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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불평을 멈췄을 때 오는 깨달음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장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장

이번 가을엔 한 달 동안 독일어권 나라에서 시간을 보내는 호사를 누렸다. 물론 온전한 휴식은 아니었고 여러 도시를 돌며 독일어로 번역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과 관련된 강연, 독자와의 만남을 갖는 일정이었다. 외국 독자들을 면대면으로 만나 그들의 질문에 답하고 책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기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베를린에서 시작해 프랑크푸르트·뮌헨·함부르크·도르트문트·콜브렌즈·빈·바젤 등의 도시를 돌며 때로는 작은 마을 서점에서, 때로는 시민대학에서, 때로는 가톨릭 수도원에서 강연했다. 어떤 때는 500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대형 강의 형태로, 어떤 때는 30명의 독자와 친구와 대화하듯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2명이 독일인이어서 그런지 독일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쉽게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평생 친구로 남는 것이 독일인의 특징이다. 미국 사람처럼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쉽게 걸지도 농담을 잘하지도 않지만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간다. 근면하고 계획성이 뛰어나고 약속을 잘 지키는 독일인은 두 차례 세계대전 패배 후 고생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근검절약 또한 몸에 배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 출판사가 보내 준 강연 스케줄 또한 독일인의 특성이 잘 반영돼 있었다. 공항·기차역·숙소와 강연 장소 등 이동 동선은 물론 누가 어디서 나를 만나 안내해 줄 것인지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정이 시작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미묘한 차이점 한 가지가 발견됐다. 그날 일정의 주최가 어디냐에 따라 그날 밤 묵을 숙소의 안락함이 결정됐는데, 특히 출판사에서 마련해 준 숙소는 머물기에 불편한 점이 다소 있었다. 하루는 인터넷이 안 되는 어느 양로원의 남은 방에서 머물렀다. 이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에서 불평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도시 간의 이동도 많고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강연 이외에 언론 매체 인터뷰도 많았기에 잠자는 곳만큼은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그런데 문제는, 그런 기대가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출판사 측에 진즉에 전달하고 숙소를 옮길 수 있는지 물어봐야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속으로 불평만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숙소를 변경해 줄 수 있느냐고 요청하면 ‘요구사항이 많은 까다로운 외국 저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소심한 우려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상대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어떻게 지금 내 상황을 알 수 있겠는가? 이야기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거나, 그렇지 못하면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내가 이 상황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말이다. 출판사에서도 여러 가지를 사전에 고려해 계획을 세운 것일 테다. 더는 불평불만을 마음속에서 키우지 말고 내가 지금 상황을 기꺼이 선택한 것처럼 수용하면서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자. 그랬더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상황의 장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숙소는 중심부가 아닌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도심을 내려다보는 멋진 전망은 없지만 주변이 고요해 잠이 잘 왔다. 인터넷이 안 되는 게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일찍 잠이 들어 여독을 풀기에 충분한 수면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호텔 뷔페 아침식사보다도 수도원의 가톨릭 수도사분들과 함께하는 단출한 식사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독일 할머니·할아버지들과 함께하는 양로원에서의 시간도 흥미로웠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독일 양로원을 방문해 아침식사를 해 볼 수 있겠는가?
 
불행한 마음 상태는 현재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고 저항할 때 일어난다. 특히 지금의 불행한 상황이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할수록 원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내 책임이 전혀 없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내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불평만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바뀌는 것은 없고, 내 삶은 점점 불행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불평을 멈추고 변화를 위한 행동으로 나서거나, 아니면 본인이 선택했던 것에 대한 일정한 책임을 지고 쿨하게 받아들일 것을 권하고 싶다. 이런 마음 습관이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건강한 마음으로 가는 길이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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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