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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스의 가족동화 7] 서프라이즈!

미노스가 들려주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는 환상의 가족동화를 토요일에 격주로 게재합니다. 어른동화, 아빠가 들려주는 어린이 동화, 엄마가 읽어주는 아기동화로 단란한 가족의 재미있는 이야기꽃을 피워보세요.  
 
서프라이즈!
 
결혼기념일이라 해서 아내를 흡족하게 해 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생일파티는 이해하겠으나, 결혼기념일 날 왜 남편만 아내에게 선물을 하고 축하 이벤트를 해주어야 하나? 같이 기념하고 축하해야지…
 
대충 그럴싸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꽃다발이나 작은 선물로 결혼기념일을 때우곤 했다.  
그나마 딸이 이틀 전쯤 귀띰을 해주지 않았다면 날짜도 까먹기 일쑤였을 것이다. 하긴 이것도 아내가 뒤에서 딸에게 시킨 일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번만은 달라야 할 것 같았다. 결혼 30주년이다.  
정년을 코앞에 두고 경제권과 재량권이 그나마 쥐꼬리만큼 남아있는 이때에 아내에게 진심을 담아 결혼을 기념하는 무엇인가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내에게 고생도 많이 시켰다.  
사회생활이라는 미명하에 가정은 아내에게 다 미루고, 허울밖에 남지 않은 가장이라는 명분으로 고집도 많이 부렸다.  
통 보이지 않던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이 요즘 들어 아내에게 부쩍 늘어난걸 보면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뭉클 올라온다.  
 
무엇인가 아내가 깜짝 놀라며 감동에 젖어 눈물이 주루룩 흐르게 할 수 있는 결혼 기념 이벤트가 없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지만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다.  
그저 안 가보았던 식당에 가서 근사한 저녁을 먹거나, 날 잡아 여행이라도 갔다 올까 하는 생각.  
또는 옷이나 한 벌 맞춰 줘?  
 
 
워낙 이런 분야에 잔재주가 없다 보니 마음만 달아오르지 머리가 돌아가지를 않는다.  
깡통같은 머리를 통나무같이 굴려 겨우 생각난 아이디어가…
 
#
목걸이를 하나 사서 예쁘게 포장한다.  
강변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 1층을 전세낸다.  
통로에는 장미꽃 잎을 뿌려놓도록 부탁한다.  
시간이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와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어두웠던 실내에 조명이 환하게 켜지며, 직원들이 폭죽과 환호성을 일제히 지른다.  
서프라이즈!
놀라는 아내.  
예약된 좌석에 앉는다.  
앉자마자 쑥스럽지만 아내에게,
 
‘나와 결혼해 주어서 고맙소. 벌써 30년이 지났구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소.’
 
하면서 목걸이를 목에 걸어준다.  
이때 은은한 결혼 웨딩마치가 흘러나온다.  
곡이 끝나는 것을 신호로 A코스 요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내는 놀라고 감동한 모습으로 눈가가 촉촉이 젖는다.  
#
 
상상해 본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유치하다. 진부하고…
아내에게 공연히 쓸데없이 돈만 많이 썼다고 핀잔듣기 꼭 좋지…
그 돈 차라리 현금으로 날 주지! 하면서 눈만 흘길 것 같아…’
 
없을까? 뭐 참신하고도 감동적인 거?…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최상의 방법이 떠올랐다.  
그거다!
딸에게 전화하는 거다!  
회사에 입사하여 바빠 죽는다는 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하였다.  
 
“왜, 아빠. 무슨 일 있어?”
 
생뚱맞게 왠일이냐라는 듯이 사무적으로 응대하는 딸에게 별안간 닭살 돋는 서두를 꺼내기가 어색해,  
 
“응, 그냥. 오늘 아빠가 저녁 사줄까 하고…”
 
“엄마는?”
 
딸의 반문에 은근히 발이 저려,  
 
“아니, 네가 요즘 고생하는 것 같아 너에게 맛있는 거 사줄까 하고…
엄마한테 비밀로…”
 
딸은 끄응하며 미심쩍다는 듯,
 
“엄마하고 무슨 일 있어?”
 
무언가 불안한 듯 탐색하는 말투다.  
 
