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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오빠! 이렇게 불러주니 세상엔 짐승이 사라졌다

기자
고혜련 사진 고혜련
지하철. [중앙포토]

지하철. [중앙포토]

 
가끔 부부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자리가 없어 서로 맞은편에 앉아있을 때가 있다. 주위의 사람들 속에서 서로를 보다 객관적으로 살펴볼 기회다. 상대의 주름살이나 표정, 매무새가 한눈에 들어와 가끔 내 매무새를 가다듬곤 한다. 그러면서 '도대체 저 인간은 누구인가'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 때가 있다.
 
 
전우애로 뭉친 동지 
 
일생을 함께 하면서 서로 온갖 추태까지 공유하는 사이, 인간의 본능적 이기심이나 저급함을 그대로 들어내는 사이, 수시로 헤어질까 저울질하면서도 못 헤어지고 질긴 인연을 계속하는 사이, 날이 갈수록 얼굴조차 닮아가는 사이, 그 모든 게 기가 막혀 헛웃음을 웃게 하는 사람…. 소싯적 신랑은 이제 남편-웬수-친구를 거쳐 평생의 동지가 됐다.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전우애로 뭉친 동지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여자들이 아니 부부가 서로에게 은밀하게 감추어야 하는 몇 가지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네 삶의 이면을 촌철살인의 표현으로 기막히게 들어내는 시인 문정희의 ‘남편’과 ‘오빠’라는 두 시는 무릎을 치게 한다. ‘웬수’인 남성 배우자를 어쩜 이리 잘 표현했을까 혀를 내두르게 된다. 답답한 여성의 마음을 뒤집어 펼쳐 보이듯 그 묘사가 친근하고 사실적이다. 어쩜 이리 남편은, 아내는 서로 다르며 서로 같을까.
 
 
시인 문정희(69). [중앙포토]

시인 문정희(69). [중앙포토]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시, ‘남편’/ by 문정희)
 
남편을 오빠에 비유한 시 역시 그렇다. 집안에 오빠가 있어 본 사람은 이 시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소싯적 취재원으로 한 두 번 만났던 시인께 기회가 되면 밥 한번 대접하고 싶다.  
 
 
용감한 '오빠'들 
 
아내 곁에서는 물기 빠진 마른 풀처럼 맥이 없다가도 동네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젊은 여성에게 농담 한 번 더 건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오빠’로 돌변하는 그들.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들은 나이와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용감한 ‘오빠’가 된다. 그래서 신문, 방송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네들의 허망한 행위의 결과가 ‘폭행’이라는 이름으로 난무하는 것이리라.  
 
영원히 철들 것 같지 않은 그 ‘오빠’가 이제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으니 안타깝고 애처롭다.  
 
 
부부. [일러스트=강일구]

부부. [일러스트=강일구]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고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유산도 고스란히 제 몫으로 차지한 우리 집의 아들들만 오빠가 아니다./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 이제 모든 남자를 향해 다정히 불러주기로 했다/
오빠라는 말로 한 방 먹이면 어느 남자인들 가벼이 무너지지 않으리/꽃이 되지 않으리/
모처럼 물안개 걷혀 길도 하늘도 보이기 시작한 불혹의 기념으로/ 세상 남자들은 이제 모두 나의 오빠가 되었다/....(중략).../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 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  /헐떡임이 사라지고 /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이는 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 /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다 
( 시, ‘오빠’/ by 문정희)
 
깊게 넉넉히 발효된 아내의 측은지심이 익어가면 때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들이 한순간, 때로는 몇 시간, 젊은 여인의 ‘오빠’가 된 들, 그래서 고단하고 후줄근한 삶의 와중에서 활기를 잠시나마 되찾는다면 그 또한 봐 줄 만하다는 생각…. 나이 듦이 주는 선물이리라. 
 
내 옆, 혹은 내 주위, 그 수많은 ‘오빠’ 들의 건투를 빈다. 
 
고혜련 (주)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hrko321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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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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