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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처럼 타인도 중요하다는 ‘극단적 개인주의’가 신뢰 바탕

그들의 행복 비결, 노르딕 가치 - 전문가 그룹 ‘애간지’의 북유럽 리포트 : 갈등 없는 사회
스웨덴·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아이슬란드 노르딕 5개국은 언제부턴가 한국인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인기 방문지가 됐다. 북유럽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언론은 특별취재팀을 꾸리고, 공무원은 단체연수를 떠나고, 연예인도 방문 경쟁을 하고 있으며, 북유럽 여행 상품은 조기 마감되고 있다. 말 그대로 북유럽 열풍이다. 대체 왜?  북유럽은 객관적으로 최상의 교육, 최고의 복지, 최대의 행복이 실현되고 있는 환상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질문이 틀렸다. 왜 이제 와서야 북유럽인가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북유럽은 우리와 다르고 좋다”는 식의 열광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왜’ 다른지를 봐야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자원도 없고, 심지어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전쟁·지배와 피지배 같은 극단적인 사회적 갈등상황을 겪어 왔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헬조선을 외치는데 왜 그들은 행복에 겨워할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애간지’ 연구팀은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김준영)의 지원을 받아 북유럽의 가치와 문화의 근본을 심층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두 달가량의 국내 학습과 일주일간의 현장 탐방을 통해 우리는 북유럽 사회가 어떤 방법들로 사회 갈등을 해결해 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고, 그들이 어떻게 가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지도 배우고자 했다.
 
다양한 개성과 가치의 공존
코펜하겐의 지하철 역 통로. 이주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음을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코펜하겐의 지하철 역 통로. 이주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음을 거리에서 볼 수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정책·행복지수·국가투명도·교육 등의 지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미래 지향적 국가의 새로운 모형으로 주목받고 있다. 개인의 경쟁을 통해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경제적 이득을 큰 가치로 두고 있는 미국 중심의 사회 모형과는 어떤 면에서 양극단에 위치한다고 보인다. 우리에게는 친숙한 경쟁·갈등·불신·감시와 같은 현상은 북유럽 국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사회에서도 갈등이 없지는 않으나 우리보다 갈등이 현격히 적은 것만은 분명하다.
 
노르딕 가치에는 협력·평등·자율성·책무·유연성·투명성 등이 포함된다. 이 모든 가치의 밑바탕에는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 신뢰가 바탕이 돼 사회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투명하고 부조리가 없기 때문에 각 개인이 서로 신뢰를 가지게 됐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신뢰는 극도의 개인주의에서 오는 듯하다. 극단적 개인주의에서는 자기 자신이 중요하듯이 타인도 중요하다. 자신처럼 타인을 대하면 존중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게 된다. 자율성이 강조되고 갈등은 협상으로 해결하니 투명한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다.
 
북유럽 국가의 복지 개념 역시 타인을 위한 이타적 복지가 아닌 자신을 위한 이기적 복지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서로 믿고 도와야 한다는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아니라 공유되고 합의된 것에 대한 존중은 결국 나에게 득이 된다는 실용적 믿음에서 비롯된다.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개인의 이득을 위해 합의된 내용을 철저하게 지켜 나가는 실용주의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에 기반한 개인주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자율성. 일견 상호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가치의 균형이 바로 북유럽 국가의 경쟁력이다. 국가에서는 국민 각자에게 기본적인 경제적 지원이 제공됨으로써 적어도 경제적 문제로 인해 직업이나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에서 제공되는 이러한 기본적 복지 수준으로 인해 개인은 오히려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직업이나 일을 가질 수 있다는 다소 부러운 측면도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우면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게 되고 주체성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개인의 주체성이 확고하면 각자의 가치가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다. 반대로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자율성이나 주체성에 의한 개성보다는 모두가 인정할 만한 동일한 가치를 따르게 된다. 그 결과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이로 인한 불만족과 갈등은 커지게 마련이다. 부정한 방법이 동원돼 신뢰는 무너지고 이를 막기 위한 감시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 감시와 감독에 길들여진 구성원은 자율적 결정 능력을 상실한 채 처벌을 피하려고만 할 뿐이다. 없어도 괜찮거나 없어야 되는 감시기관이 우리에겐 너무도 많다.
 
우리 사회에서 내집단의 합의는 획일화된 가치 덕택에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반면 가치가 충돌하는 외집단과의 협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치의 통일은 소집단의 결집력을 확보해 의사 결정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이해집단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는 오히려 치명적인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힘의 논리로 갈등을 처리한다. 다양한 개성과 가치가 공존하는 북유럽에선 협상과 합의에 대한 존중 없이는 어떠한 문제 해결도 어렵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갈등이 적고 유연한 사회로 가는 길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그 속에서 협상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북유럽의 가치가 절대 불변의 보편적이고 지속 가능한 가치는 아닐 것이다. 이들이 표방하는 가치는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와 사회문화적 특성(기후·인구·종교·인종 등)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에 대비하고자 하는 지혜로운 문제 해결 전략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 역시 대한민국의 역사·문화를 토대로 한국인의 정체성(정·흥·역동성·끈기)을 탐색해 당면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우리만의 구체적인 문제 해결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현재의 노르딕 가치가 얼마나 보편화되고 지속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노르딕 가치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것이라는 것이다. 북유럽에서 진정 배워야 할 가치는 추상적 명분과 이데올로기가 아닌 미래 지향적 실용성이 아닐까?
 
 
권준수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김성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북유럽 연구 참가자 애간지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식의 경계를 넘어 사유의 최첨단을 나눠 보자는 취지로 2014년 결성된 그룹이다. 이번 북유럽 방문에는 권준수(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김성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서은국(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송인한(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장대익(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병탁(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조광수(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박영숙(플레시먼힐러드코리아 대표), 허태균(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황주명(법무법인 충정 회장), 손혜민(인간본성연구소 연구원) 간사가 참가했다.  
 
북유럽 리포트 인터뷰에 도움 주신 분들 게이르 헬게센 코펜하겐대 NIAS 교수, 토마스 레만 주한 덴마크대사, 주한 핀란드대사관, 이강호 PMG 회장, 오동은 피스카스 코리아 대표, 이창희 마이크로닉코리아 대표, NCM 다그핀 호위브로텐 사무총장, 울프 안드레아손 수석고문, 모니카 뵈르트베르크 바클룬트 수석고문, 헬싱키대 요한 스트랑 교수, 구닐라 홀름 교수, 싱크탱크 e2, 알필라고등학교, 이탈라&아라비아 디자인센터, 코펜하겐대 페터 아브라함손 교수, 페터 군델라흐 교수, 쇠렌 카이 안데르센 교수, 세실리아 밀베르츠 NIAS 수석연구원, 메테 프리스크 옌센 오르후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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