“아니, 아니. 그냥 너만 나와라.”
 
딸은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약속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나왔다.
바쁘긴 바쁜 모양으로, 식당에 들어서도 허둥지둥 하는 모습이 입사 초기의 신입 사원들이 얼이 빠져 좌충우돌, 우왕좌왕 허둥대는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싱긋이 웃음이 나왔다.  
 
‘저 나이 저 맘때란…’
 
딸에게 이것저것 여러 좋은 격려의 말을 해주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10월15일이 엄마 아빠의 결혼 30주년 결혼기념일이다.
금년만큼은 엄마를 매우 감동시키는 이벤트를 하고 싶다.  
참신하고 감동적인 아이디어를 부탁한다.  
엄마에게는 절대 비밀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등등이었다.  
 
딸의 표정이 그제서야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딸의 첫 질문은 영락없는 요즘 젊은이들이었다.
 
“비용은?”
 
일단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플랜이나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두둑하게 용돈을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건 비밀 컨설팅이다. 다시 다짐을 했다.  
 
“엄마한테는 절대 비밀이다. 꼭 의리 지켜야 한다. 알았지?”
 
딸은 엄마와 서로 못하는 말이 없다는 것을 평생 보아 와서 믿기가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엄마를 기쁘게 하는 일이니 딸도 동참해줄 거라는 계산이 섰다.  
딸은 눈을 찡긋하였다. 엄지손가락을 위로 세우며 ‘엄지 척’을 하고는 손바닥을 위로 쳐들었다.  
나는 그 손바닥을 마주치며 ‘화이팅’을 외쳤다.  
하이파이브는 서로간 은밀한 음모가 성립되었음을 손바닥의 공명을 통해 선언한 무언의 싸인이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며칠이 지났다. 딸에게 아무 소식이 없어 궁금했다. 초조함을 못이겨 전화를 먼저 한 것은 또 내 쪽이었다.  
 
“뭐, 나온 것 없냐?”
 
“응… 근데 어렵네…  
요즘애들 하는 걸로는 엄마나 아빠가 맘에 안들어 할 거고…  
정서가 영 우리 세대하고 틀려서요…”
 
2,3일이 지난 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둘이 비밀리에 만난 자리에서 딸은,
 
“아빠. 엄마랑 결혼식 때 CD를 보았는데, 축가 부른 사람이 김수경씨 던데 맞아요? 듀엣으로 부르던데. 기가 막히더라고요. 기억나세요?”
 
기억을 되살려 본다. 그렇지. 김수경씨였었지.  
그리고 그 곡. 어찌 잊으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올 아이 에스크 오브 유(All I ask of you)’였었다.  
아내가 특별히 요청한 곡이었다.  
 
아내와의 결혼식 장면이 아련히 떠오른다.
30년 전…  
 
추억의 고전같은 장면이겠지만, 당시의 결혼식에는 패턴이란 것이 있었다.
신랑 신부 입장, 성혼선언문 낭독, 주례사, 사진 촬영, 폐백… 끝.
그 가운데 축가와 사회자의 장난끼 섞인 이벤트…
손님은 양가 부모의 지인이 많아, 부모님의 역량과 하객의 수가 거의 비례했다.  
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그런 결혼식을 거부했다. 세 가지를 거부했다.  
주례를 거부했고, 초대장을 거부했고, 화환과 축의금을 거부했다.
 
주례대신 양가 부모님이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했고, 진심으로 모셔야 할 분만 극히 개별적으로 초청했다. 초대장이 필요 없었다.  
화환도 축의금도 사양했다.  
우리가 대접하고 싶었던 극소수의 분들만 모셨으므로…  
작은 결혼식. 파격적인 결혼식이었다. 우리 측은 그렇다손치더라도 신부측 가족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았었다.  
 
규모는 초 미니의 결혼식이었지만 내용은 그 반대였다.  
 
하우스 웨딩이라는 작은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작은 무대가 있는 레스토랑을 점심나절 통째로 빌려 우리가 구상한 프로그램으로 예식을 채우는 것은 호사스런 이벤트였다.  
사람이 적으니 식대도 많이 들지 않았고,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계획이라 참신했다. 비용은 특별히 더 들 것이 없었다.  
 
