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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중앙일보 <2017년 11월 3일 38면>  
국정원 특활비 파문 … 잘못된 관행 바로잡는 계기 삼아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이 지출 증빙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제공한 사실이 검찰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전달자는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던 이헌수씨, 받은 쪽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었던 안봉근·이재만씨라고 한다. 이들에게 지급된 돈의 규모는 매달 1억원씩 4년여간 총 40억원에 이른다. 돈의 출처는 남재준·이병기·이병호씨 등 차례로 그 조직의 수장을 지냈던 국정원장 특활비였다. 특히 청와대 살림을 책임졌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원 돈을 받았다’는 폭탄 진술을 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국정원에 의한 청와대 상납사건’이라거나 ‘직무관련자끼리 금품을 수수한 뇌물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예를 들어 ‘국정원 댓글 공작’ 같은 특정한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간에 단서가 튀어나올 때마다 새로운 사건으로 낙인찍어 다른 범죄 혐의를 씌우는 식의 별건 수사는 특정인을 겨냥한 보복 수사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검찰은 객관적 증거와 법리적 명징성을 제시해 관련자들의 혐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정원 특활비의 복잡 미묘한 성격 때문이다. 국정원법에 국정원 예산 전체를 개별 증빙을 요구하지 않는 총액주의를 적용하고, 비밀활동비를 정부 각 부서 예산으로 분산 배치할 수 있게 한 것(12조 1, 2항)은 좌파·우파 정권 가릴 것 없이 국가적으로 그럴 만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 인사나 청와대가 지정한 인사가 제3국으로 나가 북측 인사를 만나면서 적지 않은 돈을 집어주는 일은 정보사회에선 상식처럼 되어 있다. 이럴 때 청와대가 쓰는 돈은 모두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국익을 위해 공개할 수 없지만 불가피하게 지출해야 하는 정보·공작비는 어느 나라나 국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투명한 민주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권이 2018년 정부 예산안에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493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잡아 국회 동의를 받겠다고 올린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돈이 청와대에 흘러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은 곤란하다. 그럴 경우 과거 정권 전체에서 벌어졌던 특수활동비 사건을 모두 추적해야 한다는 반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만 특수활동비를 둘러싸고 국정원의 부정부패나 개인 비리, 청와대의 권력 남용 가능성은 철저하게 견제·감시돼야 한다. 또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국회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다각적인 제도적 장치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팀도 박근혜·이명박 정권의 정치사건에만 몰두하지 말고 특수활동비 관행의 문제점을 조사해 대안을 내놓는 쪽으로 방향을 틀길 바란다.
 
한겨레 <2017년 11월 3일 23면>  
꼬리 잡힌 ‘국고 농단’, 박근혜 비자금 이번엔 밝혀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체포된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검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금고에 따로 관리하면서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사용했다는 주장도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국정원 예산을 사실상 ‘박근혜 비자금’으로 썼다는 뜻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혐의에 대해 최근까지도 “1원도 받은 게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국가예산을 몰래 감춰놓고 쌈짓돈처럼 맘대로 꺼내 쓰며 ‘국고 농단’까지 저질렀던 셈이다.
 
청와대 예산에 엄연히 특수활동비가 배정되는데도 국정원 돈을 따로 챙겨 썼다니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 놓고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거나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 운운하며 옥중투쟁에 나섰으니, 그 뻔뻔함에 말문이 막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상납금’은 취임 초부터 이듬해 5월 남재준 국정원장 때까지 매달 5천만원이었으나 이병기 원장 때부터 1억원으로 올렸다고 한다. 조윤선·현기환 등 청와대 정무수석들은 별도로 매달 500만원씩을 국정원에서 받아 썼다. 국정원은 5만원짜리 현찰을 007가방에 가득 담아 이재만·안봉근 등 ‘문고리들’에게 건넸고,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터져 안봉근 당시 국정홍보비서관이 “보내지 말라”고 해서 중단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통치자금’ 명목으로 정보기관 특수활동비를 청와대가 갖다 쓴 적은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청와대의 안기부 자금 유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없어진 걸로 국민들은 믿어왔다. 이후 국정원 특수활동비 중 일부가 정권 실세에게 개별적으로 건네진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대통령 비자금’으로 정기 상납한 건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다.
 
