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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담력』 덴코코의 평화 꿈 57개국 117개 인형에 고스란히

[장상인의 일본 탐구] 아마쿠사의 세계평화대사 인형관
세계평화대사 인형관의 내부 전경

세계평화대사 인형관의 내부 전경

“담력이 몸에 붙은 여성은 무서울 것이 없다.” 귀신 잡는 해병이나 차력사가 한 말이 아니다. 소노다 덴코코(園田天光光· 1919~2015)라는 여인이 펴낸 『여자는 담력』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일본 여인은 얌전하고 정숙하다’는 속설을 뒤집는 의외의 표현이다.
 
‘여자의 담력’, 가히 그녀다운 발상이다. 이름도 특이한 소노다 덴코코. 그녀는 누구인가. 일본의 인명 대사전을 빌어서 그의 이력을 더듬어 본다.
 
“메이지 유신의 지사(志士) 같은 혁명가가 되기 바란다.” 도쿄 출신 실업가 부친(松谷正一)은 딸의 이름을 ‘세상의 빛(光)이 되라’는 의미로 덴코(天光)로 지었단다. 그것도 모자라 ‘빛’자를 하나 더 붙여서 덴코코(天光光)로 늘렸다. 차녀의 이름은 덴호시마루(天星丸), 삼녀는 아마히토(天飛人). 모두가 우주와 세상을 아우르는 이름들이다.
 
 
아내 있는 남자와 결혼한 ‘괴물할머니’
『여자는 담력』을 펴낸 소노다 덴코코.

『여자는 담력』을 펴낸 소노다 덴코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도쿄여자대학을 거쳐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소노다 덴코코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정치가와 사회운동가의 길을 야무지게 걸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톡톡 튀는 행동도 있었다. 아내가 있는 소노다 스나오(園田直·1913 ~84)와 연애결혼을 해서 ‘불륜스캔들 의원’의 불명예를 안았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괴물할머니(?)’라는 별명을 달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담력을 무기로.
 
그녀가 국회의원이 된 것도 기적적이다. 패전 이듬해인 1946년에 실시된 보통 선거에서 28세의 소노다는 일본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지금과 같은 시민 운동단체인 ‘아사(餓死)방위동맹’으로 나선 무명후보였다. 그러나 국회에 들어가자마자 서민과 여성권리의 확대를 위한 투사가 돼 일약 유명 인사가 됐다. 그녀는 3기 8년 역임 의원을 내던지고, 정치인 남편의 아내로서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녀의 내조 때문일까. 남편 소노다 스나오는 관방장관, 후생대신, 외무대신 등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구마모토(熊本)현 남서부에 위치한 아마쿠사(天草)는 크고 작은 12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제도다. 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돌고래들의 유희(遊戱)를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일본 최대급 육식 공룡의 화석이 발견된 오랜 역사의 섬지방이기도 하다. 느림의 미학이런가. 필자를 태운 시외버스는 해안을 돌고 산을 넘으며 수없이 반복되는 소로를 정해진 속도로 달렸다. ‘자연과 문화로 육성된 섬’ 아마쿠사를 향해서.
 
아마쿠사에는 기독교 성직자 양성을 위해 약 420년 전 개교한 콜레지오가 있다. 이곳에 설치된 세계평화대사 인형관에는 소노다 덴코코의 업적과 안내문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1979년 ‘국제 아동의 해’ 당시 외무대신 소노다 스나오의 부인인 그녀는 ‘세계평화는 어린아이로부터’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각국 재일 대사 부인을 통해 평화대사 인형을 100개국에 기증하는 행사를 주도했다. 그후 많은 국가로부터 평화의 메시지와 함께 답례의 인형을 받아 ‘세계평화대사 인형관’을 세우는 일에 착수했다.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염원을 담은 프로젝트였다.
 
전 세계에 전달된 일본 어린이 인형.

전 세계에 전달된 일본 어린이 인형.

2006년에 ‘세계평화대사 인형관을 만드는 모임(이사장 소노다 덴코코)’이 결성됐고, 2010년에는 비영리법인이 설립됐다. 이 법인은 일본 전국을 돌면서 총 11회의 전시회와 강연회를 열어 4000여 명에 육박하는 지원자들을 확보했다. 아마쿠사시는 이들의 뜻을 적극 수용해 소노다 스나오 전 장관의 고향인 이곳에 세계평화대사 인형관을 만들었다.
 
콜레지오관(館)의 고자키 히로유키(小﨑弘幸·62) 관장은 필자를 2층 전시실로 안내했다. 60여 평쯤 되는 전시실에는 각기 다른 복장을 한 세계의 인형들이 형형색색 미소 짓고 있었다. 관장은 인형관의 역사를 길게 설명했다.
 