나와 아내는 결혼식을 위해 왈츠를 배웠다.  
퇴근 후 댄스교습소에서 스탭을 맞추며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슬로우 퀵을 할 때마다 아내의 머리칼에서 풍겨 나오던 그 환상적인 향내…
스탭을 밟을 때마다 우리가 부부가 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고, 그런 황홀경에 빠져 아내와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다.  
 
실내였지만, 당시에는 첨단 장비였던 친구가 날리는 드론이 붕붕거리며 파노라마 영상을 찍어 라이브로 스크린에 상영할 때, 하객들은 올림픽 개막식에 온 것 같은 환상을 보는 듯 했다고 했다.
 
양가 아버지들의 축사와 격려의 말씀 또한 압권이었다.  
 
축가는 한 곡이 아니었다.  
맨 첫 곡은 신혼의 아들 내외에게 불어주신 아버지의 색소폰 연주.
 
<당신은 나를 일으켜 줍니다>  
- You Raise Me Up -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기에,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고,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깨 위에 있을 때 나는 강해집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세워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이 곡을 부신 후, 아버지는,  
 
“제가 아들 부부를 일으켜 세워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아들 부부가 저를 일으켜 세워주고 있기에 이 곡을 불었습니다.”
 
라고 하여 나와 아내와 하객들 모두를 감동시켰었지.
 
이어서 재즈음악을 공부한 내 친구의 축하 피아노 연주. 그는 우리를 위해 새로운 곡을 작곡했다고 했다.  
다음은 교향악단 수석 연주자가 연주한 플루트 연주.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를 불었었지. 플루트로도 저 곡이 저렇게 아름답게 흐를 수 있다니…
 
그리고 마지막 축가로 김수경씨가 오페라의 유령 중 ‘올 아이 에스크 오브 유(All I ask of you)’를 듀엣으로 불렀다.  
 

-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 -
 
당신이 깨어있는 모든 순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아름다운 이야기로 나를 위로해주세요.
내가 당신과 지금 그리고 항상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세요.
당신이 말하는 것은 모두다 진실이라고 약속해주세요.
그것이 내가 당신께 바라는 전부입니다.
 
Say you love me every waking moment,
turn my head with talk of summertime.
Say you need me with you now and always,
promise me that all you say is true,
that's all I ask of you.
 
가수 김수경씨.  
맞다.  
지금은 오페라의 디바, 한국의 프리 마돈나로 유명한 세계적인 가수.
요즘 그 분을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여류명사지만, 그 때에 그녀는 무명의 학생이었었다.
김수경씨는 부모님들끼리 아는 분이라 하여 초청되어 왔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우리의 왈츠 무대…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다. 그 황홀하고 달콤했던 조명과 선율…
회상된다. 그 곡.  
'당신을 사랑한 그 누구(Who you love)'…
가수가 당시 유행했던 존 메이어였던가?
하객들은 모두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내 주었었다.    
 
“아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요. 기막힌 생각이 났어요.  
김수경씨를 초대해서 결혼기념일에 출연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아빠 결혼식 때 초청했던 신랑신부 친구들과 축가를 연주했던 분들을 모두 불러서 30년 전 결혼식을 리바이벌하는 거예요.  
엄마에게는 절대 비밀로요. 어때요?…”
 
“…….”
 
어안이 벙벙했다. 가능한 일일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친구들이야 그렇다 치고, 김수경씨가 올 수 있을까? 그 바쁜 분이.  
그리고 그 연락들을 어떻게 하니?  
엄마 친구들에게 말하면 금방 다 들통날텐데…”
 
“그건 염려마세요. 엄마에게 적당히 둘러대서 엄마 친구들 전화번호 알아낼 수 있어요. 제가 전화할게요. 아빠 친구 분들은 아빠가 알아서 하시면 되잖아요.”
 
“김수경씨는?”
 
“제가 간곡히 부탁해 볼게요.”  
 
“오실 수 있을까? 그리고 다른 축가 부른 친구들도?”
 
나는 믿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여튼 아빠가 연락처만 알려 주세요. 제가 연락해 볼게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누구 닮아 이렇게 저돌적으로 배짱인가?’
 