사용처 역시 ‘뇌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경선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국정원 돈으로 지급했다지만 최소 4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비자금을 어디에 썼는지 그 전모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치자금이나 선거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어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검찰은 그동안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경제 공동체’로 지목했으나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그 실체와 ‘박근혜 비자금’의 전모를 밝혀내기 바란다.
 
논리 vs 논리
“특활비 사용 정당, 부패 대비 제도적 장치 필요”vs“국고 농단·정치개입 철저 수사해야”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13일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13일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아 총무비서관실 비밀금고에 보관했다.” 지난 3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특가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소위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던 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이다. 그가 맡았던 직책인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재무 관리를 담당한다. 대통령의 자금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이므로, 박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했던 1998년부터 보좌해 온 그가 신임을 얻은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런 그가 국정원의 공금이 정기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상납돼 온 일을 진술함으로써 일명 ‘박근혜 비자금’ 사건으로 비화할 단초가 마련되었다.
 
받은 쪽이 있으면 준 쪽도 있는 법. 12일 현재 검찰은 남재준(8일), 이병호(10일) 전 국정원장을 차례로 소환했고 “대통령 지시 때문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관련자들의 진술로 보아 국정원 상납금의 화살표가 향하는 그 끝에 박 전 대통령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부당한 돈을 직접 받았다는 것이 확인되면 비선에 의한 국정 농단을 넘어 몸통에 대한 전면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겨레는 즉각 사설을 통해 이재만 전 비서관의 진술을 전하면서 ‘박근혜 비자금’이라 명명하고 국가 예산을 쌈짓돈처럼 맘대로 꺼내 쓰는 ‘국고 농단’을 저질렀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정원 상납금이 청와대에 전해졌던 방식이나 누구에게 얼마가 건네졌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현찰이 든 007 가방으로 비자금 정기 상납이 있었던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질타했다. 또한 최소 4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비자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정치 자금이나 선거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는지 철저히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중앙은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제공된 돈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특활비의 성격에 근거해 상납이나 뇌물로 해석하는 것을 유보하는 입장이다. 국정원의 예산 사용에서 개별 증빙을 요구하지 않고 총액주의가 적용되는 이유와 비밀활동비를 정부 각 부서 예산으로 분산 배치할 수 있게 하는 이유는 국정원의 업무가 비밀리에 진행되는 정보·공작 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와대에 들어간 국정원의 돈에는 대북 비밀 접촉 자금도 있으므로 청와대에 자금이 들어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두 신문의 사설은 박 전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나 국정원의 부정부패를 바라보는 데 있어 온도차를 느끼게 한다. 한겨레는 박 전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 국고 농단과 국정원의 정치개입 모두에 걸쳐 있다는 데 혐의를 두고 더욱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반면 중앙은 어느 정권에서나 청와대의 국정원 특활비 사용은 정당한 통치로 볼 수 있다는 입장 아래 향후 국정원 관련 부패나 비리에 대비해 제도적 장치와 대안을 마련하라고 끝맺었다.
 
현재 문고리 3인방과 전 국정원장들은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랐다”고 검찰에 진술한 상태다.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이들에게 매월 5000만원에서 1억원을 건넸고 3년간 건넨 총액은 40억원에 이른다고 진술했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위 관료이며 국정원 내에서는 2인자로 불리는 파워맨이다. 그런 그가 청와대 인근 도로에서 매달 은밀하게 현찰 007 가방을 배달했다는 보도는 매우 충격적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현재로서는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와 통제를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둔 혐의는 ‘뇌물 수수’와 ‘횡령’으로 예상된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대가성 입증’이 필수적인데, 대표적인 예로 특수활동비를 두 배로 올린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후에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들고 있다. 또한 국정 농단 관련 보도가 나온 직후 상납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점에서 청와대가 불법성을 인지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횡령죄는 ‘사용처’와 관련이 깊다. 공식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 사용되었다면 통치자금으로 볼 수 없으므로 불법이다. 친박세력 유지를 위해 새누리당 총선 경선용 여론조사 100회 분의 비용으로 사용한 점은 관련자 진술이 확보되었고 그 밖에도 수천만원에 달하는 옷값이나 비선진료비, 내곡동 사저 매입 자금 출처 등도 조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어느 기관이나 개인의 것이 아닌 국민의 세금이다. 청와대의 정당한 통치자금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이었다면 국민도 불행하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실망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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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