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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천사는 하얗게 '태움' 당했답니다…후배도 환자처럼 보살펴주세요

민주주의는 생활이다⑤ 

① 1년 차 '신규' 간호사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어요.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다 못해 영혼까지 태운다는 간호사의 ‘태움 문화’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같은 신입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인 프리셉터(preceptor)와 항상 함께 다니면서 일을 배웁니다. 어느 날은 프리셉터가 저를 10분 동안 세워두고 ‘육두문자’를 쏟아냈어요. 실수를 한 건 알지만 그렇게 모욕까지 당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밥을 먹다가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신규 때는 선배가 머리카락 잡아당기고, 조인트 까고 그랬어. 너희들은 좋은 세상 만난 거야."
 
친구가 일했던 지방의 한 병원은 더 합니다. 한 번은 '수샘(수간호사 선생님)'이 신규를 불러 모아 며칠 전 실수를 질책하며 차트를 집어던졌대요. 옆에 있던 주사기 2~3개를 친구를 향해 던지기까지 했구요. 환자에게 사용한 주사기였다네요. 이 일 때문에 친구를 포함해 신규 여럿이 사표를 냈습니다.
 
집에서 자다가 "일을 이따위로 해놓고 갔냐. 와서 해결해"라는 선배 전화를 종종 받습니다. 전화가 올까봐 조마조마해서 잠이 잘 안오죠.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날고 있고요. 불면증·우울증·공황장애는 간호사들의 '직업병'입니다.
 
2015년 대한간호협회 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경력 1년 미만)의 평균 이직률은 33.9%입니다. 3명 중 1명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난다는 얘기입니다. 이직률이 높다 보니 입사 후 100일이 되거나 1년이 되면 "잘 버텼다"는 의미로 백일잔치·돌잔치를 열어줍니다. 신규 간호사들을 데리고 뷔페에 가서 밥을 먹는다거나, 간호사로 일한 소감을 인터뷰 한 영상을 틀어줘요. 태움 문화만 없으면 이런 잔치, 더는 필요 없어요.
 

② 4년 차 대학병원 간호사

간호사가 되고 1년 정도까지 우울증이 심각했습니다. 두 달째에 수샘을 찾아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업무 스트레스에 태움 문화까지 겹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인력이 부족하니 수샘은 나를 필사적으로 설득했어요.
 
얼마 뒤 수샘 바로 밑 ‘차지샘(책임 간호사)’이 저를 불렀어요. “너는 수샘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 아니니? 어떻게 그만둔다고 했다가 다시 일하겠다고 해? 나 같으면 창피해서라도 부서이동 신청하겠다, 얘.” 차지샘은 환자, 보호자, 실습 나온 학생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저를 30분 동안 세워두고 공개 망신을 줬어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퇴근 후 평소 친하게 지내던 2년 차 선배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너 아까 울었다며? 그래도 그 샘, 한번 울린 다음부터는 좀 잘해주더라. 힘내’ 이게 위로인가요. 선배 문자에 눈물만 더 났습니다.
결혼한 샘들은 자녀 계획도 마음대로 못 세워요. ‘임신순번제’ 때문입니다. 이해는 됩니다. 한 명이 임신해서 낮에만 근무하거나, 아예 휴직하면 그 자리를 누군가가 대체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아이를 가진 건 축하해줄 일 아닌가요. 임신순번제 때문에 임신 준비하던 간호사가 먼저 임신해버린 후배 간호사와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봤어요. 드문 경우지만, 제 친구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차례가 아닌데 임신하면 낙태를 권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후배들 혼내거나, 나도 모르게 선배 대접을 바라는 내 모습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요. 저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③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

요즘 제가 다니는 병원이 인터넷에서 춤 동영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우리 병원 간호사들은 매년 체육대회 때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고 춤을 춥니다. 재단 소속 6개 병원끼리 경쟁이 붙어 장기자랑이 과열된 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간호사들의 위계질서 의식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간호사들은 거의 신입이라서 싫다는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무대에 오를 간호사는 간호부장, 수샘 등이 오디션을 보고 뽑습니다. 의상도 수샘이 골라줘요. 간호부장은 "네가 안 하면 누가 해? 나이든 네 선배가 하니?"라고 말합니다.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간호사들은 한 달 동안 새벽 6시 반에 출근해 3~4시까지 일하고 저녁 늦은 시간까지 연습에 참여해야 합니다. 수치감에 울면서 억지로 연습하는 애들도 많습니다.
 
간호사들 사이의 군기, 우리 병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수간호사의 강요로 다단계에 가입했었다는 사람도 있어요. 이번에 한 고참 간호사가 갑질 제보를 상담해주는 시민단체 운영진에게 '반성문'을 남겼다더군요. "신입 때 죽기보다 하기 싫었던 장기자랑인데, 제가 10년 차 선배가 되고 보니 하지 말라고 말리지도 못하고 '우리 때도 다 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현·하준호 기자 lee.hyun@joongang.co.kr
일러스트=심정보 디자이너
 
※이 기사는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과의 인터뷰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한림대 성심병원 사례를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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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자 상담소]‘태움’은 문화 아닌 학대 …의사소통 훈련 필요하다
동아대 간호학과 강지연 교수

동아대 간호학과 강지연 교수

'태움'은 엄연한 학대입니다. 우수한 간호사도 태움의 수렁에 빠지면 스스로 위축돼 기본적인 능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를 통과의례나 교육으로 당연시하고 묵인하면 안됩니다. 간호사들이 서로 존중하며 일하도록 하려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스트레스가 학대를 부릅니다. 정부 차원에서 간호사 근무환경을 점검하고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학교와 의료기관은 의사소통과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괴롭힘 시나리오'를 짜서 비폭력 대화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인 ‘인지 리허설’은 효과가 좋습니다. 이를 통해 간호들이 ‘자신을 돌보는 법’을 익힐 수도 있습니다.
 
강지연 동아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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