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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온 아키히토 일왕, 고구려 언제 왜 망했나 물어"

고구려 신사 60대손 "일왕, 한반도 도래인에 관심 깊더라"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지난 9월 20일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있는 고마(高麗·'고구려'라는 뜻)신사를 참배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고마 후미야스 구지(宮司)다. [사진=연합뉴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지난 9월 20일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있는 고마(高麗·'고구려'라는 뜻)신사를 참배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고마 후미야스 구지(宮司)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20일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사이다마현(埼玉県) 히다카시(日高市)의 고마신사(高麗神社)를 찾았다는 소식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크게 보도됐다.
 
고마는 고구려의 일본식 표현이다. 고마신사는 7세기 일본으로 건너온 고구려인 ‘약광(若光)’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약광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백제인, 고구려인을 모아 무사시노(武蔵野) 지방에 고마군(郡)이라는 마을을 세웠다. 행정구역상 명칭은 히다카시로 바뀌었지만 고마가와(高麗川)역, 고마소학교, 고마찌개(김치찌개와 비슷) 등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고마(高麗)’ 성씨의 후손도 남아있다. 일왕의 안내를 맡은 60대손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구지(宮司·신사의 총관리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고마신사로 향했다. 
사이다마현 히다카시 고마가와역.고마신사 주변 고마찌개를 파는 식당 간판고마신사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신사 입구에는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해 중앙민단에서 기증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2개가 자리 잡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기념식수를 한 나무도 있다.

고마신사 앞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민단이 세운 것이다.

고마신사 앞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민단이 세운 것이다.

일본 정치인 명의의 식수도 여럿 있었다. 고마신사는 ‘출세개운(出世開運)’의 신사로 통한다. 고마신사에서 참배를 한 뒤 총리가 된 정치인이 9명이나 나온 뒤로 정·재계는 법조계 인사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신사 뒤에는 약 400년 전 지은 고마가(高麗家)가 있다. 고마신사의 구지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으로 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다. 
고마신사 뒷편에 있는 고마가(高麗家)는 약 400년전 지어진 것으로 고마신사의 구지(宮司)들이 대대로 살았던 집이다.

고마신사 뒷편에 있는 고마가(高麗家)는 약 400년전 지어진 것으로 고마신사의 구지(宮司)들이 대대로 살았던 집이다.

고마신사 본전(本展)

고마신사 본전(本展)

아키히토 일왕은 스스로 백제의 후손임을 밝히거나(2001년 생일 기념 기자회견) 2015년 한일수교 50주년 기념으로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된 금동반가사유상을 관람하는 등 한국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9월 고마신사에선 3시간가량 머물렀다고 한다. 
 
고마 구지는 “천황(일왕)이 일본의 고대사 가운데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방문은 어떻게 이뤄졌나.
이번 여행은 일왕의 사적(私的) 여행으로 알고 있다. 궁내청에서 고마신사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고 오랫동안 준비해 맞이했다.  
 
일왕은 주로 어떤 부분에 관심을 보였나.
기본적으로 고마군에 대한 질문과 백제·고구려인에 대한 질문이 중심이었다. 일본의 고대사 가운데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渡来人)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굉장히 궁금해한다고 느꼈다. 아키히토 일왕은 원래 어류학(魚類學) 박사이며 학자다. 이번에도 고마신사에 오기 일주일 전에 도래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를 불러 따로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몰라서 묻는다기 보다는 본인이 알고 있는 걸 확인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이었나.
예를 들면 고구려는 언제, 왜 망했는지, 또 일본에 백제인과 고구려인 중 누가 더 많았는지 등을 물었다. 미치코 왕비는 고구려인이 어떤 문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해했다. 지금 실물로 확인되는 건 그릇이다. 고마 지역에선 당시 그릇이 많이 발굴돼 도래인의 영향으로 도기와 가마 문화가 발달했음을 입증했다.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도 했나.
일왕이 직접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아서 그 마음까지 읽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왕이 한국에 관심을 가진 게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일왕이 고마신사를 찾은 것도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거나, 현재 한반도와의 관계를 생각해서만은 아니라고 본다. 일왕은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들어서 체화하는 존재다. 당연히 일본에 온 도래인에 관해 일찍이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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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한 응접실엔 차기 일왕인 나루히토(徳仁) 왕세자의 사진도 걸려있었다) 나루히토 왕세자도 고마신사를 방문한 적이 있나.
1971년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왔다. 왕세자는 역사를 연구한다. 고마신사에 대해 당연히 흥미가 있었고, 신사 뒤에 있는 고마가(高麗家)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당시 선조들의 생활상이나 유서 깊은 보물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고마신사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고마신사는 원래 이 지역의 신을 모시는 곳이다. 고마신사의 존재는 인식하고 있지만, 어떤 경위로 존재하게 됐는지 등에 대해선 오히려 잊고 지낼만큼 일상화된 존재였다. 지난해 건군(建郡) 1300주년을 맞아 여러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고마신사와 선조들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고마신사의 60대손 고마 후미야스 구지(宮司)

고마신사의 60대손 고마 후미야스 구지(宮司)

 
한일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고마신사가 갖는 의미가 있을까.
고마신사에는 학생·학자·외교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일관계라는 대단한 의미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한국과 일본은 항상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늘 관계를 지속해왔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연결돼 있다. 내년이 한일 파트너십 20주년인데, 파트너십은 양심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의 양심과 일본의 양심은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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