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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행위에 한국은 형벌 … 미국은 민사로 해결

경쟁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공정한 경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불공정행위를 규율하는 법이다. ‘경제 헌법’으로 통한다. 경제 헌법을 관장하는 경쟁 당국은 주요국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갑질’이나 담합 같은 공정거래 관련 불법 행위는 한국의 경쟁법인 공정거래법을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이 있어서다.
 
해외에서는 경쟁 당국이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질까? 가장 유사한 제도를 가진 건 일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쟁법 위반행위에 대해선 일본의 공정위 격인 공정취인위원회(FTC)만 고발할 수 있다. 한국은 1980년 공정거래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의 법률을 주로 참고했다. 전속고발권도 자연히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과 프랑스도 형태는 다르지만 경쟁 당국에 권한이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아닌 경쟁 당국이 직접 법원에 기소할 수 있다.
 
미국의 공정거래 집행은 법무부 독점금지국(Anti-trust Division)과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나눠 맡고 있다. 독점금지국이 형사 소추권을 가진 법무부 소속 내에 있어 내부에서 기소가 가능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의 공정위는 다른 국가보다 폭넓은 형벌 규정을 활용할 수 있다. 한국 공정거래법의 형벌 규정 범위가 매우 넓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카르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기업결합 ▶불공정행위 ▶기타(사업자단체행위 금지 등) 등 5개 유형의 공정거래 위반 행위에 모두 형벌 규정이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일본은 불공정행위를 제외한 4개 유형에 형벌 규정이 있다. 미국은 3개 유형(카르텔+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기업결합)에 있다. 유럽연합(EU), 독일 등은 공정거래법에서 형벌 규정이 없다.
 
대신 주요국은 과징금 등 행정제재와 함께 민사적 구제 방편을 적극 활용한다. 미국에서는 경쟁법 관련 사건의 90% 이상이 민사적 구제를 통해 해결된다. 미국이 ‘소송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보다 민사 소송이 활발하기도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이 그 도구다.
 
김상조 공정위원장도 취임 전부터 해외 주요국과 유사한 방향의 공정법 체계 변화를 모색했다. 과도하게 도입된 형벌 규정을 정리하고 대신 민사적 수단을 넓히는 게 핵심이다. 그래야 공정위가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고,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구제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김 위원장은 내정자 신분이던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실질적인 민사적 구제수단을 확충하고 행정 제재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공정위가 발표한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중간보고서’에 이런 김 위원장의 생각이 담겼다. TF는 가맹·유통업·대리점법 등 일부 법안에 대해서만 전속고발권 폐지를 정했다. 민사적 구제수단은 거의 없고 형벌 조항은 많은 한국에서 전속고발권이 완전히 폐지되면 형사 고발이 난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신 피해자에게 여러 민사적 수단을 주기로 했다. 그중 하나로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도’를 가맹·유통업·대리점법과 하도급법 등에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갑질’ 피해를 본 소비자나 기업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불공정거래행위를 중단시켜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은 이미 시행 중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배상액을 최대 ‘10배 이내’로 규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 역시 민사적 수단을 강화해 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큰 틀의 변화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실제 법 설계는 보다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성익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쟁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한국의 공정거래법 집행은 지나치게 가해자 처벌에 집중하고, 피해자 구제는 미흡하다”라며 “민사적 수단을 강화하는 방향은 맞다”라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집단소송제와 같은 제도를 도입·확대한다고 할 때 법 위반 기업에 어느 수준의 징벌을 가해야 좋을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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