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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B-2 폭격기 1940년대 개발돼

기자
남도현 사진 남도현
최초로 대중에게 모습을 보였을 당시의 B-2 전략폭격기. 생소한 외형에 많이 이들이 놀랐으나 전익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된 형태다. [사진 wikipedia]

최초로 대중에게 모습을 보였을 당시의 B-2 전략폭격기. 생소한 외형에 많이 이들이 놀랐으나 전익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된 형태다. [사진 wikipedia]

생각보다 오래된 것

개발 기간 동안 스텔스 성능을 보유한 최고 성능의 전략 폭격기라고 소문이 자자하던 B-2가 1988년 11월 22일,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SF 영화 속에서나 보아왔던 UFO처럼, 주익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듯한 B-2의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비행기라면 의례히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철저히 무시한 전익기(Flying wing)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익기가 혁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네모난 연에서 알 수 있듯이 의외로 오래 된 형태의 비행체다. 단순히 생각하여 비행기가 날도록 만드는 것은 동체가 아니라 날개다. 그래서 비행기 개발 초창기에는 비행이 가능한 모양이라면 모든 것이 고려 대상이었고 그중에는 당연히 전익기도 있었다. 전익기는 기체 전체로 양력을 얻으므로 쉽게 떠오르고 장시간 체공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1940년 7월 3일 비행에 성공한 N-1M. 최초의 전익기는 아니었으나 이때 축적된 기술은 B-2까지 이어졌다. [사진 wikipedia]

1940년 7월 3일 비행에 성공한 N-1M. 최초의 전익기는 아니었으나 이때 축적된 기술은 B-2까지 이어졌다. [사진 wikipedia]

오늘날 세계적 방산 업체인 노스럽 그러먼(Northrop Grumman Corporation)의 전신 중 하나인 노스럽의 창업자 잭 노스럽(Jack Northrop)은 전익기의 장점을 일찌감치 깨닫고 개발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1929년에 만든 X-216H 실험기는 자세 제어용 미익이 달려있어서 완벽한 전익기로 볼 수 없지만, 이렇게 터득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1941년 7월 3일 완벽한 전익기인 N-1M 비행에 성공했을 만큼 그는 시대를 선도했다.

잭 노스럽은 전익기가 급격한 기동을 요하는 전투기 같은 소형기보다 탑재량이 많은 장거리 대형기에 적합한 구조임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즈음 미 육군 항공대(현 공군)는 10,000파운드의 폭탄을 탑재하고 10,000마일을 비행할 수 있는 차세대 폭격기의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노스럽은 전익기 형태의 폭격기를 당국에 제안했고 이것이 눈길을 끌어 1941년 11월 XB-35의 개발을 승인받았다.


평생의 집념

잭 노스럽은 실험을 위해 크기를 1/3로 축소한 N-9M 제작을 시작으로 본격 개발에 나서 1946년 XB-35 제작을 완료했다. 실험용으로 총 15기가 제작되었으나 경쟁에서 B-36에 패했고 2기가 제트 엔진을 장착한 YB-49로 개조되어 1947년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 비행이 불안정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고 1기가 추락하는 사고까지 당한 후 YB-49 개발은 1950년 완전히 취소되었다.

1948년 7월 5일 에드워드 공군 기지 상공에서 실험 비행 중인 YB-49. 비록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70여 년 전의 사진이라 보기 힘들 정도다. [사진 wikipedia]

1948년 7월 5일 에드워드 공군 기지 상공에서 실험 비행 중인 YB-49. 비록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70여 년 전의 사진이라 보기 힘들 정도다.
[사진 wikipedia]

단지 하늘에 떠있는 연과 달리 비행기는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자세 제어가 어렵다는 것은 실용화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고 이로 인해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경영에서 물러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컴퓨터, 플라이 바이 와이어를 비롯한 각종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YB-49 실험을 통해 전익기가 스텔스 구현에 적합한 형상임을 알게 되었던 점도 부활할 수 있었던 단초였다. 1970년대 말 미국이 차세대 폭격기 개발을 시작하자 전익기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노하우를 보유한 노스럽이 계약자가 된 것은 당연했다. 1980년 개발팀이 잭 노스럽을 찾아가 당신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며 B-2 모형을 선물로 주자 그는 “왜 신이 나를 25년 더 살게 했는지 오늘 알게 되었다”며 감격해 했다.
 
이처럼 B-2는 수많은 실패의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이 있었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산 무기 개발 과정을 보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으로 닦달하고 실패하면 문책만 하려는 경향이 심하다. 비리는 당연히 발본색원해야 하지만 연구나 개발 중 발생하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좋은 무기의 탄생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전익기에 일생을 바친 잭 노스럽에게서 배워야 할 부분이 어떤 것인지는 확실하다.

남도현 군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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