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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도 입사 순으로, 후배 달달 볶는 간호사 ‘태움문화’

민주주의는 생활이다 11/15

민주주의는 생활이다 11/15

① 1년 차 ‘신규’ 간호사=오늘도 하얗게 불태웠어요. 저는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다 못해 영혼까지 태운다는 간호사의 ‘태움 문화’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저 같은 신입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인 프리셉터(preceptor)와 함께 다니면서 일을 배웁니다. 어느 날은 프리셉터가 저를 10분 동안 세워 두고 ‘육두문자’를 쏟아냈어요. 실수는 인정하지만 그렇게 모욕까지 당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밥을 먹다가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예전에는 선배가 정강이 걷어차고 그랬어. 너희는 좋은 세상 만난 거야.”
 
친구가 일했던 지방의 한 병원은 더합니다. 한번은 ‘수샘(수간호사 선생님)’이 신규를 불러 모아 며칠 전 실수를 질책하며 차트를 집어던졌대요. 옆에 있던 환자에게 사용한 주사기를 친구를 향해 던지기까지 했고요. 이 일 때문에 친구를 포함해 신규 여럿이 사표를 냈습니다.
 
2015년 대한간호협회 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경력 1년 미만)의 평균 이직률은 33.9%입니다. 이직률이 높다 보니 “잘 버텼다”는 의미로 백일잔치·돌잔치도 열어 줍니다. 태움 문화만 없으면 이런 잔치, 더는 필요 없어요.
 
② 4년 차 대학병원 간호사=입사 1년 정도까지 우울증이 심각했습니다. 입사한 지 두 달째에 수샘을 찾아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업무 스트레스에 태움 문화까지 겹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인력이 부족하니 수샘은 나를 필사적으로 설득했어요.
 
얼마 뒤 수샘 바로 밑 ‘차지샘(책임 간호사)’이 저를 불렀어요. “수샘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 아니니? 어떻게 그만둔다고 했다가 다시 일하겠다고 해?” 차지샘은 환자, 보호자, 실습 나온 학생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30분 동안 공개 망신을 줬어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퇴근 후 2년 차 선배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그래도 그 샘, 한 번 울린 다음부터는 좀 잘해 주더라. 힘내’. 이게 위로인가요. 눈물만 더 났습니다.
 
자녀 계획도 마음대로 못 세워요. ‘임신순번제’ 때문이지요. 임신순번제 때문에 임신을 준비하던 간호사가 먼저 임신해 버린 후배 간호사와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봤어요. 이해는 됩니다. 한 명이 낮 근무만 하거나, 휴직하면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이게 순서 정해서 할 일인가요?
 
③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요즘 인터넷에서 춤 동영상으로 유명해진 그 병원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들이 매년 체육대회 때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고 춤을 춥니다. 재단 소속 6개 병원끼리 경쟁이 붙어 장기자랑이 과열된 거죠.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간호사들은 거의 다 신입이라서 싫다는 표현을 못합니다. 무대에 오를 간호사는 간호부장, 수샘 등이 뽑습니다. 의상도 수샘이 고릅니다. 장기자랑에 나서는 간호사들은 한 달 동안 새벽 6시 반에 출근해 오후 3~4시까지 일하고 저녁 늦은 시간까지 연습에 참여해야 합니다.
 
간호사들 사이의 군기, 우리 병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번에 한 고참 간호사가 갑질 제보를 상담해 주는 시민단체에 이런 내용의 ‘반성문’을 보냈다더군요. "신입 때 정말 하기 싫었던 장기자랑인데, 제가 10년 차 선배가 되고 보니 말리기는커녕 ‘우리 때도 다 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400자 상담소] 괴롭힘 대응하는 법 시나리오 짜 교육을
동아대 간호학과 강지연 교수

동아대 간호학과 강지연 교수

‘태움’은 엄연한 학대입니다. 우수한 간호사도 태움의 수렁에 빠지면 스스로 위축돼 기본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를 통과의례로 여기거나 교육으로 당연시하고 묵인하면 안 됩니다. 간호사들이 서로 존중하며 일하도록 하려면 간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간호사의 근무환경을 점검하고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학교와 의료기관은 의사소통과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괴롭힘 시나리오’를 짜서 비폭력 대화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훈련인 ‘인지 리허설’은 효과가 좋습니다.

 
강지연 동아대 간호학과 교수
 
이현·하준호 기자 lee.hyun@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 기사는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과의 인터뷰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보내진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제보를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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