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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yes or no]⑤귀엽거나 누구에겐 촌스럽거나, 베레모

계절마다 새로운 유행이 나타난다. 하지만 요즘 대중은 멋쟁이들의 앞서가는 스타일에 무조건 혹하는 건 아니다. ‘트렌드 Yes or No’는 트렌드를 대중적 눈높이에서 판단하는 코너다. 떠오르는 트렌드 중 호불호가 갈릴 만한 옷ㆍ액서사리ㆍ스타일링 등을 대상으로 삼는다. 당신의 취향은 어느 쪽인가. 이번엔 납작한 빵 모양의 모자 ‘베레모(Beret)’다. 
지난 2017년 4월 디올이 파리 패션위크에 선보인 2017 가을겨울 컬렉션 쇼 현장. 런웨이에 선 모든 모델들이 머리에 검정색 가죽 베레모를 쓰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7년 4월 디올이 파리 패션위크에 선보인 2017 가을겨울 컬렉션 쇼 현장. 런웨이에 선 모든 모델들이 머리에 검정색 가죽 베레모를 쓰고 있다. [중앙포토]

유행은 돌고 돈다 이번엔 빵모자
최근 거리에서 베레모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지난해 겨울만해도 페도라와 챙 넓은 플로피 햇을 구해 쓰느라 바빴는데 2017년 겨울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마자 베레모가 ‘올해의 모자’로 등장했다.  
베레모는 챙 없는 둥근 모자다. 모양이 빵과 비슷하다고 해서 ‘빵모자’란 애칭으로도 불린다. 원래는 16세기 프랑스 국경지대 바스크 지방의 농부들이 쓰던 것인데, 지금은 프랑스 사람들을 시각화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표적인 상징물이 됐다.
세계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머나먼 다리'(1977)에서 영국 공수부대 소장 역을 연기한 숀 코네리의 모습. [중앙포토]

세계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머나먼 다리'(1977)에서 영국 공수부대 소장 역을 연기한 숀 코네리의 모습. [중앙포토]

국내에는 주로 여성용 모자로 쓰이지만 사실 베레모는 군인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20세기 들어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의 군인용 모자로 널리 퍼졌다. 미국 육군 특전사를 일컫는 ’그린 베레(Green Beret)‘란 이름도 녹색 베레모를 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혁명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체 게베라 역시 베레모 쓴 사진으로 유명하다. 
1968년 개봉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포스터. 여주인공 보니 역의 페이 더나웨이가 쓴 베레모와 V네크라인 스웨터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앙포토]

1968년 개봉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포스터. 여주인공 보니 역의 페이 더나웨이가 쓴 베레모와 V네크라인 스웨터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앙포토]

패션업계에서는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1920년대 영국 선원이 쓰던 걸 차용해 여성용 모자로 만들면서 등장했다. 이후엔 1960년대 말 미국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여주인공 보니 역으로 나온 페이 더나웨이가 베레모를 쓰고 나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페이 더나웨이가 입은 V네크라인 스웨터와 무릎길이의 미디 스커트, 여기에 베레모는 아예 ’보니룩‘이라고 불리며 사랑 받았다. 한국 패션계 역시 이 영향을 받아 70년대에 베레모가 유행했지만 이후 촌티 나는 패션으로 여겨지며 점차 거리에서 사라졌다. 
   
럭셔리 브랜드부터 셀럽까지
2015년 겨울에 있었던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구찌가 선보인 2016 봄여름 시즌 컬렉션 쇼. 손뜨개, 모직 등 소재로 만든 베레모를 쓰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의 모습이 눈에 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2015년 겨울에 있었던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구찌가 선보인 2016 봄여름 시즌 컬렉션 쇼. 손뜨개, 모직 등 소재로 만든 베레모를 쓰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의 모습이 눈에 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사라졌던 베레모가 부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건 2015년 말부터다. 시작점은 최근 모든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구찌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밀라노패션위크 2016년 봄여름 컬렉션 당시 컬러풀한 블라우스와 스커트, 꽃무늬 원피스 등 프랑스 소녀를 연상하게 하는 사랑스러운 느낌의 옷을 선보였다. 이때 모델의 머리에 얹어져 있던 게 손뜨개나 모직으로 만든 베레모였다. 구찌 쇼에 등장한 베레모는 WWD나 보그, 리파이너리29 등 많은 패션 매체들의 '올해의 패션 아이템'으로 꼽혔다. 하지만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주로 어떻게 하면 베레모를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기사들이 주를 이뤘으니 말이다.
지난 3월 파리 패션위크에 나타난 가수 리한나의 모습. [중앙포토]

지난 3월 파리 패션위크에 나타난 가수 리한나의 모습. [중앙포토]

2017년 3월 파리패션위크 기간의 벨라 하디드의 모습. [사진 핀터레스트]

