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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요리하는 자와 먹는 자의 대치 … 패망 직전 만주국서 무슨 일이

문학이 있는 주말
칼과 혀 표지

칼과 혀 표지

칼과 혀
권정현 지음
다산책방
 
대하소설 『혼불』을 쓴 소설가 최명희(1947~98)를 기리는 혼불문학상 올해 수상작이다. 혼불문학상은 올해가 7회째다. 지난 7월 당선작 발표 당시 원래 제목은 ‘붉은 혀’였으나 지금 제목으로 바꿔 달고 출간됐다. 첫 소설집 『굿바이 명왕성』 등을 통해 ‘정통 리얼리즘’보다는 기존 소설 관습을 벗어나는 이야기들을 선보였던 1970년생 권정현씨는 이번 소설에서도 개성을 이어간다.
 
제목에서 ‘혀’를 동반하는 ‘칼’은 당연히 요리하는 칼이다. 소설은 음식과 미각에 관한 이야기인데, 생존 차원을 넘어선 미각의 쾌락, 카니발리즘(인육을 먹는 관습)으로 완성되는 뒤틀린 애정 등의 주제라면 그동안 관련된 작품이 없지 않았다. 성석제의 음식 산문집 『칼과 황홀』, 조경란의 장편 『혀』 같은 작품이 떠오른다.
 
권씨는 45년 원폭투하로 멸망하는 만주국을 시공간 배경으로 삼아 변화를 꾀했다. 일제의 관동군 사령관으로 괴뢰국가 만주국의 실질적인 지도자였으나 결사항전보다는 맛의 쾌락에 탐닉했던 실존인물 야마다 오토조를 내세워서다.
 
중국인 천재 요리사 왕첸은 표면적으로는 오토조의 까다로운 음식 비위를 맞추지만 결국 혀가 잘린다.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우여곡절을 거쳐 왕첸, 오토조의 손에 차례로 넘겨지는 조선 여인 길순이 소설화자 세 명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다.
 
어쩔 수 없이 죽이고 고문하는 전쟁 폭력이 결부되기 때문에 제목의 칼은 중의법이다. 요리하는 칼일 뿐 아니라 전쟁 도구 칼이다. 혀 역시 음식 맛을 보는 단순한 감각기관이 아니다. 혀의 두 가지 기능인 미각과 말하기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걸 고르겠냐는 일본군의 추궁에 왕첸은 말을 택하겠다고 단언한다. 광둥 요리의 빼어남을 말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서란다.
 
음식과 요리에 관한 각종 사례와 상징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것만으로 소설은 충분히 흥미롭다. 그러나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쉬움도 없지 않다. 주제의식이 선명하지 않은 느낌이고, 일본군에 붙들려 시한부 생을 사는 왕첸과 오토조 간의, 요리하는 자와 먹는자 사이의 요리를 둘러싼 대치과정에서 인물 행동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런 점에 너그러울 때 구성지게 읽히는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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