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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소설집, 남자들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에 참가한 작가들. 왼쪽부터 김이설·조남주·최정화씨. [사진 다산책방]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에 참가한 작가들. 왼쪽부터 김이설·조남주·최정화씨. [사진 다산책방]

남성들은 불편해하고 여성들은 반길 소설집이다. 표지에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인쇄된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다. 지난해 문단 내 성폭력 사건 등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수위가 여전히 높은 시점을 겨냥한 기획소설집인데, 참가 작가의 면면이 화려하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 페미니즘 작가처럼 되버린 조남주(39), 베스트셀러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41), 최근 대산문학상을 받은 손보미(37)가 우선 눈에 띈다. 김이설(42)·김성중(42)·최정화(38)·최은영(33), 나머지 4명도 어떤 선집에 끼어도 이상하지 않은 탄탄한 작가들이다. 
 조남주의 단편은 마지막 문장이 도발적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것처럼 보이는) 남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10년 동안 꼭두각시 삶을 살았던 여성이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내용인데, '강현남, 이 XXX아'라는 욕설로 끝맺는다. 조씨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마지막 문장을 미리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소설집 제목은 조씨 소설의 제목에서 따왔다.  
 간담회에는 김이설·최정화씨도 함께 했다. 세 여성 작가의 '페미니즘 토크'를 정리했다. 
 
김이설 작가. 교육현장의 편견을 고발한 단편 '경년'을 소설집에 보탰다.

김이설 작가. 교육현장의 편견을 고발한 단편 '경년'을 소설집에 보탰다.

 
-각자 작품 소개를 한다면.  

▶김이설(이하 김)=내 소설 '경년(更年)'은 '갱년기(更年期)'의 '갱년'과 한자가 같다. 아들과 딸을 키우는 40대 여성, 늙어가는 기로에 서서 사춘기 자녀를 바라보는 세대가, 이전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여성의 목소리, 들리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 페미니즘 이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조남주(이하 조)='현남 오빠에게'는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여성의 편지글 형식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교정하려 하고, 그에 의해 교정 당하는 관계는 꼭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에 해당하는 상황인데, 상황 조작을 통해 상대의 자아를 흔들어서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현상을 뜻한다. 그런 현실을 소설에 그렸다.

▶최정화(이하 최)='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여성 소설가로서 페미니즘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순과 괴로움에 시달리는 내 모습이 담긴 작품이다. 이렇게 뜨거운 화두를 다룬 소설집에 참가한 건 처음이다. 설레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단편 '현남 오빠에게'를 보탠 조남주씨. 상황을 조작해 상대를 흔들어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심리학 개념인 '가스라이팅' 상황을 소설에 그렸다.

단편 '현남 오빠에게'를 보탠 조남주씨. 상황을 조작해 상대를 흔들어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심리학 개념인 '가스라이팅' 상황을 소설에 그렸다.

-민감한 주제다 보니 소설 쓰는 과정이 조금 달랐을 것 같다.  
▶최=처음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는 기뻐서 하겠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작품을 쓰다 보니 부담이 컸다. 소설을 쓰면 대개 작가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내 안의 여성을 억압하는 생각, 여성 혐오가 드러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여성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지금 내 모습, 여성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질문하는 형태가 됐다. 여성들이 자신을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조=방송사 작가 시절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취재한 적이 있다. 중학생 딸을 둔 분이었는데 사회적으로도 일정한 위치에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결혼 초기부터 딸과 함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경우였다. 나는 당시 23살이었다. 그런 피해자는 왜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오래 품게 됐다. 피해 상황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김=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 두 딸을 키우면서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던 차에 소설 청탁을 받았다. 아래 세대에게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하나,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소설을 썼다. 선동하는 전사의 역할을 한 게 아니고, 같이 손잡고 있다, 당신만 겪는 게 아니라 우리도 겪는다, 그런 목소리를 낸 거다. 누군가에게는 불편,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으니…. 한국 여성들이 어떤 일들을 겪는지 귀 기울여 주십시오, 하는 의미다. 
 
