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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탈리아 바닷가 캠핑장서 만난 독일인 노부부

기자
장채일 사진 장채일
유럽의 가을 날씨는 한국보다 약간 더 쌀쌀한 듯하다. 남쪽 나라 이탈리아도 본격적인 단풍철로 접어 들었다. 아말피해안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탈리아의 가을 풍경도 즐길 겸 동쪽 해안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산 조반니 로톤도. 우리로 치면 경북 울진쯤 되는 곳에 있는 조그만 바닷가 산간마을이다. 이곳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공경하고 사랑하는 비오 신부가 평생을 가난과 겸손 속에서 기도와 봉사로 살다 간 곳이다. 그는 생전에 예수의 다섯 성흔을 몸에 지녔던 것으로 유명하다.
 
 
비오 신부(1887~1968)는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사제이며 카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기도와 가난과 겸손을 지향하는 카톨릭 수도회로, 진한 커피색의 수도복과 흰수염을 한 카푸친 수도회 신부들의 모습에서 카푸치노 커피의 이름이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사진제공 한국 카푸친 작은형제회]

비오 신부(1887~1968)는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사제이며 카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기도와 가난과 겸손을 지향하는 카톨릭 수도회로, 진한 커피색의 수도복과 흰수염을 한 카푸친 수도회 신부들의 모습에서 카푸치노 커피의 이름이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사진제공 한국 카푸친 작은형제회]

 
당초의 계획은 성인의 발자취도 기릴 겸 이곳에서 하루 머물면서 조용히 묵상한 후 아드리아해를 건너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돌아본 후 스위스 등 알프스 국가들을 여행하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닳고 찌든 세속의 때를 하루 만에 벗어버리겠다는 내 얄팍한 욕심을 꾸짖듯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우로 다음날 바리항에서 출항예정이던 페리 운항이 취소돼 버렸다. 
 
“어떻게 하지? 알프스 지방에는 11월부터 눈이 많이 온다는데. 눈길을 피해 안전하게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려면 언제 뜰지 모르는 발칸 행 페리를 포기하고 하루라도 빨리 북쪽으로 올라가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야. 이 갑작스러운 비바람도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는 시간과 노력의 부족함을 꾸짖는 성인의 뜻이라면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게 우선이야. 그런 다음 아드리아 해를 건너는 게 옳아.”
 
아내와 상의한 끝에 우리는 기다림을 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알프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발칸을 돌아본 후 다른 경로를 생략하고 스위스로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의 결정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곳에서 멀지 않은 앙코나항에서 이틀 후 크로아티아의 스플릿항으로 떠나는 배편도 잡았다.
 
 
갑작스런 비바람으로 사흘 밤을 묵게 된 이탈리아 동쪽 한적한 바닷가의 리도 살피 캠핑장. 대부분 은퇴 여행객들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 장채일]

갑작스런 비바람으로 사흘 밤을 묵게 된 이탈리아 동쪽 한적한 바닷가의 리도 살피 캠핑장. 대부분 은퇴 여행객들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 장채일]

 
예정에 없던 사흘 밤을 바닷가의 한적한 시골 캠핑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여행의 일부. 비록 한가한 시간을 즐기는데 익숙지 않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기로 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나가보니 세찬 바람에 몸이 떠밀려 갈 듯하다. 이런 바람은 일 년에 한 번쯤 분다는데 마침 우리처럼 산책 나온 한 독일인 부부를 만났다. 피터(Peter)와 수지(Suzie) 씨 부부. 뮌헨의 집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크리스마스 즈음에나 돌아갈 생각이란다.  
 
그런데 막상 이 부부와 이야기해보니 한국의 여느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아내와 수지 씨는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되는 양 서로 웃고 떠든다.
 
 
독일인 피터와 수지 부부. 여름이면 요트로, 가을부터는 캠핑카로 발길 닿는대로 여행을 한단다. [사진 장채일]

독일인 피터와 수지 부부. 여름이면 요트로, 가을부터는 캠핑카로 발길 닿는대로 여행을 한단다. [사진 장채일]

산 조반니 로톤도 인근의 한적한 바닷가 캠핑장인 리도 살피에서 만난 수지씨. 아내와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되는냥 서로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 장채일]

산 조반니 로톤도 인근의 한적한 바닷가 캠핑장인 리도 살피에서 만난 수지씨. 아내와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되는냥 서로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 장채일]

 
"저녁 같이하실래요? 이 캠핑장 음식이 맛있어요." 우리 부부와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던지 피터 씨가 식사 초대를 한다.

 
 
하루를 공칠 뻔한 주방장임에도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신이 직접 반죽한 밀가루로 도우를 만들고 신선한 재료로 화덕에 구워낸다고 설명했다. [사진 장채일]

하루를 공칠 뻔한 주방장임에도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신이 직접 반죽한 밀가루로 도우를 만들고 신선한 재료로 화덕에 구워낸다고 설명했다. [사진 장채일]

이야기 하는 도중 손주 자랑을 위해 휴대폰 사진을 뒤적이는 피터씨. 손주 자랑을 할 때의 두 부부의 모습은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사진 장채일]

이야기 하는 도중 손주 자랑을 위해 휴대폰 사진을 뒤적이는 피터씨. 손주 자랑을 할 때의 두 부부의 모습은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사진 장채일]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만난 자리. 지금이 비수기라서인지 넓은 식당을 우리가 전세냈다. 하루를 공칠 뻔했던 주방장은 우리가 반가웠던지 직접 반죽한 피자 도우를 들고나와 각자 입맛에 따라 맞춤형 피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시골 마을 캠핑장의 이름 없는 식당의 주방장인데도 자신의 음식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또다시 시작된 가족 이야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떠들면서 '캠핑카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웃고 즐기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내일이면 각자의 길로 가야 한다. 우리는 바다 건너 동쪽으로, 피터 부부는 더 따뜻한 이탈리아 남쪽 지방으로 간다.  
 
 
"한번 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아요"
 
"인생은 한 번뿐이잖아요. We only live just once.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살아야 해요. We have to enjoy every single day." 수지 씨가 헤어지면서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예정된 계획보다 우연한 감동을 좇기로 하고 떠난 캠핑카 여행. 산책길에 우연히 만나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게 된 한국과 독일 부부들.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건배를 했다. [사진 장채일]

예정된 계획보다 우연한 감동을 좇기로 하고 떠난 캠핑카 여행. 산책길에 우연히 만나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게 된 한국과 독일 부부들.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건배를 했다. [사진 장채일]

 
가을비가 내리는 캠핑장에서 사흘간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후 배를 타기 위해 도착한 앙코나항. 앙코나에서 아드리아해 건너편 스플릿까지는 배로 10시간이 넘는 거리다. 밤사이 우리를 바다 건너 발칸반도로 데려다줄 거대한 유람선이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떠 있다.  

 
 
우리를 아드리아 해 건너편 크로아티아로 건네다 줄 거대한 유람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앙코나 항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있다. [사진 장채일]

우리를 아드리아 해 건너편 크로아티아로 건네다 줄 거대한 유람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앙코나 항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있다. [사진 장채일]

 
밤 10시. 승객들이 모두 승선한 후 이제 차량을 실을 차례. 거대한 유람선에 우리 캠핑카도 천천히 몸을 실었다. 곧 발칸이다.

 
장채일 스토리텔링 블로거 blog.naver.com/jangchai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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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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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