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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바레인서 “내 재산, 장학재단에 모두 출연”

이명박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바레인에 도착해 마이 빈트 모하메드 알 칼리파 바레인 문화 장관과 함께 '바레인국립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이명박재단 제공=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바레인에 도착해 마이 빈트 모하메드 알 칼리파 바레인 문화 장관과 함께 '바레인국립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이명박재단 제공=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레인 고위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자신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극복 과정을 소개하며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을 당부했다.  

 
이 전 대통령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바레인 고위공직자들과 외교관들을 만나 대한민국의 발전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며 강연 전문 내용을 게재했다.  
 
이 전 대통령은 “조그마한 시골에서 태어나 특별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거리에서 행상하면서 학교 다녔고, 특히 야간고등학교 다닐 때는 낮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다녔다”며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대학에 들어가 환경미화원이 되어 돈을 벌면서 대학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나를 이끈 것은 ‘가난’과 ‘어머니’라며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야 했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배고픔도 참고 공부를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나 개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나의 재산을 가난한, 제가 어렸을 때 힘들었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에 모두 출연했다”고 밝혔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었음에 늘 감사한다고도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강연을 마치며 “대한민국은 북한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여기에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긴요하다. 바레인과 중동사회가 대한민국 옆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페이스북 글에서 “청중 한 분이 ‘빠른 경제 발전 과정에서 정치적 동요와 갈등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사회적 발전을 이루어냈는가’를 물었다”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은 국론을 분열시킬 뿐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바레인 강연 내용 전문이다. 
오늘 마이 장관 초청으로 와서 이 바레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특히 이 장소가 구시가를 (복원)개발해서 만든 장소이기 때문에 매우 인상 깊은 장소에 와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도심에 큰 센터보다도 구시가에 있는 센터에 와서 이야기하게 된 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레인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40여 년 전이 됩니다. 저희 회사가 이곳에 와서  <바레인 아랍 수리 조선소> 건설을 수주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어려웠습니다. 1인당 GDP는 2,500 달러 정도였는데 그 당시 저희 회사가 1억 3천 7백만 달러에 달하는 공사를 수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세계 석유파동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한국 기업들이 중동에 진출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이 바레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사실 바레인 국립박물관도 갔었습니다. 현대가 건설했다고 해서 장관님 소개하신 것 같은데, 제가 오늘 국립박물관도 하고 구시가지를 유지해서 복원하는 현장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바레인의 문화,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서 마이 장관께 아주 정말 좋은 기회를 제게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한국이 중동 진출에 있어서 바레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기 때문에, 한국과 바레인의 관계를 처음부터 참여한 인연으로 (바레인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고, 그 당시 바레인과 오늘 제가 모처럼 방문해서 보는 바레인은 크게 변화되었고, 그 변화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아주 안정되게 발전한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마이 장관께서는 내가 쓴 책을 읽고 저를 꼭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초대해 주신 마이 장관께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모든 나라들은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이 각기 고유하고 처한 상황이 서로 다릅니다만, 세계 모든 곳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발전하는 글로벌 시대인 만큼, 공통적이거나 보편적인 부분이 많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경험을 소개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금 전 사회자께서 소개를 하셨습니다만 저는 기업에서 26년을 보냈고, 그 경험을 가지고 국회의원, 1천만 인구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 일했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기업에서의 비즈니스 경험이 서울시장과 대통령직을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 사회자가 소개한대로 조그마한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때는 대한민국 모두가 가난했지만 우리 집안이 특별히 가난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거리에서 행상하면서 학교 다녔고, 특히 야간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낮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다녔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대학에 들어가서, 새벽에 시장 청소를 하는 환경미화원이 되어 돈을 벌면서 대학을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용직에서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종업원이 백 명 정도 되는 <현대>라는 중소기업에 취직했습니다만 저는 그곳에서 세계를 다니면서 저 사막에서 시베리아 동토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뛰어다니는 샐러리맨이 되었고 제가 회사를 떠날 때에는 종업원이 16만 여명으로 늘어났고, 건설, 자동차, 조선, 해운, 철강 등의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글로벌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나는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떠나 정치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소년에서 지금까지 나를 이끈 것은, 나의 스승은 가난과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야 했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배고픔을 참고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일생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있고, 또 열심히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를 드리고, 그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에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 개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나의 재산을 가난한, 제가 어렸을 때 힘들었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에 모두 출연했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었음에 늘 감사하고 있고,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해서도 또한 감사합니다.
 
