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스카프 한 장이 왜 700만원이냐고 묻는다면

세상에 물건이 넘쳐나지만 ‘잘 만든 물건’은 빛을 발해 인정을 받는다. 시시각각 유행이 변하는 패션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유행에 민감한 패션피플일수록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옷이나 가방·구두에 ‘명품’이란 이름을 붙이고 무한신뢰를 보낸다. 스카프 한 장에 싸게는 60만원에서 700만원이 넘기도 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로로피아나도 여기에 속한다. 로로피아나는 스타 디자이너 없이도 생존이 어려운 럭셔리 업계에서 명성을 굳건히 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회장님 패션'으로 불리며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 비결이 뭘까. 최근 한국을 방문한 파비오 디안젤란토니오 로로피아나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만나 물었다.  
파비오 디안젤란토니오 로로피아나 최고경영자. [사진 로로피아나]

파비오 디안젤란토니오 로로피아나 최고경영자. [사진 로로피아나]

"최상의 품질."
서울 청담동 로로피아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디안젤란토니오(48) CEO는 줄곧 이 말을 반복했다. 1800년대부터 이탈리아 최고급 캐시미어 원단을 생산해왔다는 브랜드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더욱 힘을 줘 ‘품질’을 강조했다. 디자인을 내세우는 시대에 왜 이리 품질에만 집착하는 걸까. 
모든 브랜드, 특히 럭셔리 브랜드라면 좋은 품질을 내놓는 게 당연하지 않나. 이토록 품질을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냥 '좋은 품질'이 아니다. 탁월하게 좋은 품질, 즉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최상의 품질을 말하는 거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탁월한 품질의 천연 섬유를 찾아내 원단과 옷을 만든다. 그렇게 해야만 만들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또 그로인해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다.  
두 겹의 캐시미어 원단을 핸드스티치로 마감한 남성용 코트. 650만원대. [사진 로로피아나]

두 겹의 캐시미어 원단을 핸드스티치로 마감한 남성용 코트. 650만원대. [사진 로로피아나]

비쿠냐와 베이비 캐시미어 혼방의 여성용 코트. 1990만원대. [사진 로로피아나]

비쿠냐와 베이비 캐시미어 혼방의 여성용 코트. 1990만원대. [사진 로로피아나]

좋은 원단으로 옷을 만든다고 소비자가 선택하지는 않을 텐데.
물론 선택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시장일수록 소비자가 먼저 품질을 알아본다. 특히 고가 브랜드를 소비하는 감성적인 코스모폴리탄(여행이나 사업을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원단의 품질뿐아니라 원재료를 윤리적으로 구하고 가공했는지, 또 어떤 스토리와 철학을 가지고 제품을 만드는지까지도 고려한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원단 제작 공장에 대해 궁금해하며 우리를 찾아오는지를 알면 놀랄 거다. 나 역시 브랜드에는 2016년 합류했지만 이미 25년 전부터 로로피아나 고객으로 공장에 직접 찾아가 원단을 구입할 정도로 이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페루의 원주민이 전통방식으로 비쿠냐 몰이를 하고 있다. 산악 야생동물인 비쿠냐는 관리가 어려워 과거엔 사냥해서 죽인 다음에 털을 깎았지만 이렇게 하면 죽이지 않고 털을 얻을 수 있다. [사진 로로피아나]

페루의 원주민이 전통방식으로 비쿠냐 몰이를 하고 있다. 산악 야생동물인 비쿠냐는 관리가 어려워 과거엔 사냥해서 죽인 다음에 털을 깎았지만 이렇게 하면 죽이지 않고 털을 얻을 수 있다. [사진 로로피아나]

페루 전통의식인 '차크'에 사용하는 긴 끈을 이용해 비쿠냐가 다치지 않도록 한 곳으로 몰아 털을 채취한다. [사진 로로피아나]

페루 전통의식인 '차크'에 사용하는 긴 끈을 이용해 비쿠냐가 다치지 않도록 한 곳으로 몰아 털을 채취한다. [사진 로로피아나]

제작 공정이 얼마나 특별한가.
원단의 재료가 되는 천연 섬유를 구매하는 것부터 원단과 옷을 만드는 것까지 모든 공정을 우리가 직접 관리한다. 물론 이 중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건 천연 섬유 소싱이다. 캐시미어·양모 등 원사를 얻기 위해 뉴질랜드·호주·몽골·페루 등 세계 각지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원사를 생산하는 농장을 찾아 다닌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도 뉴질랜드와 호주 농장에 다녀왔다. ‘왕의 선물(Gift of Kings)’라 불리는 지름이 12.5마이크론(※1마이크론은 1㎜를 1000분의 1로 나눈 길이로 12마이크론은 머리카락의 7분의1 굵기 수준)밖에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가는 굵기의 메리노울 섬유를 생산하는 농장들을 방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다. 더 중요한 건 재료를 얻는 과정을 모두 윤리적인 방법으로 한다는 점이다. 천연 섬유를 사용하지만 이를 얻기 위해 생태계를 파괴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윤리적 공정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
대표적인 게 비쿠냐다. 남아메리카, 특히 페루에 많이 서식하는 낙타과의 동물로 비쿠냐 털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볍고 따뜻한 천연 섬유다. 하지만 산악지대에 사는 데다 성격이 예민해 과거엔 죽이지 않고는 도저히 털을 얻을 수 없어 결국 멸종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로로피아나는 1997년부터 페루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어 비쿠냐를 죽이지 않고 털을 깎아 제공하는 원주민에게만 원사를 구매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좋은 가격 조건을 내거니 원주민들이 비쿠냐를 죽이는 대신 긴 끈을 이용해 비쿠냐를 한 곳에 몰아넣는 ‘차크’라는 의식을 통해 털을 깎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페루의 비쿠냐 개체 수는 점점 늘어났고 로로피아나는 비쿠냐 섬유를 판매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브랜드가 됐다. 캐시미어 역시 인도적인 방법으로 채취한다. 일반 캐시미어보다 더 고급 원단인 베이비 캐시미어는 3~12개월 된 새끼 염소를 빗질한 후 빗에 붙어 있는 속털만 골라 사용한다. 이때도 염소가 공포심을 느끼지 않도록 주인이 직접 빗질을 한다. 
몽골의 한 농장에서 베이비 캐시미어 원단에 사용할 털을 채취하기 위해 아기 염소의 털을 빗기고 있다. 염소가 놀라지 않도록 주인이 빗질을 하고 그 빗에 묻은 속털만 골라 원사로 사용한다. [사진 로로피아나]