“이 인형들은 소노다 덴코코 여사의 컬렉션입니다. 이야기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는 미·일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걱정한 선교사 오라멜 귤리크가 1만2739개의 파란 눈의 인형을 일본에 기증했습니다. 그 인형들이 전국의 초등학교에 나누어졌고, 덴코코가 다니던 학교에도 배포됐다고 합니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인형이 적국(敵國)의 것으로 알려져 소각 처분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죄 없는 인형이 핍박을 받은 셈이죠. 그런 가운데 살아남은(?) 인형 중 덴코코가 3개를 빌려서 1978년 도쿄의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당시에 참가한 어느 어린이가 ‘어찌해서 일본과 미국의 국기밖에 없나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덴코코 여사가 ‘평화의 사자의 의미로 전 세계에 인형을 기증하리라’ 생각하고, 이듬해 세계 100개국 대사 부인들에게 일본의 전통 인형을 선물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발상이었다. 한 어린 아이의 질문을 흘려 버리지 않고, 세계를 향한 ‘평화의 이벤트’를 창출했으니 말이다. 고자키 관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57개국에서 답례로 받은 인형 117개가 이 인형들입니다. 각각의 인형은 그 나라의 민속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자국을 대표하는 평화의 대사들이지요. 우리는 2012년 이 인형들을 덴코코 여사로부터 기증받아 이렇게 전시장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문자해설 외에 스마트폰을 통한 음성 해설도 하고 있습니다. 벽면에 있는 터치 스크린 디스플레이는 인형 국가의 해설과 영상이 나옵니다. 또한 화면이 상하로 이동해 키가 작은 어린이나 휠체어 사용자도 취급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전시실은 단순히 인형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각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필자는 당연히 한국 인형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인형들은 한국의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다.
 
‘중앙의 남녀를 중심으로 혼례식 행렬을 이미지화 했습니다. 여성들이 화려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과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짧은 소개문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나의 행복만이 아닌 세계의 평화까지도. 고자키 관장은 “한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많이 찾는다”며 “한글판 안내 팸플릿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장은 “아직은 연간 몇 만 명이 이 전시관을 찾지만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며 “한국을 비롯해서 홍콩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했다.
 
 
외딴 섬에서 평화의 꿈 피어올라
직접 인쇄기를 작동해 인쇄를 하는 담당 직원. [사진 장상인]

직접 인쇄기를 작동해 인쇄를 하는 담당 직원. [사진 장상인]

콜레지오관은 겉으로는 콘셉트가 다른 것 같으나 공통점이 내재하고 있었다. 평화라는 키워드였다. 기독교 전래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도 세계 인류의 평화에 대한 바람이며, 전 세계에서 보내진 인형들도 바로 평화의 증거인 셈이다. 오랜 세월 아마쿠사의 DNA처럼 전해지고 있는 평화에 대한 생각을 하나로 모아 향토의 역사와 함께 평화를 위한 ‘배움의 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평화 학습의 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평화 공부방’을 구상하고 있었다. 나이와 국적 불문하고 여러 사람들의 평화 학습을 위해서다. 초·중·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종이학(鶴)을 접는 공간도 특별했다. 이 학이 천 마리가 되면 ‘평화의 사자’로서 나가사키나 히로시마에 기증할 생각이란다.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다.
 
구마모토시에서 2시간 40분을 느리게 달려서 다다를 수 있는 외딴 섬에서 ‘평화의 꿈이 피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평화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바람이 모여서 큰 결실을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도 여자이지만 소노다 덴코코는 대단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쿄 출신으로서 남편의 고향에 이토록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긴 것도 남다르지요.”
 
콜레지오관에 근무하는 하시구치 료코(橋口凉子·53)의 말이다. 하시쿠치는 소노다 덴코코의 저서 『여자의 담력』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자의 담력이라는 책을 읽고 정말 대담한 분이라는 것을 새삼 인식했습니다. 남편 소노다 스나오가 아마쿠사 출신이어서 유명하지만, 그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본인 자신의 업적 때문에 더 유명하지요.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필자는 고자키 관장과 하시쿠치에게 작별을 고(告)하고 세계평화대사 인형관을 떠나 ‘일본 석양 100선(選)’ 아마쿠사의 끝자락 시모다(下田)온천으로 향했다. 소문대로 아름다운 석양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저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데, 지구상의 인간들은 왜 전쟁과 테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태양을 둘러싼 구름들이 갖가지 인형을 그리면서 바람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소노다 덴코코 여사는 천국에서도 평화를 기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자키 히로유키 관장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아주 길게.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대우건설과 팬택에서 30여 년 동안 홍보 업무를 했으며 2008년 홍보컨설팅회사 JSI 파트너스를 창업했다. 폭넓은 일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엮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 『현해탄 파고(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장편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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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