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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들도 나라 바꿀 수 있죠”

[박민제 기자의 ‘민심 택시’] 5·18 영화 ‘택시운전사’ 실제 인물 김사복의 아들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도심엔 유난히 차가 많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답답한 도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전 11시 약속 시간이 다 되도록 정체는 계속됐다. 아침 일찍 차고지를 나섰지만 서소문 고가차도 위 긴 차량행렬을 헤쳐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적지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을 목전에 두고 이날의 예약 손님인 김승필(59)씨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걸어야 했다.
 
김사복씨의 아들 승필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본지 박민제 기자(왼쪽)가 운행하는 민심 택시에 승차했다. 김경빈 기자

김사복씨의 아들 승필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본지 박민제 기자(왼쪽)가 운행하는 민심 택시에 승차했다. 김경빈 기자

 
승필씨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 ‘김만섭’의 실제 인물인 고(故) 김사복씨의 아들이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올해 관객 1217만여 명(9월 26일 기준)을 끌어 모았다. 거대한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에서도 흔들림없이 자신의 직업적 본분과 소명의식에 충실했던 기자와 기사의 스토리가 관객들의 공감을 산 덕분이다.
 
기자가 직접 택시를 몰며 민심을 듣는 ‘민심 택시’는 승필씨를 이날 특별손님으로 모셨다. 김사복씨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그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청해 듣기 위해서였다. 이날의 운행 코스는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김포공항까지 가는 편도 약 22㎞ 구간. 37년 전 아버지 김씨가 쿠키 상자 속에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담은 필름을 숨긴 채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 운행했던 그 경로다. 오전 11시15분쯤 승필씨가 민심 택시 뒷좌석에 승차했다.
 
어서 오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조선호텔을 둘러봤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자주 왔던 곳인데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옛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영화 속에 나온 필름을 숨긴 쿠키통을 여기서 구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전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에 등장한 쿠키가 제가 어렸을 적 먹었던 기억 속의 그 쿠키였거든요. 달콤한 버터맛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버지가 주신 쿠키에 그런 사연이 있었는지는 후일에 알았습니다.”
 
김포공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37년 전 아버지가 계셨던 현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네요. 그때 저희 아버지는 앞 좌석에서 운전대를 잡은 채 얼마나 조마조마한 심경이었을까요. 저로선 상상조차 잘 되지 않습니다.”
 
신촌로를 거쳐 양화대교 방면으로 향하면서 아버지 김사복씨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는 함경도 원산 분이셨어요.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 1세대였죠. 부산에 정착해 섬유업을 하다 망해 제가 국민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때 시작한 게 택시였습니다. 낯선 서울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죠. 지금도 ‘서울은 처음이니 서울 사람을 알려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납니다.”
 
힌츠페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어떻게 흘러흘러 가다 1970년대 초반에 호텔 투숙객들을 상대로 하는 콜택시를 승인받으셨어요. 회현동에 있는 파레스호텔이었는데 거기서 택시 두 대를 운영하면서 인근 호텔 투숙객들과 관공서를 상대로 영업을 하셨죠. 도심지 호텔이다 보니 외신기자들도 자주 태우셨어요. 아버지는 만날 16절지를 풀로 붙여 병풍처럼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녔어요. 사전에 예약 들어온 스케줄을 깨알같이 적어 놓으셨죠.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성실한 스타일인 데다 영어를 독학으로 공부해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외신기자가 많이 찾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힌츠페터도 소개받고 광주까지 가게 되신 거 같아요.”
 
영화가 크게 히트했습니다.
“37년 전 광주항쟁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사람들 기억 속에서는 잊혀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그 역사의 현장을 알리는 데 공헌한 두 사람을 조명했잖아요.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던 기자와 그 기자를 태우고 목적지로 가려는 기사가 있었던 거죠. 자신의 직업적 본분, 업(業)에 충실하려는 소명의식이 강했던 분들이라 생각해요. 힌츠페터는 기자로서, 저희 아버지는 택시기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려 한 거니까요.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런 소시민들도 민주주의를 지키고 나라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감동한 게 아닐까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택시가 양화대교 남단에서 올림픽대로로 접어들 즈음 승객 김승필(59·사진)씨에게 어떻게 영화 ‘택시운전사’ 속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 확신했는지 물었다. 실제 김사복씨 존재는 영화 개봉 후 승필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이 실제 인물의 아들이라고 알리기 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영화에서도 주인공 ‘김만섭’이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명인 ‘김사복’으로 알려준 것으로 나온다.