여성 안의 여성 혐오를 댜룬 소설 '모든 것을 제자리에'를 쓴 최정화씨.

여성 안의 여성 혐오를 댜룬 소설 '모든 것을 제자리에'를 쓴 최정화씨.

 
-소설집에 실린 다른 작가 작품은 어땠나. 
▶김=최정화 작가의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내 소설이 내 눈에 비친 세상, 일상에서 벌어진 일에 국한됐다면 최정화 작가의 작품은 이야기를 이렇게 확장할 수도 있겠구나, 그럼 이건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7편 모두 각자의 색깔이 잘 드러나 풍성한 문학작품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조=출판사에서 주제나 소재를 조율하지 않았는데도 7편의 소재나 스타일이 너무 달라 독자로서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김이설 작가의 작품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다르게 대하는 사회적 편견에 관한 지금 내 고민과 비슷해 굉장히 몰입해 읽었다. 최정화 작가의 작품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갖게 된 남성 위주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을 의식할 때 느끼는 두려움, 페미니즘을 말하는 나는 모든 면에서 좀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부담감, 이런 고민이 내 고민과 내용이 같아 크게 동의하며 읽었다. 
▶최=김이설·조남주 두 작가의 소설은 현실 세계를 카메라로 담듯 리얼하게 그려 공감이 컸다. 소설 속 현실은 부조리극처럼 느껴진다. '현남 오빠에게'의 화자가 10년간 남자친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점은 미스터리고 부조리인데, 돌이켜 보면 그게 나 자신의 모습이어서 스스로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경년'은 명절 때 뵙는 아버지, 어머니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을 다시 보게 됐다. 
 
 
 『현남 오빠에게』소설집 표지.

『현남 오빠에게』소설집 표지.

-메시지가 강조되면 문학성이 떨어질 수 있다. 
▶김=쓰는 내내 고민했다. 르포가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에 문장 하나라도 소설적 문장을 구사하려고 했다. 페미니즘 소설이지만 그래도 소설에 방점을 찍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다. 어쩌면 이런 주제로 소설 써주십시오, 하는 것 자체가 문학 본령과는 거리가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페미니즘 문제가 북핵에 맞먹는 심각한 문제다 보니…. 

▶조=처음부터 하고 싶은 얘기 전달과 문학적 완성도, 둘 다 챙기지는 못하리라는 주제 파악이 있었다. 결국 얘기 전달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 촌스러운 얘기가 되겠지만 자신 있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최=다른 작품을 쓸 때보다 오히려 만족도가 높았다.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는 소설을 쓸 때 오히려 작품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학은 특별한 게 아니라 결국 발언의 한 형태다. 앞으로 주제가 잘 전달되는 탄탄한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13일 『현남 오빠에게』 기자간담회 장면.

13일 『현남 오빠에게』 기자간담회 장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나. 
▶최=내 소설집 나왔을 때보다 이번 소설집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조=작품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표지에 인쇄된 책에 달릴 악플과 비판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밤새 마음 졸이며 소설을 쓰고 있을 여섯 명의 작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나 혼자 이러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배에 올라탄 다른 작가들도 어디선가 잠못 이루고 있겠구나. 전부 처음 보는 분들인데, 이번 소설집을 통해 좋은 작가들을 만난 것 같아 뜻깊다. 
▶김=소설집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남자들과 싸우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좋겠다.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책이 있을까.  

▶김=남편이, 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자신이 나쁜 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실은 나 자신도 과연 페미니즘적 인간인가 고민이 많다.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건 작가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다수의 목소리에서 정답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조=교육 정책이나 성폭력 문제를 관련 분야 전문가가 맡아야 하듯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다. 여성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소설을 쓰는 것까지가 내 역할이다.  
▶최=페미니즘 교육이 시급하다. 여성조차 스스로가 처한 불평등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모르는 실정이다. 현재의 가족제도나 사회제도 아닌 대안적 삶, 그 삶이 가능한 사회적 조건 또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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