한국은 바레인 역사만큼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졌고, 1,300년 넘게 한반도의 유일한 왕조였습니다.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받아서 강점되었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36년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후 열강들의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독립 후 채 5년이 지나기도 전에 구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3년에 걸친 치열한 전쟁으로 온 국토는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서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서 지금 70년째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후(戰後) 대한민국은 참혹한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7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3천만 인구는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대한민국은 천연자원도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산업과 인프라는 빈약했고, 도시는 대부분이 파괴되고,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외국의 무상원조로 겨우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말에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고 지금은 선진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G20 구성원이 되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도 3만 달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보면서 기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적은 그냥 저절로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도전한 결과였습니다. 그야말로 모두가 나서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바레인에 처음 진출했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100만명이 넘게 해외 나가서 외화를 벌어 먹고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기업인도 열심히 일했고 근로자도 열심히 일했고, 또 국가 공무원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일해서 이루어낸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제가 쓴 책에 “신화는 없다”고 썼습니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화처럼 보이지만, 안에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위기와 시련에 맞선 도전이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안팎으로부터 몰려오는 험난한 파도에 용감히 맞섰고, 회피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작은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를 두고 사람들은 ‘신화’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신화는 없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이 있을 뿐입니다.  
 
대통령 재임 중이던 지난 2009년에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되어서 불과 한 세대 만에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화했습니다.  
 
바레인도 이웃 국가에 비하면 인구와 자원이 그리 풍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는 21세기에는 이러한 불리한 여건이 오히려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이 곧 기도이다’라고 말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일은 기도하는 마음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한 사람을, 한 사회를, 기도하고 일하게 할까요? 개인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더 기도하고 더 일하게 할까요? 나 개인의 살아온 길과 한국의 근대사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사람들의 인성과 지식일 것입니다. 바른 심성과 지식이 사회를 발전시킵니다.
 
그것을 일깨우고 키우는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이라고 봅니다. 나는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난 문이 교육이었듯이 미래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도 바로 교육에 있다고 믿습니다. 교육은 자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을 만듭니다. 물적 자원과 달리 인적자원은 스스로 누적되고 재생산됩니다.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고, 쓰면 쓸수록 늘어납니다.  
 
혹독한 식민통치도 사람들의 속마음을 빼앗을 수는 없었고 참혹한 전쟁도 머릿속의 지식을 파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끝났을 때, 인적자원의 잠재력은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일깨워내는 일, 즉 교육에 힘쓰면 되었습니다.  
 
교육은 인간의 자아를 실현시킵니다. 개인의 삶을 정신적․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질서와 복지에 기여합니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인 것입니다.
 
한국문화에는 인성교육에 대한 전통적 인식이 있습니다. 문(文)을 숭상하고, 예(禮)를 중시하며,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아마 이 중동의 문화도 비슷하리라 봅니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비로소 옳은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전통교육이 인성을 중시했다면 오늘날의 학교 교육은 지식교육에 치중하는 편입니다. 한국에서는 양자의 균형에 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조부모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대가족제가 보편적인 중동에서는 가정에서 인성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점이 큰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재임 시 나는 ‘경제대통령’으로 불렸습니다. 내가 기업 경영자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이제는 학술적 개념으로 자리 잡고 통용되는 ‘녹색성장’을 처음 주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는 ‘한국 경제가 침몰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2년 후인 2010년에는 다시 “한국은 위기를 통제하는데 만점을 받았다”고 하면서 “교과서적인 회복(textbook recovery)을 이루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교육의 내용과 방법도 시대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 내용과 방법은 아날로그 시대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대통령 재임 중에 기술혁신과 사회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제도화하고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한편으로 미래 사회에 대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른 한 편으로 교육제도를 실용적으로 개혁하였습니다. 특히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기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폐허 위의 빈국을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교육이었습니다. 위기와 혼란에서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교육입니다. 오늘날 교육이 다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선진화의 고비를 넘고 있는 한국에서 다시 교육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변혁의 시기에는 어제까지 통용된 원리와 원칙이 내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변화와 미래에 대응하는 새로운 원리와 방법이 필요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 변하는 것에 대응해야 합니다. 사물과 현상의 실질, 변치 않는 본질적 가치를 붙잡고, 변하는 것에 대응할 새로운 방법을 창의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실용주의(pragmatism)라고 부릅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체득한 사고와 행동의 이치와 도리이자 내가 이끈 정부의 국정철학이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전의 산업혁명들이 무색할 정도의 대변혁이 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경제와 삶의 많은 부분을 대체해 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 그리고 그들 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공동체의 생활양식 전반이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문명에 미증유의 대변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에서는 교육이 더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지식과 기술의 발달을 바르게 통제하는 것도 교육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공생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시대에는 인종과 종교, 관습과 풍토를 서로 존중하면서도 장벽을 쌓기 보다는 문을 열고 전 세계와 교류하며 함께 일하고 협력하게 될 것입니다. 개방성은 이 시대의 특징이자 발전 가능성입니다.
 