 
“개봉 초기에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아들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어요. 가기 전에 TV에서 예고편은 봤는데 ‘어 우리 아버지가 경험하신 거랑 비슷한 얘기네’하는 생각은 있었죠. 영화 시작 후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쭉 보는데 아버지가 옛날에 해주셨던 얘기랑 상당 부분 겹치는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유사한 얘기를 다룬 영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힌츠페터가 실제 인터뷰한 게 나오잖아요. ‘김사복씨를 찾는다’는 부분을 보고 완전 정신이 나가 버렸죠. 이거 우리 아버지 얘기가 맞구나 했습니다. 선비 사(士)자에 복 복(福)자 쓰는 이름이 흔한 이름도 아니고 당시 아버지가 외신기자들을 택시에 자주 태웠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또 생전에 아버지가 광주 5·18 민주화운동 실제 현장에서 본 걸 많이 얘기해 주시기도 했어요. 이건 100% 우리 아버지 얘기라 확신했죠.”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까진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것도 사연이 있어요. 집에서 앨범을 뒤졌는데 암만 찾아도 사진이 안 나오는 거예요. 이상하다 생각하고 아내에게 물었죠.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아버지 사진만 따로 모아 새 앨범에 정리해 놓은 거예요. 거길 뒤져 봤더니 힌츠페터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온 거죠. 가족들도 다 몰랐던 일이에요. 사진을 보고 신기해했죠.”
 
영화다 보니 실제와 다른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생활에 대한 묘사는 조금 다르죠. 영화에선 딸이 있고 영어도 못하는 걸로 나오는데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저흰 아들 형제니까요. 많은 분이 실화를 재구성했다는 부분을 보고 딸은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긴 하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는 영어도 웬만큼 하셨어요. 또 광주에 들어갈 때 봉쇄가 안 된 길을 찾아간 부분도 약간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힌츠페터 책을 보면 아버지가 스스로 물어물어 찾아갔던 걸로 나오거든요. 지시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길을 찾아간 걸로 묘사된 부분은 조금 다른 거 같습니다.”
 

 80년 광주 실상 겪은 아버지, 트라우마로 술 다시 드셨죠

 
광주에 다녀온 아버지가 기억나시나요.
“무서웠다, 이런 말씀은 없었어요. 원래 가족에게 바깥에서 일어난 일을 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그날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아버지가 늦게 집에 오셔서 동생이랑 같이 마중을 나갔거든요. 차가 막 찌그러져 있고 해서 동생이 ‘아버지 왜 그래요’하고 물었는데 아버지가 차에 과자 있으니 갖다 먹으라고 했어요. 그게 힌츠페터가 필름을 숨겼던 그 쿠키였던 거 같아요. 그다음엔 씻고 나와서 가족에게 ‘어떻게 같은 민족끼리 그렇게 죽일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리셨던 게 기억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굉장히 조심스러운 얘기였는데 워낙 충격적인 일이다 보니 얼마만큼은 가족에게 얘기한 거죠. 권력에 의해 많은 사람의 목숨이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에 분노하셨어요.”
 
이후에 왜 힌츠페터와 연락이 안 됐나요.
“저도 정확하게는 몰라요. 하지만 추측하건대 광주에 다녀오고 나서도 두 분이 만났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같이 찍은 사진이 1975년 10월 거니까요. 80년 광주에 가기까지 상당 기간 아는 사이였던 걸로 보여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광주에 다녀오신 뒤 끊었던 술을 다시 드시기 시작했어요. 원래 간경화가 있어 병원을 다니다 완치됐는데 그 일이 있고 난 뒤 한두 잔씩 다시 드신 거죠.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일반 교통사고만 당해도 그 잔상이 계속 남잖아요. 전쟁 같았던 당시 광주 상황을 직접 목격했으니 심적 충격이 컸던 게 아닌가 싶어요. 8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희 집이 분당으로 이사 가면서 전화번호도 바뀌었죠. 원래 아버지가 집 전화번호로 명함을 파서 다니셨거든요. 아마도 그렇게 되면서 연락이 끊긴 것 같습니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왼쪽)와 김사복씨가 생전에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김승필]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왼쪽)와 김사복씨가 생전에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김승필]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도로를 가득 채웠던 차들이 줄어들면서 택시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가양나들목에서 발산역 방면으로 빠져나가자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교통표지판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릴 채비를 하는 승필씨에게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느냐고 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인권주의자셨죠. 좌파·우파를 초월해 사람을 중시하셨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자식들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하셨고, 본인도 실천하려고 노력했어요. 당시엔 때리는 부모도 많았는데 저희 형제는 아버지에게 단 한 차례도 맞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 거창한 얘기를 떠나 제가 직접 경험해 본 아버지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에요. 직업인으로나 생활인으로나 훌륭한 아버지셨죠. 이번 추석 땐 아버지 산소 앞에서 가족들과 할 얘기가 많아 정말 행복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아버지 관련 기사들과 영화 내용들을 USB에 하나하나 모으고 있어요. 산소 앞에서 다 보여드리려고요.”
 
1시간여간 운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택시에서 승필씨는 내렸다. 김포공항 국제선 출국장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엔 37년 전 같은 자리에서 힌츠페터를 배웅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 나왔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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