2017년 3월 파리패션위크 기간의 벨라 하디드의 모습. [사진 핀터레스트]

하지만 2017년 겨울 베레모는 확실히 트렌드의 정점에 섰다. 지난 3월 파리패션위크에선 가수 리한나, 모델 켄달 제너, 벨라 하디드, 카라 델레바인 등 내로라하는 패셔니스타들이 모두 베레모 패션을 선보였다. 디올은 아예 컬렉션 쇼 런웨이에 선 68명의 모델 모두의 머리에 검정색 가죽 베레모를 씌웠다. 영국 텔레그라프는 10월 8일 ’왜 모든 사람들이 이번 겨울엔 프랑스 소녀의 액세서리 베레모를 쓸까‘란 제목의 기사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번 겨울에는 펠트나 레더, 기모가 있는 천으로 만든 베레모를 착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인스타그램 스타'로 불리는 배우 기은세의 베레모 착용 모습. [사진 기은세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스타'로 불리는 배우 기은세의 베레모 착용 모습. [사진 기은세 인스타그램]

지난 10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베레모 착용 사진을 올린 아이유. 77만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사진 아이유 인스타그램]

지난 10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베레모 착용 사진을 올린 아이유. 77만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사진 아이유 인스타그램]

국내 스타들 역시 베레모와 사랑에 빠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패셔니스타로 손 꼽히는 배우 기은세, 방송인 김나영, 인플루언서 아이린은 물론이고 최근엔 가수 아이유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베레모 쓴 사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국내외 스타들의 베레모 패션은 자연스레 일반인들에게도 번져 인스타에는 베레모 관련 게시물만 4만5000건에 달한다.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아해
부활에 성공한 베레모, 일반인들의 시각은 어떨까. SM 컨텐츠&커뮤니케이션즈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이용해 20~50대 성인 남녀 542명(남자 200명, 여자 342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물었다. 
일단 호감을 나타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542명 중 52%(281명)가 ‘좋아 보인다’라고 대답했다. '좋지 않아 보인다’라고 답한 사람은 18%(91명)에 그쳤다. 나머지 31%(170명)은 ‘잘 모르겠다’란 유보적 입장을 나타났다. 세대별로는 동일 세대 응답자 비율로 볼 때 호감도가 비슷했다. 20대에서는 48%, 30·40대는 52%씩으로 같았다. 
흥미로운 건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호감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여자 응답자 중 50%(173명)가 호감을 나타낸 반면, 남자 응답자는 54%(108명)가 호감을 나타내, 조금이나마 여자보다 남자가 베레모에 더 호감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감의 이유는 성별과 세대를 막론하고 ‘귀엽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귀엽고 발랄해 보인다’ ‘귀여운 복고풍’ 등이었고 ‘예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향수 코드와 ‘분위기 있어 보인다’ ‘센스 있어 보인다’ 등의 이미지 연출, ‘머리를 따로 손질하지 않아도 예쁘게 연출할 수 있어서’란 기능적인 측면에 대한 소수 의견이 있었다. 
비호감의 이유로는 대부분이 ‘촌스럽다’는 얘기를 했다. ‘아무나 어울리기 힘들다’거나 ‘스타일링이 힘들다’는 의견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40대 응답자인 김민지씨는 “베레모를 쓰고 아이 학부형 모임에 갔다가 남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 결국 중간에 벗었다”며 “과하게 꾸몄다는 이미지를 주고 촌스러워 보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직접 베레모를 써볼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3%(178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중 72명은 남자였다. 반면 앞서 베레모에 호감을 표시한 응답자 중에서도49%(139명)가 정작 직접 써 볼 생각은 없다고 답했는데, 이유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가 다수였다. 보기엔 좋지만 정작 어울리게 소화하긴 힘들다는 의미다.  
체크무늬 코트에 베레모를 매치한 디올 2017 가을겨울 컬렉션 착장. [사진 디올]

체크무늬 코트에 베레모를 매치한 디올 2017 가을겨울 컬렉션 착장. [사진 디올]

그렇다면 베레모를 잘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68개의 컬렉션 착장에 모두 베레모를 매치한 디올의 2017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무난하게는 짙은 남색이나 검정색 모직 코트나 수트에, 발랄한 느낌을 살리고 싶다면 밑단이 넓게 퍼지는 롱 스커트에 스웨터나 재킷을 입고 베레모를 쓰면 잘 어울린다. 여성스러운 느낌을 원한다면 벨벳이나 모직으로 된 맥시 드레스에 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최근에 유행하는 체크무늬 롱코트나 가죽 재킷은 가장 잘 어울리는 차림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너무 화려하거나 장식이 많은 옷은 입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는 “베레모 자체가 화려한 액세서리 역할을 하니 옷은 가장 클래식한 스타일을 연출하면 된다”고 팁을 전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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