몽골의 한 농장에서 베이비 캐시미어 원단에 사용할 털을 채취하기 위해 아기 염소의 털을 빗기고 있다. 염소가 놀라지 않도록 주인이 빗질을 하고 그 빗에 묻은 속털만 골라 원사로 사용한다. [사진 로로피아나]

스카프 한 장이 700만원에 달한다. 아무리 품질이 좋다고 해도 너무 비싼 것 아닌가.

그게 바로 비쿠냐 섬유로 만든 스카프다. 이 제품의 가치는 직접 만져봐야 안다.(※그는 비쿠냐 스카프 한 장을 들어 공처럼 뭉치더니 기자에게 건넸다. 성인 목에 두 번은 휘어 감을 만큼 긴 길이의 두툼한 겨울용 스카프가 두 손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게 뭉쳐졌다. 깃털처럼 가볍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정말 가볍고 포근하지 않은가. 그 느낌 때문에 고객들이 우리를 찾는다. 이 스카프를 한번 둘러보면 다른 제품을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만드는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다. 좋은 품질의 제품에는 중독성이 있다.
 가는 비쿠냐 섬유로 만든 스카프. 가격은 700만원 대다. [사진 로로피아나]

가는 비쿠냐 섬유로 만든 스카프. 가격은 700만원 대다. [사진 로로피아나]

비쿠냐 섬유로 만든 로로피아나의 남성용 스카프. 두꺼워 보이는 스카프를 동그랗게 뭉치니 두 손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게 뭉쳐졌다. 500만원대. [사진 로로피아나]

비쿠냐 섬유로 만든 로로피아나의 남성용 스카프. 두꺼워 보이는 스카프를 동그랗게 뭉치니 두 손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게 뭉쳐졌다. 500만원대. [사진 로로피아나]

세계적으로 저가형 캐시미어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비싼 캐시미어나 비쿠냐를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유니클로·제이크루 같은 브랜드들이 저가 캐시미어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지만 우리에겐 그들에게 없는 품질과 철학이 있다. 예컨대 50유로(6만5000원)짜리 캐시미어 스웨터가 있다고 치자. 아무리 품질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대량으로 만들다 보면 제조자가 제품 하나하나를 확인할 수 없으니 품질을 장담하기 힘들다. 또 소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동물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확인할 수 없다. 우리를 찾는 고객은 이 두 가지 관점 모두를 본다. 물론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공정엔 큰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를 가치 있게 여기고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고객이 된다.  
비쿠냐로 만들고 밍크로 트리밍한 남성용 외투. 5000만원대. [사진 로로피아나]

비쿠냐로 만들고 밍크로 트리밍한 남성용 외투. 5000만원대. [사진 로로피아나]

한국은 아직 세계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를 만들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될까.
한국 패션 시장은 굉장히 성숙해 있다. 굳이 조언하자면 새로운 시도도 좋지만 지속적인 품질 관리에 힘쓰라고 말하고 싶다. 쉽지 않은 일이다. 비용과 노력, 인내심이 필요하다.  
로로피아나의 한국 시장 전략은.
한국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장이다. 고객 프로필을 살펴보면 다들 품격 있고 세련됐으며 제품에 대한 이해력도 높다. 그러면서도 혁신적인 면이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고객의 모습 그대로다. 한국 고객이 좋은 분위기에서 로로피아나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매장 인테리어나 확장에 투자할 생각이다.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가는 투자로 이것이 우리가 한국 시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또 한편으로는 신발 등 액세서리를 강화해 여러 연령대의 고객층이 로로피아나를 경험할 수 있게 할 생각이다. 
로로피아나의 파비오 디안젤란토니오 최고경영자. [사진 로로피아나]

로로피아나의 파비오 디안젤란토니오 최고경영자. [사진 로로피아나]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로로피아나

 
관련기사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북핵위기 심화 및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 등 미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17년 7월 1일 개소했습니다.
연구소는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 기관 등과 연계해 학술행사를 개최하며, 정기적으로 자문회의를 열고 다양한 시각과 차별화된 이슈를 제시합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