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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중국의 리더십은 결국 고전의 리더십이다

내 책장엔 마오쩌둥이 표점(標點)한 『자치통감』(원본 294권)이 꽂혀 있다. 표점은 아무 문장기호 없이 쓰인 한문을 소절, 문장, 단락을 나누고 점을 찍는 작업이다. 고사를 통째로 외우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그뿐이랴. 마오는 중국의 방대한 역사책 등장 인물과 사건에도 미주알고주알 펜으로 자기 생각을 달았다. 시진핑도 『논어』의 각종 구절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걸 보니 열 번 이하로 읽진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리더십 원천은 고전이다.
 
1000년, 2000년 전 고전만 알면 중국 지도자의 복심(腹心)을 알고, 어떤 문제든 척척 대응할 수 있는가? 그럴 리 없다. 고전에 누가 마오쩌둥처럼 남 위에 군림하기를 즐기고 정치적 고비마다 인민의 목숨을 함부로 하라고 했던가? 마오가 읽은 고전 중의 고전 『춘추좌씨전』에 악사 광(曠)이 진(晉)나라 군주에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은 실로 지극히 인민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어찌 단 한 사람으로 하여금 백성 위에 군림해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놓아두어 하늘과 땅의 본성을 버리게 할 것입니까! 절대로 그럴 리 없습니다.” 마오의 광폭한 행보가 전혀 고전적이지 않았듯이 필시 시진핑도 공자의 가르침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고전을 중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삼자고 말하고 있으니 허황된 것 아닌가? 허황되지 않다. 본시 군자는 어울리되(和) 맞장구 치거나 끌려다니지(同) 않는다. 좋은 나라란 군자들의 모임일진대, ‘화이부동(和而不同)’할 뿐 어찌 다른 나라 지도자의 안색이나 살필 것인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끝없이 모색하는 자는 남의 부림을 받지 않는다(勞心者治人)하니 그들 이상으로 모색하는데 그들의 부림을 받을 까닭은 없다. 고전은 어울림(和)으로 들어가는 손쉬운 문이면서 자존감(不同)을 확인하는 놀이터다. 과문한 내가 알기로 세종은 『자치통감』을 완독한 조선의 유일한 군주인지라 중국 역사에 누구보다 정통했다. 그러나 바로 그가 우리 글을 만들었다. 실로 주견(主見)을 가진 화이부동한 인물, 즉 군자가 아닌가!
 
물론 사회의 구조가 바뀌었고 사람의 인식도 바뀌었다. 그러므로 고전은 오늘날의 사안에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몇 해 전 유명한 전직 직업 외교관이 미·중 양강 사이에 낀 한국의 길을 말하면서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을 이야기하기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원교근공이란 원래 전국 통일전쟁 시기 진(秦)의 외교 슬로건이었다. 즉, 강자가 가운데 낀 약자를 칠 때 멀리 있는 자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추구하려 개입하는 것을 막는 정책이다. 강자가 칠 때 쓰는 전략을 약자가 당할 때 추구하면서 생존과 번영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주견 없이 읽는 것은 안 읽는 것만큼 어리석다.
 
지금 이 땅에 발을 디디고 그때 그 땅의 맥락을 고려해 읽으며 생각하는 힘을 키우면 고전 읽기는 끝난다. 고전 읽기는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구성하는 체계를 익히는 과정이다.
 
좀더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오면, 실제로 중국고전을 통해 우리는 중국 리더 집단의 이데올로기 체계를 읽을 수 있다. 현대 중국의 지도부는 어떤 상황이 와도 공산당의 영도를 견지한다는 목표를 포기할 듯하지는 않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중우(衆愚)정치로 보는 그들의 태도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최초의 세계제국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I세는 왕정을 옹호하면서 “민주주의는 나라의 의사결정을 느리게 하고 어리석은 이들이 득세하게 만들 것이다”고 했다. 그가 페르시아식 통치 기술을 통해 제국의 번영을 이룩하고 소위 ‘민주주의’ 체제하의 군소국가들을 간단히 제압했으니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하겠다. 그가 전제정치를 옹호한 이유는 페르시아의 거대한 영토였다.
 
예컨대 중국 지도부는 인도의 민주주의를 비웃는다. 중국에서 만나는 관리들은 물론 심지어 진보적인 학자들마저 필자에게 반문했다. “이렇게 큰 나라에 민주가 가능한가요?” 필자는 명백한 민주주의자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 리더집단의 두려움과 냉소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구상 최대의 조직을 이끌면서도 그 중심력을 포기하지 않는 집단이 통치를 유지하자니 바로 그런 목적으로 쓰인 고전 말고 또 무슨 선택이 있겠는가? 마오가 그토록 고전에 집착한 이유도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는 토씨도 고치지 않고 오자서(伍子胥)의 유격전술론을 읊었고, 실제로 전장에서 구현했다. ‘적이 나오면 퇴각하고 퇴각하면 따라간다!’ 중국 리더들이 고전에서 도덕을 배우지 않을지라도 통치의 기술을 배우고 있음은 명백하다.
 
중국, 지구상 인구의 4분의 1이 살고 있는 땅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다. 되돌릴 수 없이 가까이 온 지금, 우리는 이 나라와 갈등을 겪으며 당황해한다. 혐오와 동경의 구불구불한 터널을 지나니 이제는 갈등인가? 그러나 당황할 필요가 없다.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라 큰 나라는 큰 대로 고민이 있고 작은 나라는 작은 대로 고민이 있다. “큰 나라의 재앙은 우두머리가 되려는 욕망이요, 작은 나라의 재앙은 이익을 바라 경거망동하는 것이다.” 전국시대 희대의 외교가 소진(蘇秦)이 한 말이다.
 
아무리 큰 나라라도 최소한의 도를 지키지 않으면 대외적인 강자가 되기는커녕 스스로를 다스릴 수도 없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소진의 후발제인(後發制人, 나서지 말고 나중에 일어나 제압한다)의 현대적 표현이다.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입발림일지라도 얼마나 고전적인가.
 
물론 오늘날 중국 지도부는 선배들의 슬로건을 넘어 대국굴기를 공공연히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도 바로 자신을 위해 적정선을 지킬 것이다. 또한 작은 나라는 소진의 화살의 표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사이 고전은 그들에게 리더십의 기술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중국으로 역수출된 졸저 『춘추전국이야기』의 계약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이런 대화가 오갔다. “제 책을 중국 독자들이 좋아할까요? 자기 역사를 외국인이 다르게 해석하면 자존심이 상할 텐데요.” 답이 돌아왔다. “다를수록 좋습니다. 우리 자신과 완전히 다른 시각을 원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은 화이부동의 놀이터다.
  
◆공원국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국제대학원을 나와 현재 중국 푸단(復旦)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 탐구, 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수 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유라시아 신화대전(神話大典)’ 저술에 몰두 중이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1~11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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