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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썰렁한 ‘박근혜 법정’ … 뜨거운 감자 된 ‘석방설’

고대훈의 Fact&Fiction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호송버스에서 내려 법정으로 가고 있다. 그는 구속 기한 6개월이 끝나 석방될지, 아니면 구속이 연장돼 서울구치소에 계속 구금될지 10일 청문절차를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호송버스에서 내려 법정으로 가고 있다. 그는 구속 기한 6개월이 끝나 석방될지, 아니면 구속이 연장돼 서울구치소에 계속 구금될지 10일 청문절차를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

내일(10월 10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또 다른 ‘운명의 날’이다. 지난 4월 17일 기소된 박근혜는 6개월의 구속 기한이 끝나는 10월 17일 0시 서울구치소를 나설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고 검찰은 구속 연장을 요청했다. ‘박근혜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그를 석방할지, 아니면 사회와 계속 격리할지를 놓고 10일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을 듣고 결정한다. 기로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법정을 찾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 대법정. ‘피고인 박근혜’의 76회째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석에 앉은 그는 담담했다. 가혹한 시련 앞에 모든 걸 내려놓은 탓인지,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며 무죄를 확신하는 탓인지 그저 무심한 표정이었다. 지루한 재판에 심신이 피곤해진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소 붓고 초췌해진 안색이 조금 달라졌을 뿐 올림머리에 수용자 번호 ‘503’의 둥근 배지를 단 남색 재킷의 차림은 5월 23일 첫 재판 때 공개된 모습과 똑같았다. 재판 중에는 손으로 턱을 괴거나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루할 때는 몸을 살며시 좌우로 흔들었고, 시력이 나빠졌는지 안경을 꺼내 썼다. 유영하 변호사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그의 육성은 단 한마디도 공개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정말 궁금하다”고 법정 관계자는 전했다.
 
이날 재판에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비선 실세’ 최순실을 등에 업고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하며 이권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옅은 하늘색 수의에 뿔테안경을 쓴 그는 낮은 목소리로 검찰 신문에 답했다. “외삼촌인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최순실씨에게 추천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직접 전화가 와서 만났다. 제게 ‘어르신(박근혜)께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 얘기했다” 등의 증언이 나오자 차은택을 힐끗 쳐다봤지만 이내 무관심한 얼굴로 돌아갔다.
 
같은 시각, 같은 건물의 320호 법정.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자신의 재판에 나왔다. 국정농단 사태를 알고도 묵인한 혐의다. 짙은 감색 정장을 한 우병우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약간 상기된 듯한 표정과 ‘레이저 눈빛’은 그대로였다. 증인으로 나온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말을 들으며 열심히 메모했다. 무죄 투쟁을 벌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박근혜 재판정의 방청석 150석 중 3분의 1은 비어 있었다. 한때 ‘로또’라고 불리던 방청 경쟁은 희미한 추억이 돼버렸다. ‘셀프 올림머리’에 몇천원짜리 집게핀을 꽂았다는 모욕주기식 보도조차 사라졌다. 방청석이 40여 석에 불과한 우병우 재판정에도 빈자리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우병우에게서 말 한마디를 들으려고 북새통을 이루던 취재 열기는 찾아볼 수 없다. 권력의 정점에서 나라를 쥐락펴락하던 ‘주군’ 박근혜와 ‘실세 신하’ 우병우가 한날한시에 위아래 층에서 법정에 섰지만 대중의 관심은 멀어지고 있었다. 권력 무상이 법정 안팎에 그대로 투영됐다.
 
잊혀 가던 박근혜가 ‘석방설’과 함께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박근혜는 구치소에 갇힌 구속 상태지만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未決囚)다. 형사소송법상 구속된 피고인은 재판에 넘겨진 뒤 6개월 안에 1심 재판을 끝내야 한다. 그러나 심리(審理)가 길어지면서 박근혜의 구속 만기일(16일 자정)까지 1심 선고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6-4-4’ 원칙에 따라 풀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구속 후 1심은 6개월, 2심은 4개월, 3심은 4개월 안에 재판이 종료되지 않으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불구속 재판을 하는 게 맞다는 논리다.
 
검찰이 다급해졌다. 롯데와 SK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혐의를 추가해 구속을 연장해 달라고 재판부에 신청했다. 현행법은 ‘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증거 인멸이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범죄의 중대성에 해당하면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검찰은 증인들과 말을 맞출 가능성, 증거를 없애거나 조작할 가능성, 재판을 지연시킬 가능성을 든다. 최순실·안종범·김종·차은택 피고인이 구속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아 구속기간이 연장된 전례가 있다.
 
이에 대해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도 낮으며, ‘고령의 연약한 여자’가 장기간의 수용생활로 인해 육체적·정신적으로 쇠약해졌기 때문에 불구속으로 재판을 하자는 게 박근혜 측의 반박이다. 박근혜가 병원진료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점은 구속 만기와 불구속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편법적 구속 연장은 정당성이 없는 인권 침해며 무죄 추정과 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했다.
 
박근혜의 구금 또는 석방에는 법으로만 따지기엔 미묘한 방정식이 숨어 있다. 우선 국민의 법 감정을 간과할 수 없다. 국민은 ‘구속=유죄’ ‘불구속=무죄’라고 인식한다. 추석 민심에는 “그 정도면 충분히 고생했다”는 동정론과 “아직 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강경론이 엇갈린다. 노희범 변호사는 “여론이나 사회적 영향,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따라 구속 여부가 결정돼서는 안 된다”며 “구속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취지가 장기 구금의 폐해를 방지하자는 것이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국민들을 그렇게 고통에 빠뜨렸으면 자기(박근혜)도 그 안(구치소)에 있으면서 끝까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 여론에 더 가깝다”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구속 상태에서 1심 재판을 마쳤다”고 말했다.
 
정치적 파장도 중요한 변수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제1호는 ‘적폐 청산’이고, ‘기소된 사건의 공소(公訴) 유지’가 그 주요 내용이다. 박근혜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내라는 뜻이다. 그런데 불구속 결정이 내려지면 박근혜는 구치소의 문을 열고 나와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28일 법원 앞에는 ‘태극기 부대’ 40여 명이 출두해 박근혜를 마중했다. 초기 수백 명에서 크게 줄었지만 언제 활화산으로 돌변할지 모를 일이다. ‘불구속=무죄’라는 여론이라도 퍼지면 권력의 정통성이 의심받고, 적폐 청산의 동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오는 10월 27일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고 자부한다. 그 혁명의 타도 대상이던 박근혜가 자유의 몸이 되는 일을 검찰이 저지해야 하는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을 쥔 김세윤 부장판사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신체의 자유와 인신 구금이라는 법적 문제에다 정치가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여론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법과 원칙을 따를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고대훈 논설위원
  
※이 기사의 취재에 김솔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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