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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대결과 파국 넘어 외교의 계절을 기다리며

이홍구 전 국무총리·중앙일보 고문

이홍구 전 국무총리·중앙일보 고문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된 지 9일 만에 제2차 세계대전과 제국주의 시대는 빠르게 막을 내리고 세계는 핵무기를 가진 채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동서 냉전의 시대로 들어갔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한반도는 연합국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된 후 48년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각각 남북에서 출범했다. 그리고 2년 후, 50년 6월 북한의 김일성과 소련의 스탈린이 결정하고 중국의 마오쩌둥이 합의한 북·러·중 합작의 남침으로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의 즉각적인 참전과 유엔의 지원에 힘입어 전쟁은 무승부로 휴전되고 남북 분단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77년에 이르고 있다.
 
한국전 휴전 이후 30여 년 세계는 쿠바 위기가 보여준 핵전쟁 상호 공멸의 공포와 논리를 바탕으로 어렵사리 평화를 유지하며 경제발전에 진력해 왔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동승한 한국은 87년 민주화에 성공하고 88년 서울올림픽을 주최하며 냉전을 넘어서는 데 앞장섰다. 민주화로 출범한 한국 정치의 4당 체제는 하나의 민족공동체와 두 개의 국가체제를 함께 수용하는 새 통일 방안을 확정했고, 북한도 당국 간 대화와 협상에 참여하며 91년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한 후 주한미군의 전술핵도 철수했다. 이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실현했다. 이렇듯 독일 통일로 상징된 냉전 종료에 맞추어 한반도 분단 대결 구도도 평화적 협력의 단계로 넘어서는 듯 보였지만 그것은 짧은 환상이었다.
 
93년, 1차 북핵 위기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핵무기 개발계획이 노출되면서 시작됐다. 94년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남북 정상회담 합의 등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열리는 듯 기대되었지만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산됐다. 그로부터 23년, 악화일로의 내리막길로 들어선 북핵 문제는 결국 핵전쟁의 가능성마저 점쳐지는 오늘의 위기사태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북한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개방과 국제화로 경제발전에 크게 성공한 중국이나 베트남과는 달리 북한의 세습적 일인통치체제를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지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은 20세기 전체주의체제들이 공유했던 ‘전쟁보다 평화가 더 위험하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이홍구 칼럼 삽화

이홍구 칼럼 삽화

사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오늘의 수준까지 이르는 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소극적 대응자세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강조하던 전략적 ‘인내’는 북핵 문제의 시급성을 외면하거나 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저평가한 ‘고백’이다.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와 호주까지도 중국을 동아시아 ‘유일’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황에서 북한의 동아시아 두 번째 핵보유국 시도에 머뭇거린 중국의 대처를 많은 아시아인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강대국들의 애매한 자세가 북한이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자신 있게 선포하는 지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북핵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위협을 넘어 미국과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흔들면서 급기야는 세계 평화에 대한 도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의 북한 제재 결의에는 동참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제재 수단으로 지목되는 원유 송출 중단은 북한 주민과 사회에 심각한 인도적 위기를 야기할 것이라는 이유로 집행을 주저하고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을 버리지 못한 측면을 엿보이게 한다. 핵프로젝트의 강행과 인도적 위기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독립국가인 북한의 권리이지 주변 강대국이 대행할 사안이 아니며, 강대국들의 위상만 흔들어버릴 뿐이다.
 
드디어 ‘제2의 냉전’ ‘제2의 한국전’, 나아가 핵전쟁 시대의 도래를 걱정하며 북핵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아시아를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결국 북한의 핵추진 과정은 인류공동체의 거부반응에 부닥치고 있다. 그러나 핵보유국 추진은 북한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반면에 한국, 일본과 더불어 미국을 향해 태평양을 넘나드는 핵무기 발사에 지구촌이 불안해하며 확실한 공동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이쯤에서 북한과 모든 당사국들은 대결과 파탄을 대화와 봉합으로, 곧 평화외교를 작동시키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는가. 역사의 수레바퀴는 무리와 순리가 맞물려 돌아가게 돼 있다.
 
11월에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계획이,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지금이 바로 평화외교를 통해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낼 적기가 아니겠는가.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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