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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튜브로 연명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시간이 없어요"

14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생활관에서 만난 김순옥(96·사진 오른쪽) 할머니의 코에는 영양식을 공급하기 위한 튜브가 연결돼 있었다. 김민욱 기자

14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생활관에서 만난 김순옥(96·사진 오른쪽) 할머니의 코에는 영양식을 공급하기 위한 튜브가 연결돼 있었다. 김민욱 기자

14일 오후 2시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 생활지원시설이다. 국내 생존자 32명(국외 1명 미포함) 중 9명이 거주한다. 단일 지원시설로는 가장 많은 규모다.
 
생활관 입구 쪽 거실을 지나니 김순옥(96)·하수임(90) 두 할머니가 머무는 방이 나왔다. 2.5평(8.3㎡) 정도 돼 보였다. 두 분 모두 낙상 방지용 난간이 양쪽에 달린 요양용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김순옥 할머니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고, 하수임 할머니는 수면 중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공동 생활지원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김민욱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공동 생활지원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김민욱 기자

 
김순옥 할머니의 코에는 하루 네 번 영양식을 제공하기 위한 튜브가 연결돼 있었다. 인사를 건네도 눈을 맞추는 등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환하게 웃는 사진 속의 할머니는 현실 속에 없었다. 
 
맞은편 방의 김정분(88) 할머니도 튜브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침대 옆 테이블 위로는 성인용 기저귀를 갈 때 사용하는 소독약이 보였다.
 
일본 정부가 과거 전시 상황에서 어린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끔찍한 폭력 범죄를 부정하고 있는 동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이처럼 점점 더 노쇠해져 가고 있다. 심지가 거의 다 타들어가 이제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촛불 같다는 안타까움이 절로 들었다.  
 
아흔을 넘기고도 정정했던 이옥선(91)·박옥선(94) 할머니도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나눔의집 생활관 거실 의자에 앉아 뉴스 채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일본이 혹여나 사죄하지는 않는지, 마치 그런 소식을 듣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눔의집 생활관 거실에서 이옥선(91·사진 왼쪽), 박옥선(94) 할머니가 뉴스를 보고 있다. 김민욱 기자

나눔의집 생활관 거실에서 이옥선(91·사진 왼쪽), 박옥선(94) 할머니가 뉴스를 보고 있다. 김민욱 기자

 
두 할머니는 지난 9월 연로한 몸을 이끌고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야구경기에서 특별 시구·시타 행사를 했다. 그만큼 위안부 피해 문제와 관련해 더 큰 사회적 관심 등을 바라고 있다.
 

이옥선 할머니는 “우리가 고통받은 생각을 하면 억울하고 분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사죄를 받을) 앞길이 없다”고 한숨 쉬었다.

나눔의집 추모공간 앞 임옥상 작가의 '대지의 여신'.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늪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나눔의집 추모공간 앞 임옥상 작가의 '대지의 여신'.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늪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같은 여자라서 사죄를 받아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국의 딸들이 받은 고통을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옆에 있던 박옥선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하는데 나는 모르겠다”며 힘없이 말했다.
지난 11일 별세한 이기정 할머니. [중앙포토]

지난 11일 별세한 이기정 할머니. [중앙포토]

 
지난 1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충남지역 유일한 생존자였던 이기정(92)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기정 할머니를 포함해 올해만 벌써 7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자신을 짓밟은 일본 정부의 사죄를 끝내 받지 못한 상태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동안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9명(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인정 7명 미포함) 중 206명(86.2%)이 세상을 떠났다. 
[자료 여성가족부]

[자료 여성가족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이제 진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생존자들의 평균 연령은 90.7세다. 85~89세가 16명, 90~95세가 14명, 96세 이상이 3명이다. 최고령은 1916년생 정복수 할머니로 101세다.
                                                   
더 큰 문제는 일본에서 위안부 피해 관련 이슈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더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14일 나눔의집을 찾은 일본인 자원봉사자 A(75·여)는 “내 주변의 사람들마저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난 7일 대한민국을 국빈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용수 할머니를 끌어안아 이슈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오죽하면 새우 한 마리(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만찬 때 화제가 된 독도새우)에 더 민감하게 일본이 반응을 보였을 정도”라고 안타까워했다.  
청와대가 한·미 정상 만찬 때 내놓은 독도 새우.

청와대가 한·미 정상 만찬 때 내놓은 독도 새우.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정부가 전시 여성 인권 유린 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해외에 알리는 등의 활동에 너무 소극적이다. 시민단체만 이리저리 뛰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할머니들에게는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고 호소했다.
나눔의집 역사관 안에 재현된 위안소. 음산한 분위기다. 김민욱 기자

나눔의집 역사관 안에 재현된 위안소. 음산한 분위기다. 김민욱 기자

 
나눔의집 생활관 앞에 자리한 역사관 안에는 ‘위안소’를 재현한 공간이 있다. 재현이지만 음산하다. 위안소 맞은편 모니터에서는 “15살의 어린 여자아이가…” 피해자들의 한 맺힌 증언이 나왔다.
 
경기도 광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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