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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베스트] 사랑을 말하면서 죽고 죽이는 인류 불가사의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9월 출간된 신간 중 세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문명과 전쟁 표지

문명과 전쟁 표지

문명과 전쟁
아자 가트 지음
오숙은·이재만 옮김
교유서가
 
“사랑하라, 전쟁하지 말고(Make love, not war)”는 미국 1960년대 반전 운동 슬로건이다. 사랑은 친(親)생명, 전쟁은 반(反)생명이다. 하지만 자신이나, 자신의 식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 일원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인간들도 전쟁을 한다. 참 얄궂은 일이다. 사랑을 공식 ‘이념’으로 표방한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도 전쟁이 발발했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좀 궁색하게 보이는 ‘정의로운 전쟁론(just war theory)’이 탄생했다.
 
문자가 생기고 학문이 탄생하자, 손자(孫子)·투키디데스·칸트·클라우제비츠, 레이몽 아롱 등 걸출한 학술적 인물들이 전쟁이라는 불가사의를 해결하기 위해 골몰했다. 전쟁 문제를 다루지 않는 인문·사회과학은 없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아자 가트 교수(58세)가 지은 『문명과 전쟁』은 현 단계에서 전쟁 연구의 ‘종합 완결편’으로 평가할만하다. 전쟁과 관련된 경제학·고고학·비교행동학·사회학·심리학·역사학·인류학·정치학의 주요 성과를 망라했다. 한글판 기준으로 1061쪽(영문판은 820쪽)인 두툼한 이 책을 돌파한 독자들은 뿌듯한 성취감을 맛볼 것이다.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인간은 ‘언제부터 싸우기 시작했는가’ ‘왜 싸우는가’ ‘어떻게 싸우는가’를 다룬 『문명과 전쟁』은 인간 본성·국가·문명·근대화·산업화가 전쟁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진화했는지 논증한다. 가트 교수에게 전쟁 욕구는 일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전쟁 욕구는 식욕이나 색욕만큼 강렬하지는 않다. 저자에게 전쟁을 추동하는 폭력성은 ‘본능’이라기 보다는 ‘도구’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쟁이라는 형태의 폭력은 사회적 변화와 상관없이 항상 같은 수준으로 분출했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탄생한 15만년 전이나 21세기나 인간 유전자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조직화된 폭력은 동서고금의 각 사회적·환경적 맥락에 따라 항상 다르다.
 
뉴기니 섬 부족들의 전투 장면(1960년대 초). ‘원시 전쟁’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사진 교유서가]

뉴기니 섬 부족들의 전투 장면(1960년대 초). ‘원시 전쟁’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사진 교유서가]

집필에 9년이 걸린 『문명과 전쟁』에는 멕시코 고원에 있었던 아스테카 왕국의 인신공양,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섹스 혁명’이 전쟁과 평화에 미친 영향(저자는 ‘섹스 혁명’으로 젊은이들이 전쟁이 수반하는 ‘집단 강간’에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됐다는 논란이 될만한 주장을 편다)과 같이 수많은 정보 콘텐트가 등장한다. 그 중 핵심은 토머스 홉스(1588~1679)와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자연상태(state of nature)’다. 국가와 문명이 등장하기 전인 자연상태의 상황은 홉스에게는 전쟁, 루소는 평화와 가깝다. 둘 중 누가 옳을까. 19세기는 홉스, 20세기에는 루소가 우세했다. 가트 교수는 홉스의 손을 들어준다.
 
저자는 인류가 1만년 전부터 보다 평화롭게, 200년 전부터는 급격하게 평화롭게 살게 됐다고 주장한다. 1만년 전 농업과 5000년 전 국가의 등장, 근대화·산업화를 거치며 인류는 꾸준히 전쟁에서 벗어나 평화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역사적 단계를 거치며, 특히 산업혁명 이후에는 전쟁보다는 평화가 더 수지맞는 장사가 됐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전쟁과 불명예 중에서 불명예를 선택하면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핵무기가 등장한 이후 인류에게 놓인 선택은 ‘평화냐 인류 공멸이냐’인지도 모른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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