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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선주의 맞서 중국식 세계화, 일대일로 힘 쏟는다

[전문가 분석] 집권 2기 여는 시진핑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로 다시 선출된 시진핑 국가주석이 25일 인민대회당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로 다시 선출된 시진핑 국가주석이 25일 인민대회당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5일 중국의 새 지도부가 구성되면서 시진핑(習近平) 2기가 출범했다.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대) 중앙위원회에서 총서기로 다시 선출된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물갈이됐다.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 왕양(汪洋) 부총리, 왕후닝(王滬寧)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자오러지(趙樂際) 중앙 조직부장, 한정(韓正) 상하이(上海)시 당서기가 새로 상무위원에 진입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5일 상무위원 6명이 배석한 가운데 내외신 기자회견을 했다. 그 자리에서 시 주석은 2018년은 개혁·개방 40주년, 2019년은 건국 70주년, 2020년은 소강(小康)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해, 2021년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라며 향후 5년 집권 2기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19대의 주제는 “초심을 잃지 말고 사명을 견지하자(不忘初心 牢記使命)”는 것이었다. 즉 오늘날 중국의 성취는 1921년 53명의 당원으로 중국공산당을 만들고 국공내전을 통해 국가를 건설한 것에 있으며, 그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은 새로운 시대정신인 ‘창치라이(强起來)’를 초심에 접목시켰다. 이것은 서방과 제도·담론·체제·이념 경쟁의 서막을 여는 것이기도 했다. 당장(黨章)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이라는 긴 이름을 삽입하고, 여기에 새로운 100년을 향한 역사적 임무를 부여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정치 담론 능력 뛰어난 왕후닝 발탁
그러나 이는 지난한 작업이 될 것이다. 왕후닝 당 중앙정책실 주임을 상무위원에 발탁한 것도 이러한 심모원려가 깔려 있었다. 그는 30대 푸단(復旦)대 정치학 교수 시절부터 중국식 정치 발전의 이론을 만들었고 이후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 3대에 걸쳐 수많은 정치담론을 생산하고 이를 정책화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이번 19대의 원대한 설계도 그의 손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19대 청사진은 다음과 같은 얼개를 가지고 있다.
 
첫째, 중국의 존재방식이다. 중국공산당의 노선 투쟁 역사는 중국 사회의 주요한 모순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둘러싸고 나타났다.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차이를 주요 모순으로 보고 계급 투쟁을 선택했고, 그것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류를 만들기도 했다. 한편 덩샤오핑(鄧小平)은 주요 모순이 인민의 물질문화의 수요와 낙후된 생산력 사이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오랫동안 개혁·개방 노선의 근거로 삼았다. 19대에서는 “인민의 날로 늘어가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하고 불충분한 발전의 차이”로 다시 주요 모순을 변경했다. 이것은 중국의 부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공동부유(共富)라는 사회주의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개발도상국의 정체성을 버리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둘째, 외교전략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널리 사용한 신형대국관계 대신 신형국제관계를 제시했다. 이것은 중국이 서구의 철학과 힘으로 운용됐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규범을 만들고 제도를 설계하면서 기울어진 국제관계를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세계화의 덫에 빠진 아프리카와 저개발국 등 제3세계를 적극 찾아 중국 모델을 수출하겠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역(逆)세계화에 맞서 묵자의 정의(義)와 이익(利)의 철학을 바탕으로 인류 운명공동체를 제의했다. 이러한 복잡한 외교적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대표적 미국통인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이례적으로 정치국원으로 승진 발탁했다.
 
