함한다. 만일 은퇴 초기에 자산 수익률이 기대보다 낮은 경우 인출률을 낮추거나 목표수익률을 조정해 자산을 파산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인출률 결정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몇 가지 인출률을 가지고 노후자산이 언제 소진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최초 인출률이 4% 이하인 경우 국내 주식과 채권의 자산배분에 관계없이 파산 리스크(60세 은퇴자가 85세 이전에 파산을 겪을 가능성)는 안전수준인 10% 이하로 나타났다. 인출률이 5~6%인 경우 자산배분에 따라 파산 리스크에 격차가 생기기 시작한다. 인출률이 7% 넘으면 파산 리스크는 위험수준인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 파산을 막기 위해 인출률을 급조정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노후 씀씀이는 레드 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은퇴 기간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기에 해당해서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노후보장패널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월평균 적정 생활비는 237만원이다. 1인 기준으로는 145만3000원이다. 적정 생활비는 노후에 의식주 등에서 표준적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비용을 뜻한다. 최저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생활비’는 174만1000원(부부기준)이었다. 연령별 적정 생활비는 50대 부부가 월 260만7000원, 60대는 228만2000원, 70대는201만3000원, 80대 이상은 191만5000원이다. 레드 존은 50대 후반에서 60 초반에 걸쳐 있다. 씀씀이는 많고 퇴직 후라 수입이 급감해 가계 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시기엔 노후자산 인출률을 높게 가져가고 이후부터는 점진적으로 줄이는 탄력적 운영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60대는 6%, 70대 5%, 80대 3% 식이다.
 
어쨌든 요즘 노후설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개인의 혼자 힘으론 제대로 된 설계도면을 그릴 수 없다. 금리는 낮고, 고령화에 투자환경이나 세금문제 등이 난마처럼 얽혀 실수라도 하는 날엔 큰 낭패를 보게 돼 있다. 이럴 때 전문가에게 상담을 의뢰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각 금융회사마다 마케팅 차원에서 은퇴설계 상담사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고 사설 연구소도 성업 중이다. 재무상담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을 환하게 비춰주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상담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이 고객보다는 회사를 위해 일하고 상품 판매에 따른 보상도 받는다. 그러나 상담사가 회사를 위해 일한다 해도 고객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그건 문제될게 없다. 만약 수수료나 보상 체계에 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어도 좋다.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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