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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영화] 김훈의 '남한산성'

김영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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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겨울, 청(淸)의 군대가 조선을 침략했고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성 안에 고립된 그 47일간의 고통과 참담의 기록이다. 적들은 목줄을 조여오고 병사들은 죽어간다. 혹한과 굶주림의 고통에도 대책은 없다. 병사들의 가마니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그 말을 죽여 주린 병사를 먹인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고립되고 성 안의 백성과 병사 들이 속절없이 고통에 내몰리는 참담한 현실. 김훈의 소설은 모든 대의와 명분이 무력해지는 저 불가항력과 속수무책 앞의 악전고투를 집요하게 묘사한다.  

 
 
김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사진 CJ E&M]

김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사진 CJ E&M]

성 안에서 버티다 죽을 것인가, 성을 나가 살 것인가. 그러나 어차피 마찬가지다. 길은 결국 하나,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갈” 뿐이다. 이 엄중한 ‘사실’의 무게에 압도된 인물들은 모두 홀로 신음하며 울음을 삼킨다. 󰡔남한산성󰡕은 치욕의 역사를기록했지만 그 역사는 오늘의 세상을 말하기 위한 방편이다. 적들에게 둘러싸여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은 불가항력의 고통에 내몰리는 성 안의 현실은 오늘의 한국적 삶에 대한 김훈식의 알레고리다. 
 
김훈이 생각하는 그 세상은 약육강식의 생존논리가 지배하는 싸움터다. 세상은 결국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그렇게 되어갈 뿐이다. 그곳은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치욕과 참담을 감당해야 하는 곳이고, 그 살아남음의 무참함을 홀로 견뎌야 하는 곳이다. 김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무력한 삶의 비장과 비애를 역사 속에 투영한다.
소설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것의 가치를 강조한다. 어떤 명분과 대의보다 ‘먹고 사는 것’만이 중요하고 영원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는 모든 의미와 가치를 무력하게 만드는 보수주의의 일면이다.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은 원작을 충실하게 스크린에 옮겼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영화는 소설과 갈라선다. 영화에서 김상헌은, 자결에 실패하고 삶을 선택하는 원작과는 반대로 죽음을 선택한다. 원작에 없는 대사도 덧붙여졌다. 백성들의 새날을 위해선 나와 최명길과 임금마저 포함한 모든 낡은 것들이 무너져야 한다는 김상헌의 말이 그렇다. 영화는 적폐청산이라는 현재적 과제와 그런 식으로 슬그머니 공명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모든 의미와 가치보다 동물적 생존의 정당성을 앞세우는 원작의 이데올로기적 보수성을 아슬아슬하게 이겨낸다.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과 원작의 결을 희생하는 대가를 기꺼이 치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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