셋째, 기득이익(vested interest)을 혁파하기 위해 당의 역할을 강화했다. 시진핑은 관료와 결탁한 권귀(權貴) 집단이 국정을 농단해 왔다고 보고, 지방 지도자들을 수시로 교체했고 부패와의 전쟁을 지속해 왔으며 이를 통해 밑으로부터의 국민 지지를 얻고자 했다. 19대에서도 국민에게 지속 가능한 성취감·행복감·안정감을 맛보게 하겠다고 밝히면서 “집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짓는 것이지 투기하기 위해 짓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토지 도급기간도 만료 후 30년을 재연장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구체적으로 민심현장을 파고들었다. 이것은 관료사회와 인민사회를 분리하면서 집권기반을 강화하는 한편 주요 요직에 내 편을 앉히고 잠재적 경쟁자를 멀리 보내는 방식으로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데 따른 저항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군에 대해 절대적 지휘 원칙 특히 강조
그리고 시진핑은 ‘쇠를 벼리려면 망치가 단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가에 대한 당의 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강력한 국방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군의 저항을 막기 위해 군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지휘해야 한다는 원칙을 특별히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당의 역할 강화는 기존의 당정 분리를 통한 정치 개혁의 길, 서구 민주주의를 선택으로 수용하는 대신 거버넌스 혁신을 통해 집권기반을 강화하고 중국식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19대에서 ‘전면의법치국(依法治國)영도소조’를 구성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넷째, 중국식 세계화를 선보였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최대 시장이 됐고 소비 주도형 경제로 패러다임도 변했다. 특히 기업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내적으로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한 개혁, 대외적으로는 전면적 대외 개방을 통해 제4차 산업혁명의 불확실성을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인터넷·빅데이터·인공지능과 실물경제의 융합을 추진하는 한편 혁신·저탄소·친환경·공유경제·공급망·인적 자원 분야를 새로운 성장점으로 육성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또 전면적인 대외 개방을 통해 국제 협력의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미국 우선주의’에 맞서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차원에서 ‘중국의 지혜’가 반영된 다자협력도 적극적으로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시진핑 정책 브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도 다시 추진력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엘리트 충원제의 변화다. 19대 인사에 대해 그동안 잠정 규칙으로 확립한 후계자 인선과 집단지도체제의 전통이 무너지면서 정치 제도화가 후퇴했다는 평가가 등장했다. 그러나 기존 관례를 활용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막고자 한 고심의 흔적도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 인사만 해도 68세는 퇴임하고 67세는 진입하는, 이른바 7상8하(7上8下) 관례는 유지됐고, 전 세대가 다음 세대 후계자를 지명하는 격대지정(隔代指定) 구도도 흔들리기는 했지만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다. 6세대 선두주자인 광둥(廣東)성 당서기 후춘화(胡春華), 새롭게 후계자 그룹에 진입한 충칭(重慶)시 당서기 천민얼(陳敏爾)이 비록 상무위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정치국원으로서 차기 경쟁구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틀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벌정치의 맥락에서도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은 상하이방·태자당·공산주의청년단파가 형식적인 균형을 찾았다. 또한 시진핑이 권력 분산을 막고 장기집권의 길을 활짝 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향후 시진핑 5년의 업적과 평가를 통해 차기 지도부가 결정되는 현능주의(meritocracy)가 작동할 여지는 남아 있기 때문에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 시진핑이 권력 분산을 최대한 억제해 조기 레임덕을 막고 역사적 과제를 추진한 뒤 이를 물려주는 장치가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도자는 반드시 교체된다, 당은 지도자의 이념을 따른다, 중국 전체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한다는 원칙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시기만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시진핑 2기 체제의 출범은 우리에게도 위기와 기회, 도전과 적응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 19대에서 “하나의 산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정책 노선도 중국식 질서, 중국적 가치, 중국적 방안이 강력하게 투사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중국과의 협상에서 관료집단보다 지도자의 의중이 중시될 가능성이 커졌고 최고위급 대화가 훨씬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 관계도 양자 관계가 아니라 지역과 국제 질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면서 선택의 난도를 높일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핵심 이익을 명확하게 하면서 한국적 국가 전략의 방향과 한국적 방안에 대한 신호를 어떻게 발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더욱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성균중국연구소장
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지냈고 워싱턴대·중국해양대·나고야대 등에서 강의했다. 중국 정치 변동에 대한 저서와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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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