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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윤이상 기념관 7년만에 제 이름 찾은 사연은?

윤이상 기념관에 걸려 있는 윤이상 선생의 사진.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에 걸려 있는 윤이상 선생의 사진. 위성욱 기자

최근 윤이상 기념관으로 이름을 바꾼 도천테마파크 모습. 위성욱 기자

최근 윤이상 기념관으로 이름을 바꾼 도천테마파크 모습. 위성욱 기자

지난 3일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이름을 딴 기념관이 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 도천동에 새로 문을 열었다. 7년 전인 2010년에 윤이상을 기리는 기념관이 같은 자리에 들어섰으나 그동안 ‘도천테마파크’로 불리다 이번에 제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통영시는 2010년 윤이상 선생의 생가가 있던 도천동 인근에 그를 기리는 기념관을 지었으나 대신 ‘도천테마파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 시절이어서 친북 논란을 빚는 윤이상의 이름을 건 기념관을 세우기가 쉽지 않아서다. 통영시 관계자는 “당시 윤이상 기념관으로 추진하면 국비와 도비를 지원받지 못할 분위기여서 도천테마파크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도천테마파크에서 윤이상 기념관으로 바뀐 지 표지석이 건물 앞에 새로 세워졌다. 기념관 이중도 팀장이 표지석 설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도천테마파크에서 윤이상 기념관으로 바뀐 지 표지석이 건물 앞에 새로 세워졌다. 기념관 이중도 팀장이 표지석 설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윤이상 선생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7년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생전에 고향인 통영 땅을 밟지 못한 채 이국에서 눈을 감았다. 이 과정에 윤이상 부부가 수차례 방북했고, 김일성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친북 행동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재독 간호사였던 ‘통영의 딸’ 신숙자(1942년생)씨와 경제학도였던 남편 오길남(75)씨 가족의 월북을 윤이상이 권유했다는 오씨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도천테마파크가 윤이상 기념관으로 이름을 바꾸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이후 최근까지 도천테마파크는 실제로는 윤이상 선생을 기리는 장소인데도 도천테마파크로 불렸다. 
윤이상 기념관 외부 벽면에 걸려 있는 윤이상 선생 관련 사진 자료들.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외부 벽면에 걸려 있는 윤이상 선생 관련 사진 자료들. 위성욱 기자

 
지난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화의 기류가 나타났다. 7월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문 대통령을 동행했다가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된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면서다. 특히 김 여사가 고인의 고향인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받아와 공군 1호기로 독일까지 수송해 윤이상 선생의 묘소 옆에 심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이상 선생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김정숙 여사는 지난 7월 5일 독일 베를린 가토 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 묘소를 찾아 윤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었다. 김성룡 기자

김정숙 여사는 지난 7월 5일 독일 베를린 가토 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 묘소를 찾아 윤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었다. 김성룡 기자

 
이후 지난 8월 통영국제음악제 시민서포터즈인 ‘황금파도’가 도천테마파크 명칭 변경을 시의회에 건의하고 시의회가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그 결과 통영시는 지난 3일 도천테마파크의 명칭을 윤이상 기념관으로 바꾸는 행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김동진 통영시장은 "이곳은 도천테마파크였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윤이상 기념관으로 다시 재탄생하게 됐다.
 
 긴 세월 동안 윤이상을 윤이상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윤이상 이름의 문패가 걸린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2002년 윤이상 기념관을 처음 구상한 김 시장은 2011년 10월 윤이상 국제 콩쿠르,  2012년 윤이상 합창제 등 각종 윤이상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국정원 사찰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윤이상 기념관 입구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흉상.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입구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흉상.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내부 모습.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내부 모습.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내부에 있는 친필 악보들.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내부에 있는 친필 악보들. 위성욱 기자

 
이번에 윤이상 기념관은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리모델링하면서 내부도 밝아지고 자료도 더 풍성해졌다. 기념관 2층에는 윤이상 선생의 출생(1917년 9월 17일)과 프랑스·독일 유학 생활, 
그리고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비운의 생애가 각종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1959년 세계 무대에 자신의 작곡 능력을 처음으로 알린 실내악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나 오페라 ‘심청’ 등의 친필악보, 윤이상 선생이 직접 연주했던 첼로와 바이올린도 전시돼 있다. 
 
이중도(47) 윤이상 기념관 팀장은 “윤이상 선생은 동서양의 조화를 추구하며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을 만큼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다”며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수많은 제자도 길렀는데 이분들이 지금 국내는 물론 일본과 대만 등에서 음악계의 중요한 위치로 성장해 있다”고 말했다.  
윤이상 선생이 직접 사용한 바이올린. 위성욱 기자

윤이상 선생이 직접 사용한 바이올린. 위성욱 기자

윤이상 선생이 직접 연주한 첼로. 위성욱 기자

윤이상 선생이 직접 연주한 첼로. 위성욱 기자

 
특히 기념관 재개관에 맞춰 윤이상 선생이 베를린에서 생활하던 집을 축소해 재연해 놓은 ‘베를린 하우스’도 새로 꾸몄다. 이 집에는 윤이상 선생이 베를린에서 직접 사용한 피아노를 비롯해 책걸상·소파 등 가재도구가 실제 모습 그대로 옮겨져 있다. 윤 선생의 딸 윤정(66)씨가 기억을 더듬어 재연해 놓았다. 
윤이상 선생이 독일에서 생활한 주택을 축소 재현한 베를린 하우스. 위성욱 기자

윤이상 선생이 독일에서 생활한 주택을 축소 재현한 베를린 하우스. 위성욱 기자

베를린 하우스 내부. 윤이상 선생이 실제 머물던 서재와 사용하던 각종 책과 악보 등을 실물 그대로 볼 수 있다. 위성욱 기자

베를린 하우스 내부. 윤이상 선생이 실제 머물던 서재와 사용하던 각종 책과 악보 등을 실물 그대로 볼 수 있다.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김선경 해설사가 윤이상 선생이 사용하던 피아노로 연주를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김선경 해설사가 윤이상 선생이 사용하던 피아노로 연주를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통영시는 기념관에 이어 앞으로 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통영으로 모셔오는 사업을 올해 안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이 팀장은 “윤이상 선생은 1973년, 1981년, 2006년 3차례에 걸쳐 정부의 초청 등을 받아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등 각종 사회문제가 생기면서 번번이 무산됐다”며 “생전에 가족들에게 30분 단위로 통영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집 내부에 통영 사진을 걸어놓고, 돌아가실 때도 ‘내 고향 통영’, ‘내 고향 통영’이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하셨다”고 말했다.  
윤이상 기념관 외벽에 걸린 통영항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 이 사진은 윤이상 선생이 베를린 자택 침실 벽에 걸어 두고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외벽에 걸린 통영항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 이 사진은 윤이상 선생이 베를린 자택 침실 벽에 걸어 두고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위성욱 기자

 
김동진 통영시장은 “윤이상 기념관은 세계 현대음악의 산실이면서 통영 문화 관광의 자랑스러운 거점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통영으로 모셔오게 되면 산양읍에 있는 박경리 묘소와 함께 통영이 문학과 음악의 성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영=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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