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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로켓맨’은 생각보다 제정신이다

블레인 헤이든 작가·전 워싱턴포스트 기자

블레인 헤이든 작가·전 워싱턴포스트 기자

한때 붕괴 초읽기에 들어간 나라로 여겨졌던 북한이 부활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심지어 맨해튼까지 수소폭탄을 날려 보낼 무기체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희한한 머리 스타일과 쉽게 발끈하는 성격이 비슷한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와중에 서로를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 부르며 험악한 말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와 달리) 적어도 김정은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평생 독재자였던 부친과 조부의 일생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피에 흐르는 ‘독재자 DNA’는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경우 북한에 닥칠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조부가 겪은 실패가 교훈이 되어 준다. 한국전쟁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은 미국의 포탄이 평양을 초토화할 동안 벙커에 기어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그때의 공포를 알고 있는 그의 손자가 미국을 선제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 트럼프는 이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김정은을 자극해 그 자신이 궤멸될 위기에 처했다고 믿게 하지만 않는다면 북한이 미국을 선제 공격할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김정은 가문의 역사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정권의 생존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김정은과 그 측근들은 미국과의 전쟁보다 국민을 세뇌해 노예로 만드는 데 능숙한 범죄 집단일 뿐이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1950년 여름, 북한은 소련을 등에 업고 한국전쟁을 시작했다. 김씨 왕조 창업주인 김일성은 당시 38세로, 머리에 피도 안 말랐지만 고집 세고 호전적이었다. 지금 그의 손자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남침 전 스탈린과 비밀리에 회동한 김일성은 북한군이 남한을 급습하면 친공 성향 반군이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 북한군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일성은 또 남한 사람들이 자신을 받들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또한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김일성은 전쟁이 개시되면 북한이 사흘 만에 승리할 것이므로 미국은 개입도 못할 것이란 어이없는 관측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전쟁은 3년을 넘게 끌었고, 미국은 아직도 비무장지대를 지키고 있다.
 
nyt 칼럼 삽화

nyt 칼럼 삽화

모스크바 외곽의 저택에서 김일성의 브리핑을 들은 스탈린은 그의 주장의 비현실성을 꿰뚫어봤다. 그래서 김일성에게 “무리하게 남한을 쳤다가 혼쭐이 나더라도 나는 손 하나 까딱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내심 미국을 괴롭히고 싶었던 스탈린은 결국 남침을 허락했다. 그리고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전쟁을 시작한 것처럼 만들라고 김일성에게 주문했다.
 
김일성의 오판과 반대로 미국은 즉각 한국전에 개입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더니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군해 북한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 코앞까지 들어오는 걸 좌시할 수 없었던 마오쩌둥이 개입에 나섰다. 중공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는 김일성이 전쟁을 전혀 모르는 멍청이임을 깨닫고 그의 군령권을 빼앗았다. 김일성은 자신이 시작한 전쟁에서 무기력한 관객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 같은 한국전의 역사에 대해 김씨 왕조는 끝없이 거짓말을 하며 북한 주민들을 속여 왔다. “한국과 미국이 은밀하게 북한을 침공했지만 위대한 수령님이 용감히 싸워 격퇴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헛소리나 지껄여왔음에도 김씨 왕조는 70년 넘게 살아남았다. 무모한 호전성 속에 냉정한 이성을 유지한 덕분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정은은 결코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무기를 실제 사용하는 순간 자신도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핵무기는 고이 모셔둘 때 가장 가치가 높다는 것도 안다. 그런 만큼 트럼프는 위험한 말폭탄 전략을 접고 김씨 왕조와의 장기전에 적응해야 한다. 미군의 전투태세를 강력히 유지하고 정보전에 집중하는 한편, 유연한 제재와 함께 중국 및 러시아와 물밑 협상에 나서면서 북한과도 가능한 차원에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렇게 해도 전쟁은 일어날 가능성은 있다. 그럴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분명 나태한 것이다. 김정은은 성숙한 판단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대다. 자신의 무기에 도취된 그는 한반도 전체를 손에 넣기 위해 그 무기를 사용하고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리하게 전쟁을 벌였다가 처참히 깨졌던 조부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그는 생각보다 제정신일 수 있다.
 
블레인 헤이든 작가·전 워싱턴포스트 기자
 
◆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 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23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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