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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이혼 부르는 명절의 역설

‘끊임없이 괴롭히는 시댁’ … 명절 다음 달 신청 5년 평균 15% 늘어
50대 가정주부 A씨는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남편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아들·딸의 권유에 어렵게 결정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A씨는 여행 첫날부터 후회하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도 말을 함부로 했던 남편은 여행지에서도 사사건건 욱하는 성미를 억누르지 못했다. 즐겁게 보내자고 온 여행인데 24시간 붙어 지내며 욕설과 폭언을 남발하는 모습에 스트레스만 커졌다. 직접 아버지의 폭언을 목격한 자녀들도 “더 이상 참지 마시라”고 조언했다. A씨는 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10일 서울 서초동 소재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해 이혼 상담을 받았다.
 
이처럼 명절 이후엔 어김없이 부부간 관계 파탄이란 후유증이 몰려온다. 14일 중앙SUNDAY가 대법원 ‘월별 이혼 접수 건수’(재판상 이혼과 협의 이혼 모두 포함, 2012년 1월~2017년 8월) 통계를 이용해 설·추석이 있는 달과 그 다음 달의 이혼 접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11차례 모두 이혼 신청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의 경우 설 연휴가 있었던 1월 총 1만1521건의 이혼신청이 접수됐지만 2월에는 1만3256건이 접수돼 15.05% 늘어났다. 많게는 34.56%(2015년 2~3월), 적게는 2.17%(2014년 9~10월) 늘었다. 평균 증가율은 15.56%로 집계됐다. 이혼사건 전문인 법률사무소 나우리 이명숙 변호사는 “연휴 기간이 유난히 길었던 탓인지 이번 추석은 끝나자마자 사무실에 하루 5~6건의 이혼 관련 방문상담이 이어졌다. 명절이라는 평상시와 다른 스트레스 상황이 그간의 누적된 갈등을 폭발시켜 이혼이라는 방아쇠를 당기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가족 간 화합의 장이어야 할 명절이 가족 관계를 해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명절 기간 각종 인터넷 카페에는 이혼하고 싶다는 심경을 토로한 글들이 무더기로 올라오고 있다. 국내 최대 임신·출산·육아 커뮤니티인 M카페에는 이달 들어 지난 10일까지 이혼 관련 글이 571건 게시됐다. ‘협의 이혼 문의 드려요’ ‘이혼 변호사 소개해 주세요’ 등 문의 글에서부터 ‘친정만 가면 신랑이랑 싸워요’ ‘끝없이 괴롭히는 시댁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등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는 상담 글이 주를 이뤘다. ‘앞으로 시댁 식구들과 여행 갈 일은 없을 듯해요’ ‘추석 당일 시댁에서 아침 보내고 저녁은 또 시고모님 댁에 가자고 하네요’ ‘내가 왜 전을 부쳐야 하죠’ 등 심경을 토로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관련 글에는 각각 수십에서 수백건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도 관련 상담이 줄을 이었다. 30대 주부 B씨는 결혼 1년차이나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 명절에 시댁에 갔다 스트레스로 쓰러진 상황에서 남편이 “쇼하지 마라”고 하자 격분해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60대 주부 C씨는 현재 90세인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고 있다. C씨는 “환갑이 넘었는데도 시댁 식구와 남편이 아직도 나를 나무란다. 명절 때마다 너무 힘들어 이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70대 남성 D씨는 몇 년 전부터 아내가 제사를 거부해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7남매의 장남인데 아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사를 거부했다. 명절 때면 동생들이 제사 문제로 자꾸 뭐라고 해 큰일이다”고 토로했다.
 
박소현 가정법률상담소 구조2부장은 “평상시 참고 지내다 명절 기간 한계상황을 넘어서면서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잊어버렸던 시댁·처가 관련 불만이 그 사람들을 대면하면서 다시 폭발하게 된다. 또 가족들이 ‘더 이상 참지 말라’고 조언하는 경우도 많다.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시댁·처가를 어떻게 방문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도 스트레스 요소”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명절 직후 ‘홧김이혼’이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법무법인 새올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이혼이 주는 충격과 부담이 큰 나라다. 아직까지도 이혼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며 편견도 여전히 남아 있다. 조금만 더 여유 시간을 갖고 부부 두 사람의 관계와 이혼으로 빚어지는 득실에 대해 생각해 본 다음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민제 기자, 김도연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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