요즘 젊은 사원들은 다들 이렇게 거침이 없나?
딸의 도전적인 모습에 새삼 대견스럽기도 하고 겁나기도 하였다.
아무튼 딸 계획대로만 된다면 30주년 결혼기념일은 대박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상상해 본다.  
 
#  
아내에게 결혼기념일 저녁이나 먹자고 시큰둥하게 이야기한다.
아내가 어디 갈 거냐고 물으면,  
 
‘그냥 맛있는 거 먹지 뭐… 어디 가면 별 수 있나…’
 
하며 능청을 떤다.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눈을 흘기면  
 
‘그냥 나한테 맡기고 따라오기만 해요. 배불리 먹여줄게.’  
 
하면서 가능한 한 멋대가리 없는 결혼기념일거라고 기대를 차단한다.  
당일 날. 아내를 우선 카페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하고, 딸과 핸드폰으로 몰래 연락을 주고받으며 준비상황을 살핀다.  
 
딸한테 ‘OK' 사인이 오면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조명이 까맣게 꺼져 있다.
아내가 어리둥절, 반신반의, 뭐가뭔지 모르고 식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일제히 불이 켜지며  
 
‘서프라이즈!’
 
라고 소리친다.  
깜짝 놀라는 아내…  
한꺼번에 나타난 그리운 얼굴들…
음악과 함께 터져 나오는 팡파레…
 
“결혼 30주년을 축하합니다.!!”
 
상황을 알아차리고 아내의 눈물이 글썽거리는 찰나에 손에 꽃다발을 든 친구들이 모두 다가와,  
 
“축하한다. 정말 축하해”
 
하며 건네며 얼싸안고 허그하는 감격스런 모습들…
아내는 혼이 빠지고 그 공백에 기쁨과 감동이 가득 메워지게 된다.
이어지는 식사와 그 옛날의 감동의 축가들…
그리고, 김수경씨의 등장과 아름다운 그 곡…
#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신나는 상상이었다.  
그러나 곧 현실이 된다. 나는 미소가 멈춰지지 않았다.  
딸은 열심히 준비했고 가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김수경씨는?”
 
“잘 될 것 같아요. 해외 공연중인데 가능한 한 스케줄 만들어 보겠다고 메니저가 연락을 주었어요. 야호. 아빠, 축하해요.
엄마 친구분들도 가능한 노력해보겠다고요. 축가 부른 분들도 다 긍정적인 답을 해오시네요. 일이 술술 풀려요.”
 
“엄마한테는… 절대 비밀 알지?”
 
“물론이죠. 그 대신 아빠 알죠?”
 
하면서 딸은 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나는 턱주걱이 가슴위에서 부러지도록 격하게 끄덕거려 주었다.  
성공 보너스라…  
 
D- 10일.  
내가 할 일을 해야 한다.  
 
30년 전 하우스 웨딩을 했던 레스토랑은 없어졌지만, 요즘에는 라이브 공연을 하면서 음식을 서브하는 레스토랑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일은 음향과 좌석 배치정도였다.  
오페라 가수 김수경씨 정도라면 보통 음향으로 될 일이 아니었고 피아노 반주도 필요했다.  
그러저러한 일에 잔신경을 쓰면서 식당예약도 끝냈다.  
 
그 다음, 친구들을 하나하나 전화해서 그날 저녁에 초대했다.  
친구들도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일부러 그럴 것은 아니지만 우선순위를 따지며 내 친구들과 아내 친구를 합하여 기념일에 맞추어 30명이면 좋겠다 싶었다.  
 
30명 예약하고 보니 비용이 신경이 쓰였다.  
또 아내 선물도 하나 사야겠고…  
김수경씨에게는?
축가 친구들에게도 가벼운 선물 하나씩?
까짓 것… 돈을 죽을 때 들고 가나 뭐…  
팍팍 쓰기로 거하게 마음먹었다.  
 
딸은 그야말로 부산했다.
엄마와 우연을 가장하고 결혼CD를 보면서 은근히 30년 전 결혼 무드를 상기시키는가 하면,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물어 기억하곤 했다. 그리고 몰래 엄마 핸드폰으로 번호를 확인하곤 했다고 했다.  
 
