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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임제 대통령은 외발자전거 타고 달리는 점(點)의 관리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인터뷰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재단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재단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5년 단임제 대통령은 외발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점(點)의 관리자.”
최근의 대통령들에 대한 정덕구(69) 니어(NEAR)재단 이사장의 평가다. 경제의 두 구성 요소인 ‘노동’과 ‘자본’ 중 한 쪽에만 치우친 정책을 펴고 있으며, 개별 정책들도 상호 간의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최근의 대통령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평가다. ‘5년 단임제’가 정착된 이후의 거의 모든 대통령과 정권이 비슷한 우를 범해왔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정 이사장은 “정치권이 진영 대립을 뛰어넘어 ‘경제 생태계’를 복원시키지 않는다면 누가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경제 생태계의 복원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경제 생태계에 대한 3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단행본 출간과 관련 정책 세미나(24일)를 앞둔 정 이사장과 마주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제 생태계’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자연 생태계는 생산자·소비자·분해자가 존재하면서 끝없이 생성→성장→소멸→진화의 과정을 반복한다. 경제도 기업 등의 생산자, 가계 등의 소비자, 금융기관과 정부 등의 분해자가 존재하면서 순환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해 경제 생태계라는 용어를 붙였다. 

물론 ‘정치 생태계’, ‘사회 생태계’ 등도 별도로 존재하면서 ‘경제 생태계’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한국경제는 잠재성장률 하락과 장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저성장의 근본적 원인을 경제 생태계에서 찾아야 한다. 경제 부문이 상호 연결돼 있어 어느 한 부문의 문제만 해결한다고 근본적 원인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인터뷰가 19일 서울 여의도 윈창빌딩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인터뷰가 19일 서울 여의도 윈창빌딩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한국의 경제 생태계는 어떤 상태인가.
“생태계 순환체계가 이미 끊어졌다. 가계·기업·정부가 어우러져 서로 연결고리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예전에는 기업이 성장하면 고용이 늘고 임금이 올라 가계가 부유해지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제는 생산성 향상 없는 임금상승→기업의 투자 감소 및 설비 자동화→고용 감축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산업 다양화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진화 기회를 상실한 상태에서 기존 제조업 중심 체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가계와 기업을 연결하는 ‘방앗간 피댓줄’ 같은 게 끊어졌다. 생태계 교란의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금융기관도 분해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 죽어야 할 기업들이 좀비 기업으로 계속 살아남게 됐다. 이렇다 보니 새로운 생성, 즉 창업이 안 되고 민간소비가 안 되고 기업의 가동률 제고 및 신규 투자가 안 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됐나.
“정치 생태계가 경제 생태계를 과도하게 침윤(浸潤)하고 있어서다. 박정희 시대에는 모든 것이 경제발전을 위해 존재했고, 경제가 정치의 상위 개념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후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정책되면서 정치가 경제의 상위 개념이 됐다. 집권 세력이 경제를 이용해 과거에 비해 약해진 권력 베이스를 강화하려 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자본과 노동 중 하나를 외면했다. 자본과 노동을 연결해 동시에 키우겠다는 정부가 하나도 없다. 표를 의식하다 보니 제 때 구조조정을 하지 못해 병리현상을 치료하지 못했다. 병든 상태로 오래 방치되면 결국 생태계 전체가 병들게 된다.”
 
자연 생태계와 경제 생태계의 비교

자연 생태계와 경제 생태계의 비교

생태계적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최저임금 인상은 의미가 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면 좀비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퇴출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올린 건 문제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 때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도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혁신성장의 경우 혁신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것 같다. 혁신은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옛 것을 밀어내 진행돼야지, 옛 것을 밀어내고 새 것을 만들려고 하면 생태계가 망가진다. 가장 아쉬운 건 역시 ‘외발자전거 경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자본에만 치우쳐 있었던데 반해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노동에만 치우쳐 있다. 

큰 생태계에 대한 고려 없이 개별 정책만 양산하려는 태도도 아쉽다. 튼튼한 한 대의 두발 자전거를 타야 하는데 외발 자전거 여러 대를 타고 있는 꼴이다. 점(點)에만 치중해 점들을 선(線)으로 연결하거나, 면(面)으로 확대하려는 모습이 안 보인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외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점의 관리자’ 같다. 물론 전직 대통령들도 마찬가지다. 

적폐 청산도 옛 정권의 잘못을 들추는데 머물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자리잡은 거대 기득권의 담합 구조를 깨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더 늦기 전에 자본과 노동을 한 배에 태우고 한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인터뷰가 19일 서울 여의도 윈창빌딩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인터뷰가 19일 서울 여의도 윈창빌딩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무너진 생태계는 어떻게 복원해야 할까. 개헌에 반영할 부분도 있을까.
“정치 생태계의 과도한 침윤부터 막아야 한다. 개헌을 통해 정치·경제·사회 생태계의 교집합을 최소화해야 한다. 권력구조를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바꿔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한을 약화하고 내각과 정부의 힘을 키워야 한다.

정당법과 선거법을 고쳐 국회의 생산성, 즉 법안의 통과나 폐기 속도를 높여야 한다. 정당 운영자금은 당원이 마련해야지, 왜 정부가 주나.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방 토착문화가 정치에 너무 많이 배어들게 해 국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인 만큼, 중대선거구제로 고쳐야 한다.”  
 
경제 생태계 문제점과 바람직한 변화 방향

경제 생태계 문제점과 바람직한 변화 방향

5년 단임제도 바꿔야 할까.
“잘 하는 대통령은 20년도 집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임제가 촉발시킨 단기주의(short-termism)를 없애야 한다. 경제 정책은 최소한 10년 앞을 내다보고 만들어야 한다. 10년 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서 만들어야 하는데 대통령 임기가 5년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불과 3년 뒤의 것도 챙기는 사람이 없다. 단임제는 계속성의 원칙을 훼손하고 예측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제도라 결코 좋다고 볼 수 없다. ”  
 
앞으로의 계획은.
“마침 한국 주류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경제학회도 ‘생태계 접근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구결과를 넘겨 주류 경제학자들도 생태계적 측면에서 한국 경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2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한국경제학회와 공동으로 생태계 관점에서 본 한국경제의 해법’ 세미나를 연다. 

11월 중순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인 ‘한국경제 생태계 보고서 초안’도 이날 발표된다. 2015년 이후 13인의 한국 대표 경제학자들과 함께 연구해 만든 소중한 결과물이다. 앞으로 범위를 더 넓혀 정치 생태계나 사회 생태계에 대한 심층 분석도 할 예정이며 끊어진 생태계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연구도 계속할 계획이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정덕구=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과 제2차관보,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17대 의원을 지낸 뒤 2007년 니어재단을 설립해 한국 경제 등에 대한 연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 중국 베이징대와 런민대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저서로는  『거대 중국과의 대화』, 「외환위기 징비록』,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기로에 선 북중관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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