이웃 나라 UAE는 석유 매장량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개방하고 포스트-오일 시대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나는 대통령 재임 시절,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 UAE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그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퇴임 후에도 왕세제 초청으로 매년 한 번씩 UAE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아부다비가 유럽 유수 박물관의 분관을 유치한 것도 미래를 내다본 개방적 발전 전략으로 보입니다.  
 
바레인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레인은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입니다. 예전부터 교통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바레인이 개방을 통해 지금 문화와 관광, ICT 중심으로 새롭게 도약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앞으로 민관이 합력하고 국제적 협력이 이루어지면 이웃나라와 다른 대륙의 문화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전통문화와 용융되어 새로운 문화로 재창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K-Pop 등 한류도 바레인의 공연문화 진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색적 휴양지에서 전통문화와 어우러진 공연을 보기 위해 멀리서 가까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레인을 찾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K pop은 온 세게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공연을 비롯한 문화산업의 발전은 관광과 서비스 산업의 진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장차 바레인이 중동의 문화중심지로 도약하게 되면 경제 발전도 탄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국과 바레인은 물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지만 훌륭한 인적자원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양국은 문화, 금융과 물류의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용융과 창의의 혁신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교류하고 협력해서 함께 공생의 미래를 열어갑시다.  
 
나는 바레인이 교육을 통한 인적 자원개발과 개방정책을 통한 문화산업 진흥에 조만간 큰 성과를 내길 바랍니다. 그와 함께 의욕적인 <경제비전 2030>이 성공하게 될 것을 바랍니다. 그 ‘신화 창조’의 길에 한국 기업과 한국인들이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끝으로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한반도는 70년 넘는 세월 동안 분단되어 있습니다. 남북이 여전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은 평화통일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남쪽은 3만불 소득에 북한은 1인당 GDP 1천불 정도입니다. 북한은 주민을 굶주림 속에 방치하고 인권을 탄압하면서 핵무장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만류와 유엔의 거듭된 결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면서 도발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앞으로 더 많은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또한 긴요합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바레인과 중동사회가 대한민국의 옆에서 적극 협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바레인의 무궁한 발전과 여러분의 가정에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원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따뜻한 인사를 전합니다. 오랜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의응답>
 
사회자 : 모든 것이 정확하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  
 
이명박 : 배가 고프면 질문을 안 하셔도 됩니다. (일동 웃음)  
 
사회자:  fantastic lesson here. 대통령님의 어머니의 가르침, 교육이 대통령님 강연 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단순히 기적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공의 열쇠가 교육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교육은 학생의 수가 아니라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감이나 질문을 받겠습니다.  
 
청중1 : 좋은 강연 감사드립니다. 좋은 의견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바레인이 문화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다는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청중2 : 저는 한국에 1980년대에 방문했었습니다. 그 때 삼성은 흑백TV를 생산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지요.
 
청중3 : 저는 질문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빠른 발전이 있었는데, 내부에서 정치적 갈등, 노사갈등도 있고 학생 시위도 있고 정치적 동요가 많았는데 어떻게 사회를 발전시켜서 이렇게 사회적 발전할 수 있었는지요?  
 
이명박: 대한민국이 짧은 기간에 발전했기 때문에, 사회 전통에도 여러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서로 간극이 있어서 마찰이 있을 수 있습니다. 노동자, 정부, 기업 여러 분야가 있지만, 대한민국은 그래도 세계에서 이러한 여러 충돌의 여지가 있지만 이것을 그래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조화 시켜서 오늘날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생각합니다. 기업가도 정부도 이러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대 간의 마찰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마찰도 있고 여러 분야에서 갈등이 있지만, 각 분야의 국민들은 우리가 이뤄놓은 이 결과를 훼손시켜서는 안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가지 않습니다. 항상 compromise해 왔고, 지금도 발전해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사회자: 오늘 강연이 장시간 진행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 없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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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