D-7일.  
아직도 김수경씨에게 확답이 없다. 딸은 잘 될 것 같다고만 했다.  
 
D-5일.  
드디어 김수경씨 메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했다.  
가능하다! 고…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계획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잠이 안온다.  
30년 전 결혼식 때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아내와 왈츠 연습할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앞으로 나흘 남은 결혼기념일이 마치 진짜 결혼식 날이라도 되는 양 가슴이 두근거리며 새신랑같이 기다려졌다.
 
D-3일.
10월 12일이다.
단풍이 절정을 향해 달아오르고 있었다.  
 
퇴근 후, 시침을 뚝 떼고 무심코 앉아있노라 나름 애를 쓰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왠지 코 먹은 소리로 넌지시 말을 걸어온다.
 
“여보. 우리 결혼기념일이 10월15일이잖아.”
 
“그렇지. 왜?”
 
어쩐지 속이 켕긴 목소리로 되묻는 나.
 
“그날 우리 저녁먹기로 했잖아…”
 
“그렇지.”
 
“식당이야 어디가든 좋은데…  
점심으로 하면 안될까?”
 
내심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짐짓 숨을 가다듬고,
 
“왜 무슨 일 있어요?”
 
“응. 우리 동창들이 그날 저녁 모이기로 했거든…  
하도 오래간만이라 가고 싶어서…”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일부러 별스럽지 않은 저녁약속을 말한 게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안되지. 안돼. 무슨 소리요.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내 목소리가 필요이상 큰 소리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애원하듯 부드럽게 말하다가 내가 워낙 완강하게 안된다고 하니, 급기야는 화를 내고 말았다.  
 
“결혼기념일, 언제 그렇게 챙겨줬다고…  
점심이나 저녁이나 식사 한 끼 하는 것 뭐가 다르다고…”
 
하면서 토라져서는 자기는 저녁 안먹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었다.  
 
난감하였다. 그렇지만 천기를 누설할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내가 피치못할 점심약속이 있어서 그런다고 둘러대고는 저녁식사를 사수하였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동창생 모임이라고?
그러면 그날 신부측 친구들은 빠진다는 말인가?
 
부랴부랴 딸에게 비상상황을 알렸다.  
섣불리 말했다가는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으니 조심스럽게 엄마친구들에게 확인전화를 하라고 했다.  
딸은 아내 친구들에게 급하게 전화를 돌렸다.  
그랬더니 친구들은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아내가 동창모임에 참가하겠다고 해서 자기들은 우리 결혼기념일 저녁이 취소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계획이 삐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 친구들 참석이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그러면 어찌 되는건가?
내 친구들만 잔뜩 모여 놓고 아내에게,  
 
‘서프라이즈!’
 
라고 외친다?
그리고 남자 친구들끼리 모여 맥주야 와인이야 잔뜩 시켜서 축하파티를 한다?  
아내를 감동시키기는 커녕 격분시키기 꼭 좋은 짓이다.
 
일이 난감해졌다.  
그렇다고 딱히 딸에게 잘못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수 김수경씨도, 다른 축가 연주자들도 이런 상황에서 부를 수는 없었다. 기가 막혔다.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실로 난감했다.  
 
다시 딸을 불러내 비상대책회의를 했다.  
시간은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식당은 30명 예약을 했고 물론 예약금도 걸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껏 김수경씨나 다른 연주자들에게 결혼30주년 기념일 행사라고  호소하여 스케줄을 바꿔가며 참여해주기로 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취소?
이건 아니었다. 큰일이었다. 상황감당이 안된다.  
나는 차라리 항복해 버리고 싶었다.  
 
