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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연극] 알파고 세상, 무대를 되묻다

안치운 호서대 교수 연극평론가

안치운 호서대 교수 연극평론가

스핀 사이클은 바퀴를 굴리지만 앞으로 나가지 않는 자전거다. 최근 서울 대학로 여우별씨어터에서 ‘스핀 싸이클’이 공연됐다. 연출가 박재완은 지난해부터 거푸 연극의 자전적 형식을 물어왔다. 무대 위 벽면에 인물들을 상형문자처럼 묶어 두거나, 벽면에 빼곡한 구멍을 죄다 밀랍으로 메우려는 불가능한 행위를 그린다. 불안한 삶, 연극을 환대하지 않는 세상, 어떻게 연극을 지속해야 할지 몰라 경악하는 연극작가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달된다.
 
‘스핀 싸이클’은 연극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묻는다. 세속사회에서의 연극을 송두리째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단락은 무대 앞부분, 아주 좁은 공간에서 펼쳐진다. 하늘에서 아그네스라는 이름의 천사가 벽면에 분필로 그린 가느다란 줄을 잡고 내려온다. 어림잡아 저 높은 곳에서 낮은 이 땅으로 오는 연극의 태생을 떠올리게 하고, 연극의 귀환을 명시하는 대목이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세상, 연극 ‘스핀 싸이클’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직시한다. [사진 극단 루트21]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세상, 연극 ‘스핀 싸이클’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직시한다. [사진 극단 루트21]

그러나 연극의 핵심인 현실은 저 높은 곳의 시선을 한참 능욕한다. 천사뿐만 아니라 천사가 만난 이 세상 사람은 모두 두려움을 지닌 존재들이다. 무대라는 세상에 안락한 곳은 없어 보인다. 그 사이사이 멀쩡하게 보이는, 여고생 교복을 입은 이가 사이렌처럼 나와 노래를 하지만 그 노래는 누구도 위로하지 않는다. 뜬금없는 노래는 인물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고, 표정 없는 가수의 노래는 생의 묵념과도 같다.
 
두 번째 단락에 이르면 난수표 같은 인물들이 막힌 장막을 뚫고 희끄무레한 무대 가운데로 들어가려는 절박함이 주조를 이룬다. 세상의 노예 같은 인물들은 비명을 외치고 피를 흘리면서 거품처럼 살아간다. 꽉 막힌 장막, 어떤 열쇠로도 열릴 것 같지 않았던 그곳이 손바닥의 접촉만으로 열린다. 닫혀 있던 너른 세속에서는 어둠이 통주저음(通奏低音·지속적인 낮은 음)을 이룬다. 우리가 사는 현실사회가 낯선 육지처럼 보인다. 빨래하는 기계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육체들은 기계 안으로 들어가 제물로 바쳐지고, 익사하고, 다시 나와서는 고양이로 발아한다. 모든 이는 제 얼굴을 잃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기계 복제 시대 속 연극의 운명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연극은 ‘오래된 연극’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호기심 많은 천사 같은 인물이나, 알파고가 지배하는 지상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듯 기계 속으로 빠져드는 인물이나 말로 다 할 수 없어 노래를 하지만 노래마저 무력함이 되고 마는 것이 그 증좌다. 그에게 연극은 세속도시의 기록이고 산물이다. 연극이 우리를 그곳으로 불러들인다. 연극이 삶을 읽고 있다.
 
안치운 호서대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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