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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민의 스튜핏, 탕진잼을 눌렀다

데뷔 26년 만에 첫 전성기를 맞은 김생민. 그의 ‘짠테크’에 많은 이가 공감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데뷔 26년 만에 첫 전성기를 맞은 김생민. 그의 ‘짠테크’에 많은 이가 공감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욜로, 탕진잼이라는 그 엄청난 트렌드를 꺾을 에너지가 제게는 없어요.” 지난 7월, 팟캐스트에서 화제가 되고 있던 김생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에게 “청년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자신이 얘기한다고 해서 ‘탕진잼(과소비하는 데에서 오는 재미)’이나 ‘시발비용(스트레스 때문에 우발적으로 쓰는 비용)’ 이 일상화된 트렌드를 꺾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틀렸다. 3개월이 지난 지금, 김생민은 신드롬의 주역이 됐다. 그가 강조해온 저축·절약 중심의 ‘짠테크’가 청춘들의 소비 트렌드는 물론 생활 방식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생민은 지난 세월 그저 KBS ‘연예가중계’의 리포터(21년간)였고, SBS ‘동물농장’의 패널(17년간)이었으며, 영화소개 프로그램의 출연자(20여년간)일 뿐이었다. 1992년 데뷔한 KBS 특채 개그맨인데도 개그 프로에서 볼 수 없었고, 편안한 인상 외에는 어떠한 캐릭터도 없었다. 그러던 그가 주목을 받은 건 2000년대 중반 그의 ‘자린고비’ 재테크 일화가 알려지면서다. 첫 월급 25만원 중 20만원 이상을 저축하고, 20여년간 단 한 달도 적금 자동이체를 쉰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아껴 17년 만에 10억여원 이상을 모았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한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그가 끼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짠테크’라는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청취자의 실제 영수증 사용 내역을 품평하는 ‘김생민의 영수증’은 지난 8월 8부작으로 KBS2에 정규편성 됐다. 김생민은 MBC ‘라디오스타’,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 각종 예능에 출연하고 화장품, 통신사, 소셜커머스 등 몰려드는 CF 요청을 받고 있다.
 
김생민이 주목 받는 이유는?
 
야구장에 갈 때 생수를 집에서 준비해 가라고 조언하는 김생민. [사진 KBS 김생민의 영수증 캡처]

야구장에 갈 때 생수를 집에서 준비해 가라고 조언하는 김생민. [사진 KBS 김생민의 영수증 캡처]

왜 하필 지금 김생민일까. 그의 ‘짠테크’도 이미 10여년 전부터 알려진 사실인데 말이다. 지난해 말부터 주목 받는 트렌드는 ‘욜로(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였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는 대신 당장 오늘의 삶과 행복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 트렌드분석 센터도 2017년 유행할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욜로’를 꼽았다.
 
하지만 욜로는 기업과 미디어 등에 의해 소비 중심의 문화로 비쳐졌다. 지난 5월 MBC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욜로 특집이라며 출연자들에게 법인카드를 내어주며 마음껏 쓰라고 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올해 상반기 욜로와 함께 주목 받았던 신조어가 ‘시발비용’과 ‘탕진잼’이었던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생민이 외치는 ‘스튜핏’은 소비 행위로만 욜로를 행하라는 변질된 욜로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분석이다. ‘김생민의 영수증’ 애청자인 강모(35)씨는 “장난스레 스튜핏을 외치지만, 욜로마저도 소비로 해결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서 소비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는 “오늘을 담보 잡히며 사는 삶을 반성하자는 욜로의 의미가 ‘당장 즐기자’는 소비적인 가치로 변질됐다. 이에 대한 반감이 김생민으로 상징되는 절약과 검소라는 전통적 가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10일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SNS상에서 ‘탕진잼’의 언급량은 지난 1월 694건, 2월 1757건에서 8월 505건으로 줄었다. ‘시발비용’ 언급량 또한 1월 6442건으로 시작해 6월 1만3353건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 8월에는 3255건으로 급감했다. 이에 반해 짠테크·그레잇·스튜핏 언급량은 8월부터 급증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김생민은 ‘한달에 얼마씩 저축하면 몇 년 후에는 이 정도 모을 수 있다’고 손에 잡히게끔 얘기해준다”며 “탕진잼과 욜로를 외치면서도 한편으로 ‘정말 이래도 될까’ 하던 불안감을 해소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 피로증, 김생민을 소환하다
 
김생민에게 자신의 삶을 투영해 동질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푼이라도 아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찌질해보이기까지하는 김생민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한다는 얘기다. 지난 7월 만난 김생민은 실제 검소했다. “커피를 사겠다”는 기자 얘기에 반색하며 “진짜 사주시는 거냐”고 재차 묻고, 취재 차량을 유료 주차장에 댔다는 얘기에 “KBS 본관에 주차하면 무룐데 왜 그랬느냐”고 수차례 얘기하며 자기 일인양 안타까워했다. 휴대폰도 폴더폰은 아니었지만 중고로 싸게 산 스마트폰이었다.
 
김생민 신드롬은 앞으로도 계속 될까. 지난 인터뷰에서 김생민은 “오늘을 위해 쓸 건 쓰면서도 미래를 위해 꾸준히 돈을 아끼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트렌드가 바뀌어도 중요한 건 언제나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하재근 평론가는 “미래가 불안할수록 결국 손에 쥔 게 있어야 안심이 된다”며 “아끼며 살아가는 행위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공유되는 한 김생민 신드롬 또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끼며 살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김생민은 대리자”(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라는 것이다.
김생민 어록
“지금 저축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한다”
 
“비를 맞는 것은 문학적이다”
 
“커피는 선배가 사줄 때 먹는 것이다”
 
“손은 장갑, 발은 드레스에 가려서 안 보이니 칠하지 마라”
 
“소화가 안 될 때 소화제 대신 점프하라”
 
“투어버스나 일반버스나 창 밖 풍경은 똑같다”
 
“아이가 뭘 사달라고 하면 딴소리로 주의를 분산시켜라”
 
“가족과 함께 할수록 과소비는 근절된다”
 
“디자인 이즈 낫 임폴턴트”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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