나는 딸에게 엄마에게 이실직고하자고 했다  
서프라이즈 효과는 없다라도 어쨌든 친구들이 모여 30년 전의 추억을 음미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 아니겠느냐. 그러면 엄마도 친구들을 설득해보지 않을까?…
 
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딸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버지, 귀 좀…”
 
딸은 나에게 귓속말로 자기 계획을 말하였다.  
이러면 엄마가 놀라면서 매우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우리 부부는 사실 딸이 결혼을 생각지도 않고 있는 것에 내심 불안해 하고 걱정도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이 이제까지 남몰래 사귀던 남자친구를 그날 전격 소개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기실 놀랄만한 일이었고, 반갑기도 한 일이었다. 괜찮은 남자라면 이보다 더 좋을 일은 없으리라…
아내를 기쁘게도 놀랍게도 할 만한 서프라이즈가 될 것 같기도 했다.  
딸은,
 
“아빠, 제가 30명 레스토랑 예약이랑 다른 분들 약속은 취소할게요.
다 제 책임으로 정중하게 사과하고 여러 사정을 예쁘게 말씀드릴게요. 아빠는 그냥 엄마 모시고 근사한 저녁식사 하시자고만 하고 오세요.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두 분 만족스럽게 잘하겠습니다.”  
 
하였다. 달리 방법이 있을 것이 없었다. 그런 비상계획이라도 마련해 준 딸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성이 차지 않는다.  
딸과 헤어지고, 나는 한참을 혼자 걸었다.  
아내와의 30주년 결혼기념일…
그 하루가 별스러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쓸쓸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기를 쓰고 달려왔지만 종착점은 여전히 안보인다. 종착점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앞서가던 수많은 주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숨가쁘게 뛰어왔건만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도 뒤에도 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혼자서만 덩그러니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아픈 다리 쉬어갈까 싶어 길옆 모퉁이에 걸터앉는 순간, 물수건 한 장 건네주는 사람…  
 
아내였다.  
이 사람이 여태껏 나하고 같이 뛰었던가?  
그런데 왜 통 보이지 않았지?  
다시 바라본다.  
나보다 더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여전히 내 뒤를 따라 뛰어온 사람…
 
종착점 아닌 종착점에 왔나 보다.  
그곳에 머리띠를 질끈 맨 아들이, 딸이 바통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세대란 강물 같은 것인가 보다.  
샘물이 골짜기를 따라 흐르다 강을 만나면 그저 섞여 흐를 뿐, 어느 물이 샘물인지 어느 물이 강물인지 어찌 알 수 있으랴.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  
 
결혼식 때 신부 아버지가 하셨던 축사말씀이 떠올려진다.  
 
“저는 오늘 한 세대가 30년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왜냐하면 올해가 제가 결혼한 3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로서 저는 자식에게 해야 할 숙제를 다 끝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홀가분합니다.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이 다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첫날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딸과 사위에게 그리고 제게 정말 새로운 날이 되는 날입니다. 아마도 이 신혼부부가 결혼한 지 30년이 되면 제 말이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묵묵히 걸었다. 또 생각했다. 다시 걸었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비로소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아내였다. 부부였다.
자식이 떠나간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
둘만 덩그마니 남았다. 우리는 처음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 왔는지 모른다.  
아내와의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는 날. 자식이 떠나는 날이었으리라.  
 
갑자기 계획이 산산조각 나니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애초에 딸에게 맡길 일이 아니었었다.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은행에 가서 나의 비자금 잔고내역을 확인했다.  
그리고 보석상을 향했다. 반지를 하나 샀다.  
포장을 정성껏 부탁했다.
새로운 시작이다.  
그것은 내 마음의 ‘서프라이즈’였다.
 
D-데이.
 
그 날이 왔다.  
무심을 가장했지만,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나는 가장 좋은 양복에 가장 화사한 넥타이를 골라 메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저녁 7시 레스토랑 앞의 카페에서 만나, 같이 들어가자고 한 약속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아내의 손가락을 보았다. 맨 손가락이었다.
 
저녁 7시.
아내는 그래도 결혼기념일 30주년이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화사한 옷과 화장을 곱게 하고 카페에 먼저 나와 앉아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다가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훌륭한 신랑을 만나 모진 풍파에 다양한 경험, 남들은 상상하지도 못한 고난과 극복의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고 말하면서 아내의 손등에 키스를 하였다.
비웃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내는 환히 웃었다.
 
아내와 팔짱을 끼고 천천히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이런 선례를 경험한 바가 없었다. 나의 뇌가 빛의 속도로 회전했다.  
 
