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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민주주의는 생활이다 - ③갑질 드라마 '꽃보다 감독' 촬영 현장에서는...

 
#1. '꽃보다 감독' 촬영장 옆 주차장
민주주의는 생활이다

민주주의는 생활이다

 
트럭·버스·승용차 등 차량 10여 대가 늘어서 있다. 촬영기사 5년 차 김촬영이 트럭에서 장비를 꺼내고 있다. 미술소품 담당 2년 차 이미술과 방송의상 담당 10년 차 김의류가 탄 차량이 주차장에 도착하자 김촬영이 차를 향해 창문을 내리라고 손짓한다.
 
김촬영: (양손에 장비를 쥔 채 턱으로 먼 쪽을 가리키며) "저 끝에 주차하고 니네는 물건 들고와. 촬영팀 차 더 들어와야 해."
 
이미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네, 촬영팀 차 몇 대나 들어와요?"
 
김촬영: (대답 없이 장비를  만지작거린다. )
 

화면전환-이미술과 김의류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눈다

 
이미술: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도 오늘 짐이 많은데 저거 어떻게 다 끌고가요? 기술팀 장비 비싸다고 만날 이런 식이면 …어차피 다같이 만드는 작품 아니에요?"
 
김의류: (눈을 감은채) "언제는 안그랬나 뭐. 해외 로케(현지 촬영)를 가도 기술팀 애들은 돈 따로 주잖아. 언제쯤 이런 차별대우가 없어지려나. 아, 또 짜증이 밀려오네. 감독님은 오후나 돼야 오시겠지?"
 
#2. '꽃보다 감독' 촬영장 
 
제작진 30여 명이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술에서 덜 깬 듯한 표정의 김감독과 외주제작사 PD(AD) 최피디가 중견배우 나중견의 연기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최피디의 지시가 잘못돼 촬영기사 김촬영이 카메라를 들고 가다가 발걸음을 멈춘다. 김감독은 최피디의 실수를 알아차린 눈치다.
 
김감독: (화난 표정으로 스태프들이 모두 듣는 무전기에 대고 큰 소리로) "야. 이 잡동사니 같은 놈아! 너 똑바로 안할래"
 
최피디: (황당해 하며 무전기를 든 채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김감독: (약간 누그러진 표정으로 무전기에 대고) "일단 촬영 스톱해!"
 

화면전환-촬영장 한쪽 구석에서 중견배우 나중견이 팔로 미술소품 담당 이미술의 어깨를 안고 있다

 
나중견: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휴 이쁘다, 우리 새끼."
 
이미술: (고개를 숙였다가 나중견에게서 벗어나며 한숨을 쉰다.)
 
최피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혼잣말로) "또 울고불고 하겠구만. 내가 뭔 힘이 있냐. 제발 그냥 참아라."
 

화면전환-촬영장 한 복판에서 김감독이 최피디에게 말을 한다

 
김감독: (차분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일단 저녁부터 먹고 다시 하자. 김밥이나 만두 같은 거 말고 오늘은 좀 성의를 보여봐. 10시 지나면 야식도 준비해 놓고!"
 
최피디: (혼잣말로) "도시락 3000원짜리 안시키고 4500원짜리 시켰다고 회사에서 뭐라 그랬는데 …." (그 뒤 곧바로 표정을 바로잡고 웃으며) "네. 감독님. 그런데 오늘은 김밥집 말고는 주변에 가능한 곳이 없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스태프들이 김밥 사오고 있다네요."
 

화면전환-김촬영이 김밥을 들고오자 이를 본 후배들이 달려가 짐을 받아 든다. 최피디가 김밥을 한 입 베어 먹는다. 김감독도 마뜩치 않다는 표정으로 김밥을 먹는다.

 
최피디: (한 입만 먹은 김밥을 쓰레기 담는 박스에 던지며) "나는 참치 김밥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냐!"
 
김감독: (김밥을 다 먹은 뒤 큰 소리로) "야, 미술! 너 오늘 화장 안했지? 화장 좀 하고 다녀. 보기 좀 그렇다. 그건 그렇고 너 손에 종이컵 들고 있는 거 보니까 커피가 땡기네. 한 잔만 타서 갖다 줄래?"
 
#3. 서울 사당동의 한 술집(밤 상황)
 
이미술: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저 이 일 계속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시다바리'라고 차별당하는 것도 이제는 참을만한데 아까 나중견 선생님이 담배 냄새 풍기며 막 끌어안을 땐 정말 …." (눈물이 뚝 떨어진다.)
 
김의류: (한숨을 쉬며) "나중견 정도면 양반이야. 난 10년 있으면서 별꼴 다 봤어. 성폭행 사건도 있었고. 입만 열면 욕인 감독 때문에 조연출이 현장에서 그대로 짐싸서 가는 것도 봤다. 그때 감독이 뭐랬는 줄 아냐? '저 자식, 배불러서 그래. 야, 그 일 할 놈 줄섰다' 그러더라."
 
※ 이 글은 지난 20일 청년유니온, 다산인권센터 등이 국회에서 개최한 드라마제작 현장 노동실태 개선 토론회 자료집에 수록된 인터뷰와 이모(42)씨 등 전·현직 드라마 제작 종사자 3명으로부터 들은 현장의 이야기를 드라마 대본 형태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를 만든 이한빛 PD가 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국회 토론회가 열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유서에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스태프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고 썼습니다. 자료집에는 이 PD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 나쁜 관행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주먹으로 벽을 때리는 장면을 스태프가 대신 촬영했다. 그 스태프는 촬영 후 깁스를 했고 한동안 일을 못했다”는 증언도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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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일러스트=심정보 디자이너
 
[400자 상담소] "외주 아니라 독립 제작자란 인식 전환이 필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드라마·영화 제작 현장에서 카메라·소품·의상과 관련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 창작자들을 일종의 들러리로 보는 감독·제작자의 뿌리깊은 인식에 있다. 그들을 협업자로 여기지 않는, 구태의연한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갑질 문화'는 사라지기 어렵다. 
드라마·영화 제작이 프로젝트별로 이뤄지는 게 대체적 추세이다 보니 '외주 제작'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건설회사에서 주는 하도급과는 다르다. 외주 제작을 하는 이들이 창작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제작자'로 인정해주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촬영자 조합과 같은 직능별 단체가 만들어지면 근로 환경이 나아질 수도 있다. 외국에는 그런 단체들이 있다."

-최선영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대학원 특임교수, 독립제작사 17년 경력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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