식사는 간단히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천천히 여유있게 하는 것이 좋을까? 반지를 끼워주며 아내에게 무어라 말할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어떻게 해야 나의 진심이 전해질까? 반지를 보고 아내는 정말 기뻐할까? 나의 마음을 알아줄까? 아니면 화라도 낼까?  
 
딸의 남자 친구는 도대체 어떤 녀석일까? 맘에 들까?
그 친구에게 아비로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내는 어떨까? 얼마나 놀라며 기뻐할까? 아니면 서운해 할까?  
불과 몇 발자국 떼어 들어가는 입구에 이르기까지,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속에서 동시에 명멸하였다.  
 
예약을 취소하여 손님이 없었는지 입구는 컴컴했다.  
도어를 열고 들어섰다.  
 
아! 그때…
갑자기 고막이 찢어지는듯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팡파레.  
그리고 우리 부부의 눈을 향해 쏘아비치는 서치라이트의 눈부신 불빛.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서 있는 우리에게 일제히 터져 나오는 함성.
 
“서프라이즈!. 결혼 30주년을 축하합니다!”
 
눈의 망막을 정돈하고 나서야 앞이 밝아왔다.  
그 때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
흰머리가 성성해지고, 뺨에 주름살이 자리잡은 초로의 신사 숙녀들.
30년 전 하객으로 축하해 준 내 친구들과 아내 친구들이 그곳에 모두 앉아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가슴이 마구 뛰었다.  
집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딸, 고것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두 분 만족스럽게 잘하겠습니다.’
 
라더니…
 
검은색 정장을 입은 딸이, 마찬가지로 검은색 정장에 흰색 나비넥타이를 멘 젊은 청년과 함께 우리 내외를 좌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앉을 때까지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이어서 이어지는 의기양양한 딸의 멘트.
 
“지금부터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겠습니다. 먼저 축배를 들겠습니다. 모두 테이블 위에 있는 와인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그때 무대 위에서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등장하는 저 듀엣. 한국의 프리 마돈나 김수경씨였다.
 
뇌 속에서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이 동시에 분비되는 듯, 목과 가슴이 먹먹하여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단순히 ‘감동’이라는 단어로?
 
축배가 끝나자 딸은 아내를 무대로 불렀다.  
쑥스럽다는 듯,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아내가 무대 위에 섰다.  
놀라서 서 있을 수도 없을 아내가 손님들을 한번 둘러보더니 인사말을 하였다.  
이렇게…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위해 정말 오래 기다리고 준비했습니다. 30년간요…
지금 제 남편은 깜짝 놀라고 있을 거예요.
그렇지요. 이제까지 결혼기념일이 되면 남편에게 뭐 해줄거냐고 졸랐었죠. 남편은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저에게 선물을 해주곤 했어요. 늘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했죠.  
그렇지만, 아니었어요. 정말 고생한건 남편이었고, 오늘의 행복 또한 전적으로 남편덕분이라는 걸 제가 잊을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30주년 결혼기념일만큼만은 남편에게 멋진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의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여 딸에게 부탁했습니다. 딸은 충실히 계획을 이행해주었어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 비밀을 지켜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30년 전의 우리의 작은 결혼식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날 축하해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드리고요, 다시 한 번 그날을 회상하면서 행복한 저녁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보 사랑해요. 정말 행복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 황홀한 배신감. 이 감격스런 놀라움.  
내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 감출 수 있으랴…
 
30년 전의 예식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때처럼 친구들이 한사람씩 차례로 일어나 축하의 말을 짤막하게 해주었지만, 그 내용의 다양함과 깊이는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폭소 반, 감동 반, 그리고 그 위트와 유모어.
나는 걸레에서, 폭군 그리고 난봉꾼이 되는 만신창이가 되었다가 끝에는 마라톤 우승자 같은 월계관이 머리에 쓰여졌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준비한 내 마음의 서프라이즈를 아내에게 선사하였다.  
상상이 되지 않는 선물에 아내는 눈을 반짝이며 포장을 풀었다.  
 
아내가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그 다이아몬드 반지…
나는 아내의 맨 손가락에 그 반지를 끼워주었다.  
내 마음의 ‘서프라이즈’가 아내의 마음에도 ‘서프라이즈’로 전달된 듯 했다.  
아내는 반지를 끼워주는 내 손등에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삽화 서동주]

[삽화 서동주]

 
축가는 30년 전 그대로 진행되었다.  
맨 처음, 스크린에 상영된 30년 전 CD영상…
아버지의 색소폰 연주였다.  
‘ You raise me up'…
 
스크린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영상 속에서 색소폰을 부는 사람은 아버지, 그러나 바로 지금 나의 모습이었다. 30년이 지나 아버지의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 모습 그대로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다음, 피아노 연주와 ‘넬라 판타지아’ 플륫 연주…
곡은 세월이 가면서 더욱 더 완숙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람. 누구겠는가. 소프라노 김수경씨였다.  
그녀가 마이크를 들었다.
 
“두 분의 결혼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때 뵙고 두 번째 뵙는군요.  
저에게도 서프라이즈가 있답니다.  
 
30년 전 저는 무명의 학생이었습니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갈 수가 없어 실의에 빠져 있었죠. 그때 우연히 저를 발견하고 유학비용을 지원해주신 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신랑의 부모님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저를 지원해주셨지만,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죠. 어느 날 딱 한 가지 부탁을 하시더군요.  
바로 아들 결혼식 축가였어요. 신부가 원하는 곡이라고 하면서요.  
저는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그 축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30년 후 따님이 전화를 했더군요. 30년 전 그 축가를 엄마를 위해서 부탁할 수 없느냐고요. 극비로요…
저는 이태리에서 모든 스케줄을 변경하고 왔습니다.  
누구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었겠어요. 제가 거절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부탁이 있다면, 바로 오늘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
 
그녀는 말을 하면서 눈길을 한 번도 우리에게서 떼지 않았다.  
그녀의 눈길을 마주하는 내 눈길 또한 한 번도 뗄 수 없었다.  
 
‘올 아이 에스크 오브 유(All I Ask Of You)가 시작되었다.  
 
‘이제 어둡고 무거운 얘기는 하지 말아요.
모든 두려움을 잊어버려요.
내가 여기 있으니, 아무도 당신을 해칠 수 없어요.
내가 당신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지켜줄게요.
당신을 자유롭게 해드릴께요.
따뜻한 햇살이 되어 당신의 눈물을 다 마르게 하겠어요.
내가 여기, 당신의 바로 곁에 있잖아요.
당신을 지켜주고, 당신을 이끌기 위해서요.
 
No more talk of darkness,
forget these wide-eyed fears.
I'm here, nothing can harm you,
my words will warm and calm you.
Let me be your freedom,
let daylight dry your tears.
I'm here, with you, beside you,
to guard you and to guide you.’
 
30년 전 아내가 요청한 곡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내 마음의 ‘서프라이즈’를 노래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콘서트 장이 되었다. 그녀의 고음은 청중을 정전기로 감전시킨 양 온몸의 털을 거꾸로 하늘로 향하여 곤두서게 하는 것이었다.  
 
연주를 마친 김수경씨가 나와 아내에게 다가왔다.  
국제적인 무대 매너가 몸에 밴 듯, 프리 마돈나는 세련된 자세로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아내와 내 손에 키스를 하였다.  
그리고 예쁜 봉투를 선물이라 하면서 테이블에 놓고 갔다.  
 
‘그 분이 저에게 베풀어주신 축복의 100만불의 1의 축하입니다.  
서프라이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 그것은 오늘의 결혼기념 식사비를 모두 지불했다는 카드였다.  
 
딸이 소개한 남자 친구는 정말 맘에 들었다.
정확히 30년.  
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내의 그 만족해하는 모습이란…
 
나는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딸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너, 절대 비밀엄수하기로 약속했잖니!”
 
딸이 굴하지 않고 말했다.  
 
“엄마가 먼저 컨설팅 제안을 했어요. 저는 엄마와 아빠의 비밀을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았답니다.  
서프라이즈! 결혼을 축하합니다.”
 
나는 딸에게 눈을 찢어지게 흘겼다.  
하나도 밉지 않았다.
날이 저물었다. 이제 곧 2040년이 다가온다.
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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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 기관 등과 연계해 학술행사를 개최하며, 정기적으로 자문회의를 열고 다양한 시각과 차별화된 이슈를 제시합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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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